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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남도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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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남도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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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 경제레터’가 오늘로 453회째를 맞았습니다. 휴일을 제외하고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경제레터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독자여러분의 사랑과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독자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전라남도 영광에 소재한 해룡고 관계자(서민종 선생님)의 편지였습니다. 지난주 보내드린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에 대한 얘기를 읽고 보낸 것이었습니다.

저의 글에 대한 관심과 격려도 감사한 일이지만 ‘권대우 경제레터’가 이처럼 지방의 고등학교 선생님에게까지 읽히고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알찬 내용, 유익한 정보를 통해 독자여러분의 격려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민종 선생님이 재직하고 있는 해룡고는 그동안 신문이나 방송에 심심찮게 등장해 적지 않은 분에게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학교의 얘기가 오늘 아침 유난히 새롭게 들리는 것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의 발언파문 때문일까요?

(미래기획위원회의 곽승준 위원장은 저녁 10시 이후 야간 학원교습 금지, 방과 후 학교의 민간위탁 운영 등을 골자로 한 사교육 줄이기 대책을 최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여야 모두가 나서 이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함부로 얘기하지 마라”는 강경발언까지 하고 나섰으며 안병만 교육부장관까지 곽 위원장이 자제해야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알다시피 해룡고의 역사는 생각했던 만큼 길지는 않았습니다. 1974년에 설립됐으니 올해로 35년이 된 셈입니다. 그것도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소재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도 일류대학에 다수 학생을 합격시키고 있습니다. 서울대 19명, 연세대 24명, 고려대에 31명을 합격시켰고 서울지역대학교에 배출한 인재만 558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남대에는 170명, 교육대학교에는 50명을 합격시켰습니다.
그러니 지방사학의 명문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근년에는 영광군 밖에서 지원하는 학생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학교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고등학교가 55개나 될 정도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 학교의 설립자는 권재홍 이사장(73세). 그는 교사 자질향상에 역점을 두고 전국에서 뛰어난 교사들을 초빙해 시범수업을 했다고 합니다. 기존 교사들의 수업방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 무학년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배우고 싶은 과목이 있으면 학년에 관계없이 수강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학력과 인성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교육적 신념을 현장에서 실현한 셈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학력위주의 교육보다는 다양한 특별교육 활동을 택했고 이를 통해 인성교육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지리산 등반을 통한 여름수련회, 국내 정상급 성악가 초청 음악회, 교재의 직접 제작 등으로 학력과 인성을 하나로 묶는 교육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해룡고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진 분이 있었습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입니다. 충북 청주 출신인 김 회장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시골학교를 찾게 된 것은 1992년 봄이었습니다. 서민종 교사가 모 방송사 토크쇼에 출연, 무결석 학급 이야기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김 회장(당시 하나은행 전무)은 방송을 본 뒤 곧바로 기탁자를 밝히지 않은 채 해룡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했습니다. 서 선생님은 익명의 기부자를 알기위해 노력한 끝에 장본인이 김 회장인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김 회장과 서 선생님의 첫 인연은 스승의 날 해룡고 교사들에게 와인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다 해룡고 출신 학생들이 하나금융그룹에 입사하면 특별히 관심을 가져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이런 인연이 17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김 회장이 지금 하나고등학교에 열정을 쏟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김 회장과 서 선생님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나눴던 무결석 학급 운동이 학교 다른 학급으로 파급돼 해룡고 24개 학급 가운데 10개 학급이 무결석 학급이 될 만큼 면학분위기도 조성됐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본인이 직접 해룡고를 방문, 특강(‘기초교육이 잘돼야 좋은 인재를 키울 수 있다’는 주제)까지 했고 자신이 설립, 운영하고 있는 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까지 전달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와 희망은 교육과 인재양성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교육현장을 어떻게 현실에 옮기느냐는 것입니다. 한 신문에서 3년 전에 기획한 기사와 동강대학 김홍 교수가 같은 시기에 쓴 글을 통해 오늘의 교육현실을 되돌아보는 기회 되시기 바랍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꿈을 이루는 지혜를 생각하는 목요일 되세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줄잡아 40여대의 승용차들이 인도 쪽 차로 2개를 점령하고 길게 늘어서 있다. 속속 도착하는 승용차들로 차량행렬은 계속 늘어난다. 차를 몰고 온 사람은 대부분 40·50대 , 학원생들과 학생을 찾는 부모의 승용차가 뒤엉켜 큰 길은 전쟁터로 변했다. 이런 모습들은 단 하루만이 아니고 1년 내내 벌어지는,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될 서울 강남도심속 학원가의 진풍경일 것이다.>(동강대학 김홍 교수가 2007년 4월에 쓴 글 인용)


<20일 오전 전남 영광군 해룡고의 한 교실. 남녀 학생 30명이 고은 시인의 ‘문의 마을에 가서’ 등을 읽은 뒤 난상토론에 들어갔다. 백경호 교사도 학생들과 함께 생각을 주고 받는다. 이 학교의 ‘현대시 특강’과목은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다른 학교의 일방통행식 수업과 사뭇 달랐다. 수강생들도 학년별로 다양했다. 대부분이 2학년이지만 1, 3학년생이 3명씩 포함돼 있다. 학생들이 학년에 관계없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무(無)학년제 보충수업이었다.


1학년 서미리양은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들에게 물으면서 공부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3학년 신영인양은 “현대시 부분이 약해 수강하게 됐다”며 “후배들과 수업 받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백 교사는 “수강생들의 수준이 비슷해 수업 난이도를 조정하기 쉬운데다 맞춤강의라 수업효율이 높다”고 했다.>(중앙일보 2007년 4월24일자 인용)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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