서양화가 정미정…‘목 마른 길 위의 낯섦’ 연작
화가에게는 물감이 다른 세계로 이어주는 특별한 소재이듯, 저마다 기억이 같은 색깔일 수 없듯, 낯섦과의 친숙은 선택이 아니라 탑승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 같은 입김, 떨림이다!
춥다. 땅거미 지는 대지에 불그스름한 석양은 가벼운 몸부림으로 저녁을 알렸다. 새들은 안식을 찾아 숲으로 날아가고 마지막 남은 노란 은행잎 가지엔 미동도 않고 먼 곳을 바라보는 한 마리 새의 묵상이, 깊다.
함박눈이 쏟아질 듯하다. 어둑어둑한 도시는 하나 둘 불빛에 속살을 드러내고 옥탑의 커다란 화면엔 어디선가 기적(汽笛)을 울리며 추억의 열차가 간이역을 지나 달려왔다. 바닷가 해안선을 달려온 바퀴에 묻은 비릿한 갯내음. 흙길과 철길이 평행선으로 놓인 그곳을 지날 때 뭐라고 이야기하던 기차는 역사(驛舍)의 전봇대에 그들의 안부를 전했다.
단문의 소식을 열자 순결한 향수(鄕愁)의 파노라마가 영사기(映寫機)처럼 돌아갔다. 노랑, 핑크, 블루의 기둥엔 떠나온 고향의 풍경들이 솜사탕처럼 흘렀다. 도시의 주택가 막다른 골목엔 기다란 그림자의 거인이 서 있었다. 아이들은 여름 한낮에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숨바꼭질을 하며 잘도 놀았다.
어디 그 뿐인가. 열아홉, 난생 처음 맛본 술에 만취해 검은 롱코트를 소중히 걸어놓고 그 아래서 핑크빛 로망스를 꿈꾸며 아침이 올 때까지 잤던 어느 청춘의 이야기도 한 페이지 기록되어 있다.
전봇대는 쉼과 놀이와 기다림의 이정표
쉼과 놀이와 기다림의 그곳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생활의 소식지였다. 거기 기대어 바지에 뭍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귀가 준비를 할 때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높고 어느 곳에서든 아름답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하늘은 영화 바닐라 스카이(Vanilla Sky)처럼 ‘1분마다 인생을 바꿀 찬스가 찾아와’라고 속삭이고 때론 “하늘에는 한두 송이 구름/이끼처럼 살갗에 퍼져나가고”<황인숙 詩, 흐린 날> 보라색 갈망이 강물처럼 흘러간 날도 있었다.
직선으로 뻗은 전선처럼 밤공기는 차갑고 빨랐다. 전봇대 주름을 풀어놓은 듯 전선은 오늘도 누군가의 꿈을 실어 나른다. “노스탤지어는 삶의 경계를 일주하던 이가 불현 듯 중심이 기우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에 앓는 몸살이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공동의 시간과 텅 빈 중심의 환상통”<조강석 글, 마종기 시집 ‘하늘의 맨살’ 해설 中> 인생이라는 신산한 살이. 귀소(歸巢)의 밥상위엔 차라리 맘 찰랑이는 낭만의 유혹, 헛됨, 상처, 느릿한, 흘러가는, 불발탄 같은 그러나 머물지 않는 ….
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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