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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4월29일’이 실종된 달력

시계아이콘02분 17초 소요

지난 휴일 모처럼 지방 나들이를 했습니다. 일요일 하루에 다녀 온 나들이라 피곤은 했지만 재미있는 것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하루였습니다. 말끔하게 좋던 날씨가 오후 들면서 제법 쌀쌀한 날씨로 바뀌어 돌아다니기에는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이른 저녁을 하러 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주택가 뒷길의 허름한 식당이었습니다. 몇 명이 식사를 하다 진귀한 달력을 발견했습니다. 식사하는 바로 옆에 걸려있는 달력에는 4월29일이 없었습니다. 분명 4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은 29일인데 그 달력에는 30일로 쓰여 있었습니다. 또 4월에는 없는 31일이 목요일에 버젓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쉬 믿기지 않겠지만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인쇄과정의 실수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달력을 봤을 텐데 발견한 사람은 우리 일행이 처음이었다고 식당 주인도 같이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은 4월29일에 큰 이벤트가 있는 도시입니다. 전국 5개 선거구에서 18대 국회 첫 재·보궐선거가 있는데 제가 다니러 간 그 지역이 재·보궐선거 지역구 중의 하나였습니다. 관심은 크게 떨어지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서는 큰 행사인데 4월29일이 없는 달력이 그 지역구에 걸려 있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또 달력을 배포한 곳이 제법 큰 기관과 연관된 곳으로 상당히 많은 달력이 제작돼 상가나 가정으로 배포됐을 것을 생각하니 ‘4월29일의 실종’은 한편으로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 달력을 제작한 곳은 미리 4월29일의 재·보궐선거를 예상하고 그 날을 없애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야는 물론 많은 무소속 후보자들이 나서 저마다 참다운 지역 일꾼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각 당들은 판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완승을 장담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는 부평지역은 지난 주말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막판 득표전을 벌였습니다. 유일한 수도권 선거구인데다 경제난에 흔들리는 대기업이 있는 지역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평가한다는 의미가 더해져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라고 합니다.

더 관심을 끄는 지역은 전주와 경주로 이들 지역 모두 정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지역입니다. 결국 집안싸움인 셈인데 지켜보는 유권자들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경주는 여당 후보와 여당서 낙천한 무소속이 혈전을 펼치고 있는데 판세가 백중지세로 어느 신문의 제목을 빌리면 ‘며느리도 모른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지난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게 졌던 곳으로 그 여당 후보가 다시 공천 받아 뛰고 있으나 이번에도 무소속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주 역시 모두 알고 있다시피 대통령 후보를 했던 정계 거물이 정치 복귀를 선언하며 무소속으로 뛰고 있는 지역으로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물을 공천하지 않은 야당 지도부의 속 좁은 처사가 된서리를 맞고 있습니다. 전주 또 한 곳은 야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시소게임을 벌이는 곳으로 야당 지도부는 공천 후유증의 격랑에 싹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말로는 당의 사활을 걸었다고 하지만 하는 행동들은 소인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책과 공약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유권자들의 반응은 무덤덤했습니다. 3개 지역구 중 2곳에서 재선거가 실시되지만 전주 도심은 조용하고 시민들의 일상은 변화가 없이 보였습니다. 한 편에서 유세를 하고 있지만 지나가는 시민들은 힐끗 쳐다볼 뿐 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거 이후의 구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급한 불을 끄듯 선거에 매진하지만 결과가 나오면 더 큰 후폭풍이 있으리라 걱정합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깨끗이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지도자의 자세라고 유권자들은 강조합니다. 지도자는 결코 국민을 걱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맹자는 말했습니다. “진정한 군자는 자신의 본성을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됨을 잘 안다. 군자는 넓은 땅, 풍부한 산천, 많은 백성을 구하지만 참된 즐거움이 결코 이에 있지 않음을 안다. 군자는 천하가 태평하여 백성들이 자신의 생업에 즐거이 종사하는 것을 기뻐하지만 군자의 본성은 결코 여기에 있지 않다. 군자의 본성은 심중에 뿌리내린 인의인데 설령 자신의 이상이 천하에 구현된다 해도 늘어나지 않고 설령 곤궁하게 은거하여 살아간다 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처럼 한결같이 자기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어야 비로소 참된 사람이다.” 맹자는 군자의 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나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재·보선 선거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유권자들이 신성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한표를 행사하는 것은 의무이기도 합니다. 우연일지 고의일지 모르겠지만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지역구에서 4월29일이 ‘실종’된 달력을 보며 정치란 무엇이고 선거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국민을 진정으로 모시는 지도자가 선출되길 기대합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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