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판도를 새로 짜야 할 것” 한 방송사 예능국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주 잠정 은퇴 선언을 한 강호동의 대안을 찾는 것은 단지 강호동의 대타를 찾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조기 종영설이나 폐지 설까지 나돌 만큼, 강호동이 진행하던 프로그램들은 그의 그림자가 짙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의 형식 변화부터 고민해야하는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한결 같이 “지극히 민감한 문제이니 익명으로 처리해달라”는 지상파 3사 예능국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지상파 3사 예능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새로운 프로그램만이 가능하다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하고, 최근에는 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아예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나와야만 강호동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것” KBS 예능국의 한 관계자는 강호동의 공백 이후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예견했다. “비슷한 형식의 리얼 버라이어티나 토크쇼는 강호동이 진행했던 프로그램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게다가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정도를 제외하면 유재석과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이외에 성공한 경우도 흔치 않다.
그렇다면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가 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떨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MBC 예능 관계자는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시청률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하는 등 기대 이상이었다.”면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계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자극적인 연출이 시청자에게 피로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지 않고도 감동을 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댄싱 위드 더 스타>나 SBS <일요일이 좋다>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는 자극적인 내용 없이도 시청자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변화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다만 문제는 이런 오락 프로그램의 변화가 강호동의 공백으로 인해 지금 당장 해야할 것으로 요구받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SBS <기적의 오디션>이나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처럼 국내에서 개발한 프로그램보다 <댄싱 위드 더 스타>처럼 검증된 외국 프로그램의 포맷을 들여오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케이블TV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도 주목해야 할 큰 변수다. 현재 간판급 스타 예능 PD들이 상당수 케이블TV나 종편 행을 택하고 있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바람도 케이블TV에서 먼저 시작했다. tvN의 <코미디 빅리그>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팀별 대결과 탈락이 없는 리그 제라는 고유의 색깔을 넣어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강호동의 공백은 미디어 산업 전반의 빅뱅의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부상하는 2인자? 돌아오는 과거의 1인자?
이런 혼돈 가운데 <강심장>의 단독 진행설이 돌고 있는 이승기나 최근 <코미디 빅리그>의 MC를 맡게 된 이수근, 전역하자마자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받은 붐 등이 앞으로 부상할 차세대 MC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단시간 내에 강호동의 공백을 모두 채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 케이블 예능국 관계자는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일수록 과거에 검증된 안정적인 MC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SBS <스타킹>의 새로운 MC로 신동엽과 김용만이 거론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시대와 함께 한동안 침체기를 가졌던 신동엽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부흥과 함께 KBS <자유선언 토요일> ‘불후의 명곡2’와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다이어트 서바이벌-빅토리’의 MC를 맡고 있다. 강호동의 공백은 현재의 2인자들이 급부상하는 계기일수도 있지만, 과거 명성을 날렸던 1인자들이 다시 부상할 기회일 수도 있다.
프로그램 포맷부터 MC의 캐스팅까지, 강호동의 공백은 예능 전반의 변화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변수다. 하지만 유재석-강호동이라는 굳건한 축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전제한다면, 한국 예능프로그램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상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만 강호동의 공백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속도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 예능국 관계자의 말은 지금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가리키는 방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사진 제공. MBC, SBS
10 아시아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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