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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 벗은' 마라톤 대표팀, 여전히 울상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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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마라톤 국가대표팀이 울상이다. 가까스로 약물 논란을 씻었지만 못지않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일주일 이상 중단된 훈련. 페이스는 이내 엉망이 됐다. 헝클어진 분위기는 더 큰 문제다. 선수단 대부분이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 상처를 입은 건 그들뿐이다. 두 달 앞으로 닥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부담마저 천근만근 늘고 있다.


강원지방경창청 마약수사대는 23일 정만화 마라톤 대표팀 코치가 지도하는 장거리 육상 선수들이 조혈제를 투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내사 종결 처리했다고 밝혔다. 첩보를 입수하고 1달여간 수사를 벌였지만, 철분제 성격의 조혈제가 금지약물이 아니었던 데다 혐의점마저 찾지 못해 수사를 중단했다.

대표팀은 사건이 불거진 지 12일 만에 비난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8월 막을 올리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앞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잇따른 경찰 수사와 훈련 지연, 언론 공개에 따른 파장 등으로 컨디션 회복에 애를 먹는다.


대표팀은 27일 일본 삿포로로 이동, 2주간의 전지훈련에 돌입했다. 당초 예약한 비행기 티켓 날짜는 20일이었다. 훈련이 미뤄진 건 경찰의 뒤늦은 수사 발표 탓이 크다. 정만화 코치는 “모든 일정이 꼬여버리고 말았다”며 “훈련에 큰 차질이 생겼다. 뒤바뀐 계획에 모두가 우왕좌왕한다”고 토로했다. 한 육상 관계자도 “경찰이 수사를 질질 끌어 내부적으로 전지훈련을 포기하는 분위기였다”며 “무혐의로 발표가 난 뒤에야 비행기에 부랴부랴 몸을 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강원지방경창청 마약수사대 측은 “어떤 말도 내놓을 수가 없다”며 굳게 입을 닫았다.


언론을 통해 수사가 노출된 뒤 가장 피해를 입은 건 선수들이다. 정 코치는 “지영준, 이선영 등이 실명 거론 등으로 마음을 많이 다쳤다”며 “어렵게 끌어올린 컨디션을 어떻게 회복시켜야할지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정서 불안은 마라톤 선수에게 치명타에 가깝다. 정 코치는 “마라톤은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일정한 스피드로 오래 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그도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다. 마음고생으로 지난 12일간 체중이 4kg 이상 줄어들었다. 정 코치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지내는 것 같았다”며 “무엇보다 선수들을 세밀하게 관찰하지 못해 큰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혐의가 은폐됐다’ ‘약물 없으니까 못 뛰네’와 같은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아 두렵다”고 토로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뒤늦게 조치를 강구했다. 28일 잠실종합운동장 내 사무실에서 오동진 회장 주재로 이사회를 열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허위 제보자를 가려내기로 했다. 진상조사위 산하에 변호인단과 의료지원단을 갖추고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애초 색출작업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끝나는 9월 4일 뒤 실행에 옮길 예정이었다.


방향을 전환한 건 당장 실체 파악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론이 대두한 까닭이다. 한 육상 관계자는 “잔치가 끝나면 문제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며 “이 기회에 뿌리를 뽑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도 “대한육상경기연맹이 바로 나서지 않을 경우 정 코치의 나 홀로 싸움이 될 수 있다”며 “땅에 떨어진 육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발본색원하여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어렵게 찾은 삿포로에서 재도약을 노린다. 체력과 정신력을 추스르는 한편 실전을 통해 경기감각 회복을 꾀할 계획이다. 정만화 코치는 “7월 3일 열리는 홋카이도 하프 마라톤대회에 몸 상태가 괜찮은 선수들을 출전시킬 것”이라며 “6월 한 달 동안 차질을 빚은 만큼 훈련에 가속도를 붙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사실 가장 큰 목표는 따로 있다. 대표팀의 단합이다. 정 코치는 최근 채찍을 내려놓았다. 대신 따뜻한 격려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애쓴다. 그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탈피, 선수들을 하나로 그러모으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팀을 약물 논란 이전으로 되돌려놓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보이지 않는 제약에 시달린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약물 복용. 정 코치는 “생리 등으로 피가 부족한 여자선수들에게 철분제를 투여하려고 해도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왜 감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이어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하는 체계 속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향후 일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계훈련 장소를 놓고 대한육상경기연맹과 견해차를 보인다. 강원도 양구군과 평창군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이에 한 육상 고위관계자는 “대표팀의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어 의견을 십분 반영해주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고 전했다. 대한육상경기연맹 관계자도 “대표팀이 최상의 조건에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두 달. 막 암초를 벗어난 대표팀이 다시 순항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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