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상용화와 생성형 AI 서비스 확장이 시작되면서 ‘칩 전쟁’이 본격화됐다. 스마트폰, 그래픽 카드 등 가전을 넘어 다양한 제품군에서 AI를 활용하는 기술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삼성, TSMC,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생산량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일본과 대만 기업 간 합작도 활발하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관련 인재 양성이 중단되어 기술 인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 인재유치에 더욱 적극적이다. 반도체와 칩 생산 최강자 자리를 두고 미국, 일본, 대만을 비롯한 전 세계가 한국의 핵심 인력을 노리고 있다.
해외 기업들은 기술 인재 유치에 필사적이다. 과거 폐쇄적인 인력 시장으로 알려졌던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TSMC 자회사 JASM은 한국에서 석박사급 기술 인재 유치를 위해 설명회를 열고, 적극적으로 인재를 찾고 있다. 대만은 경제의 중심인 반도체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처우를 제시하며 이직을 막고 있다. 석박사급 엔지니어들에게 높은 초봉을 제공하고, 임금 인상률도 꾸준히 높이며 인재 유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미국 역시 AI 칩 생산 업체를 중심으로 고임금과 안정성을 보장하며 기술 인재를 모집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엔지니어들에게 약 11개월치 임금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제공했으며, 임직원 자녀 학비 지원과 식대 지원 등 다양한 복리후생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이미 핵심 인력 유출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엔비디아는 3만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그중 약 500명이 삼성전자 출신이다. 반면 삼성전자에는 엔비디아 출신 직원이 약 270명에 불과하다. AI 붐과 맞물린 기술 인재 이동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전자의 이직률은 TSMC보다 약 두 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 산업의 핵심 기업인 엔비디아, TSMC, 마이크론은 성장을 위해 기술 인재 유치가 필수적이며, 이로 인해 삼성전자의 인재 유출은 지금보다 미래에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가전 산업은 점차 수익 창출이 어려워지고, 인재는 유출되는 상황에서 노조 리스크까지 겹친 삼성은 그야말로 위기다. 기술 인재에 대해서는 개인 성과 위주로 더 큰 보장을 제공하는 보상 체계를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 직급별 상한선을 없애고, 파격적인 보상을 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따를 필요가 있다. 기술 인재를 원하는 나라와 기업은 많다. 더 이상 한국 기업이라는 애국심만으로는 인재를 붙잡기 어려운 시대다. 보상 체계와 성장 비전을 제시하여 한국의 유능한 인재 유출을 막아야 한다.
나아가 반도체 인재뿐만 아니라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해 미래 산업을 이끄는 기술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 개발은 투자 이후 최소 3년에서 5년이 지나야 성과로 이어지므로, 지속적으로 기술 인재를 유치하고 신기술을 연구하며 끊임없는 기술 개발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더 많은 두뇌를 흡수하고 조직에 두는 것이 곧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외에 있는 많은 한국 기술 인재들이 삼성을 원해서, 삼성에서 일하고자 다시 역이민 해오는 날을 기대해본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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