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최근 필자는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에 참여했다. 회사는 어려웠다. 운임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해운회사는 배로 화물을 실어다 주고 화주로부터 운임을 받아 살아간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건조한 배도 있고 빌린 배도 있다. 건조 자금을 빌려준 은행에게는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고 빌린 배에 대해서는 용선료를 지급해야 한다. 근데 운임이 떨어지자 원리금 상환이나 용선료 지급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운임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운임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현대상선은 매일 유동성 부족을 걱정해야 했다. 자연히 은행에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이번 달에 갚아야 할 돈을 다음에 갚게 해 달라는 식의 요구사항이었다. 은행은 이런 요구를 받아 줄 것인지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있다. 그 요구를 들어주면 회사가 살아날 것인가. 회사가 살아날 수 없는데 그런 요구를 들어줄 은행은 없다. 그때그때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한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요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의미가 없다. 그걸 해줘봐야 회사가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살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가면 앞으로 수년 동안 부족한 자금이 얼마인지 계산해보고 그 부족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살아날 수 있는 종합적인 구조조정 처방을 만드는 것이 먼저이다. 현대상선의 경우 모든 이해관계자의 협조를 구하는 방안으로 마련했다. 은행, 회사채 보유자, 용선주, 대주주에게 요청할 내용을 정하고 현대증권 등 보유자산을 매각해서 얻은 자금들을 모두 보탰다. 그리고 주채권은행에게 이렇게 하면 회사가 살 수 있으니 회사를 죽이지 말고 회생의 기회를 달라고 했다. 지금 우리 경제도 매우 어렵다. 여러 가지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제안이 나온다. 현대상선의 경우와 같이 은행이 했던 질문을 해본다. 그런 단편적인 제안을 채택하면 우리 경제가 살아날까. 답은 아니다. 살아날 수 없다. 단편적인 제안은 의미가 없다. 그걸 했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세율을 인상하고 일부 복지 지출항목을 늘린다고 해서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추경을 했다고 우리 경제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가라앉는 배에서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배는 더 빨리 가라앉을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종합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먼저 수립하는 것이다. 법인세율 인상이나 추경 편성은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종합적인 구조조정 방안의 한 부분이라고 할 때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종합적인 구조조정 방안은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계속 논의하겠지만 그 핵심 키워드는 박지성 선수다. 우리 축구대표팀이 선전하기를 바란다면 박지성 선수와 같이 잘하는 선수를 대표로 뽑아야 한다. 히딩크와 같이 능력 있는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겨야 한다. 우리 경제도 똑 같다. 박지성과 히딩크와 같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경제 시스템을 바꿔주면 우리 경제는 살아날 것이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했다. 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마크 워커라는 변호사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안현수 선수와 같이 잘 하는 선수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나라는 번영하기 어렵다. 힘 있는 사람 중심에서 능력 있는 사람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꿔주면 우리는 다시 도약할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주면 된다.어떻게 능력 있는 사람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숙제이다. 앞으로 더 논의하겠지만 그 답의 핵심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이 경영권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회사를 살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회생의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층이 그 권한을 포기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때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도약은 없다. 우리 경제 회생을 위해 '박지성 선수론'을 편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은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공직사회에 입문했다. 그는 특히 2001년부터 3년 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맡아 국내 부실 금융사들의 매각을 주도해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매각했다는 혐의로 사법처리를 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4년 법정공방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관료가 소신껏 일하면 언젠가 탈이 난다는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이 생겼다. 2005년 보고펀드를 설립해 국내 대표 사모펀드(PEF)로 만든 그는 지난 2월 말 현대상선이 용선료 조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가 선임해 외채협상에 참여한 마크 워커 미국 변호사와 함께 핵심 역할을 했다.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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