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이 창궐할 때는 불특정다수의 새들을 의심하고 범인으로 몰아갔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매몰할 때는 수십만 마리의 닭들이 주범으로 몰렸고 오리들도 공범으로 간주되어 전부 ‘살(殺) 처분’ 됐습니다. 지금도 그 사건의 진상이 궁금하긴 마찬가집니다.
예방적 차원이란 명목으로 반경 수km에 걸쳐 마치 마른 빨래를 걷어 가듯이 산 생명들을 모조리 자루에 담아갔던 인간들의 잔인성. 그리고 다시 돼지들이 타깃이 됐습니다. 이종 간 장기이식에 거부반응을 해결한 무균돼지 탄생을 반긴 지 며칠 만에 돼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그토록 차가워 질 수 없습니다. 아쉬울 땐 죽은 돼지머리에 큰 절까지 기꺼이 하던 이들이 말입니다.
사라지던 조류들을 향해서 던졌던 아픈 말들 역시 돼지들에게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고기를 익혀서 먹으면 괜찮다”고··· 다행히 돼지들은 이번 재난에서 살육은 면하고 있습니다만 언제이고 인간의 분노를 사서 표적사냥감으로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가두어서 키웠던 가금류들이 집단으로 저항하는 몸부림 같아 섬뜩합니다.
여하튼 이번 재·보궐선거는 출마한 면면들이 돼지보다도 관심을 덜 받은 채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크든 작든 간에 선거는 정치판의 지형을 흔들어 왔고 결과가 여당에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의도적인 대형 이슈로 여론의 관심을 돌려놓는 고전적인 방법을 써 왔습니다. 때맞춰서 잘 만난 돼지인플루엔자인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재·보궐선거 지역을 보면 1년 후 치르게 될 전국 단체장선거를 예측할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에 그런 유혹은 더 클 것입니다. 경주는 영남의 민심과 더불어 ‘親李’와 ‘親朴’의 힘겨루기를 감지할 수 있고 이회창 총재의 정치력도 시험받는 곳입니다. 전주는 호남민심의 향방과 민주당이란 간판의 브랜드가치와 야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일거에 평가받는 그야말로 전장입니다.
또한 부천과 시흥지역은 이명박정부의 경제행보에 대한 신뢰가 검증받는 거울이 되고 울산지역은 근로자들을 향한 구애가 진보신당의 근거지확보로 나타날지, 아니면 여전히 여당에겐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으로 남을지 관심입니다.
결국은 전 지역의 승패를 합산한 결과로 여·야지도부의 퇴진이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를 계기로 현실에 안주했던 양당 지도부가 물갈이되고 잠시나마 새 얼굴들이 새 정치를 하는 시늉이라도 한다면 그것도 작은 소득인 셈입니다. 패배한 자들은 투표율이 낮아 대표성에 문제가 있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핑곗거리를 찾을 것입니다.
전 대륙에 걸쳐 확인되는 발병의심 환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공포영화가 상영 중인 것과 다름없고 겨우 고비를 넘기는가 싶던 세계경제가 다시 암초를 만나 진로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팽배합니다.
문득 노무현과 돼지의 질긴 인연이 생각납니다. 내일 봉하마을을 떠나 상경 길에 오르는 한 사나이의 가슴 속에 올해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로 각인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그에게 있어서 2002년 4월은, 유난스러웠던 황사바람과 함께 소위 ‘노풍’의 위력이 정점에 이른 운명의 달이기도 합니다.
전국의 ‘노사모’들로부터 거두었던 돼지저금통을 한 트럭 가득 실은 채 석양 무렵에 서울 여의도 고수부지로 들어섰던 의기양양한 그 행렬들···. 그때 그 손으로 1억원짜리 명품시계를 생일선물로 받을 때까지 겨우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두 돈(돈과 豚)의 의미를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투표로 그를 선택했던 1000만명의 마음에 준 상처를 달래기에는 ‘포괄적 뇌물죄’는 너무나 포괄적인 느낌입니다. 돼지저금통들을 받아서 선거를 치렀다던 순박한 남자의 배신과 몰락을 통해 당분간 대한민국은 또 한번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시사 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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