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txt="";$size="150,180,0";$no="2009123009585170355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임진왜란 3년전인 1589년 10월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1000여명이 처형당하거나 귀양 중에 숨지고 노비로 전락했다. 그 중심에는 정6품 홍문관 수찬에 올랐던 당대의 귀재 정여립(1546~1589) 모반사건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정여립에 대한 행적은 현재 어느 하나 문서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 문화사학자 신정일씨는 '최대의 역모사건'은 애초부터 시비를 가릴 아무런 물증이 없고 아비규환의 고문과 자백으로 만들어낸 대숙청극이라는 해석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9일 항소심에서 외환은행 헐값매각과 관련해 무죄판결을 받은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의 경우는 정여립 사례보다는 상대적으로 행복해 보인다.
만약 무죄판결을 받지 못했으면 변 전 국장은 나라의 금융자산을 고의로 저평가해 외국 사모펀드에 넘긴 '매국노'의 오명을 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몰아주기 원한다. 그래야 답답한 속이 풀리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책임지는 이가 뚜렷하지 않으면 시스템을 탓해야 하지만 진중하고 심도있는 사고보다는 손쉬운 '마녀사냥'에 나서기를 즐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변 전 국장은 외환은행 사건 외에도 현대차그룹 로비와 관련,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됐지만 이 역시 무혐의로 처리됐다.
그러나 그는 두 차례에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300일 가까운 옥고를 치렀다. 몸은 물론이고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변 전 국장은 200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세계 경제 흐름과 관련해 앞으로 세계에서 주시해야 할 15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 바 있다. 당시 영국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으니 그가 입은 상처는 누명을 썼던 어떤 이들보다도 깊었을 것이다.
상처를 주지 않는 국가 시스템이 가장 훌륭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누명 쓴 이들의 '상처치유 시스템' 만이라도 먼저 갖추지 않는다면 억울한 역사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한숨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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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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