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미디어 좌충우돌'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사실상 햇볕정책의 잠정적인 종지부였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강경제재의 수단으로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켰다. '김대중 햇볕정책'의 상징으로 2000년에 남북이 합의를 이뤄냈고 2004년 첫 제품을 생산한 개성공단은, 12년 뒤인 2016년 북한의 핵도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박근혜 핵벽(核壁)정책'으로 다시 문을 닫게 됐다. 2010년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 때도 이런 강수(强手)는 없었다. 북한에 의해서가 아닌 남측이 나서서 공단을 올스톱시킨 사례는 더더욱 없었다.이 초유의 사안에 대한 조중동과 경향·한겨레의 논점은 양날처럼 갈라져 있다.
2월11일자 조간신문들
11일자 아침 동아일보의 1면 톱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폭주를 막기 위해선 '강대강' 대결도 불사한다는 박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이 나타난 것이다."같은 날 경향신문은 '개성공단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라는 메인칼럼으로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공단의 전면 중단은 그 명분과 논리적 결함 문제를 떠나 대북 제재 효과의 관점에서도 실효성이 전혀 없는 조치다. 북한이 대남 압박을 위해 스스로 폐쇄한 공단이 대북 제재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박대통령이 마우리 화가 났다고 해도 한 나라의 정부라면 이성을 잃은 조치를 막을 정책 결정 체계는 최소한 갖춰야 한다. 대북 보복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그런 식의 화풀이는 곤란하다."이 사설은 '정부는 이성을 찾기 바란다'로 끝맺고 있다. 왜 똑같은 사안이, 한쪽에서는 승부사 기질로 읽히고 한쪽에서는 이성 잃은 조치로 읽히는 것일까. 사실 조중동의 논점은 거의 흡사하다. 세 개의 신문은 이구동성으로 '김정은의 돈줄'을 끊는 일에 방점을 찍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얻는 수입을 조선은 12년 전체를 따져 6160억원으로 계산했고, 동아와 중앙은 1년치를 따져 1억달러 혹은 1320억원으로 보도하고 있다. 돈더미를 크게 보이게 하는 전략으로 보자면 조선이 한 수 위라고 봐야 하나. 조선은 이 조치를 확실하게 지원해주려는 듯, 홍용표 통일부장관의 입을 빌어 "북한에 간 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근거'를 보강해준다.조중동 1면의 공통점은 곁에 붙여놓은 작은 기사에도 보인다. 리영길 북한 총참모장이 이달초 처형됐다는 내용이다. 조선과 동아는 개성공단 중단 기사 옆에 닮은꼴로 1단 처리를 했다. 지면이 좁은 중앙은 아랫단에 3단으로 비중있게 처리했다. 한겨레나 경향의 1면에는 보이지 않는 기사다. 이 기사는 '김정은의 독재정치'의 실상을 보여주는 호재다. 기사(TEXT)와 기사를 서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편집기법을 '콘텍스트(CONTEXT - 맥락) 기법이라 한다. 두 기사가 곁들여 배치됨으로써 시너지를 내게 하는 전형적인 편집전략이다. 김정은을 믿을 수 없으며 그의 폭력성과 돌발 결정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소재로, 오늘은 이보다 좋은 게 없을 것이다.한겨레는 정부가 남북관계의 마지막 안전판까지 없앴다는 점을 1면에 부각하고 있다.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대체 터 확보'까지 내걸고 있는 점을 들어, 공단 영구 폐쇄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논의로 동북아정세를 회오리치게 만들었고 그에 더하여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초강수까지 내려 한반도 평화체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이런 중요한 정책 결정을,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당국자들도 이날 점심 때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도 꼬집고 있다. 그들은 이런 조치가 남쪽에 오히려 불리한 자해적 조처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말을 빌어 "북한보다 우리 중기의 피해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북한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기업을 제재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겨레의 1면 속에는 북한의 로켓발사와 핵도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박대통령의 결정이 북한의 '도박'을 꺾을 수 있는 '맞도박'이라는 점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중국에 대한 관점도 서로 갈라진다. 경향신문은 한중일이 공조해 대북제재 3각공조를 펼치는 것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갸 반발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드 논의 공식화'와 관련된 중국 정부의 "깊은 우려" 입장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개성공단 철수 결단에 중국압박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면서 그간 중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중국)보고 북한과의 거래와 교역을 끊으라고 하는데 그러면 한국은 왜 개성공단을 그대로 두느냐'는 식으로 반박해왔다고 주장한다. 중국으로선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 개성공단'을 앞세워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해왔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철수가 중국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고 제재에 공조하도록 압박하는 '의미있는 카드'라는 것이다.조중동과 한겨레·경향의 의견이 이토록 갈리는 것에는, 북한이란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 우리의 안녕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존재이며 언제든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휴전상태의 적국으로 인식하는 조중동의 관점이, 현 정부의 대북 인식과 거의 한 그룹을 이룬다. 반면에, 북한은 향후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동족이며 비록 적대적인 현실이 있다 하더라도 햇볕정책의 기조와도 같이 끝없는 선의로 문제들을 해결해가야 한다는 두 신문의 반론이 있다. 양쪽 신문을 다 읽으면서 문제의 다면성을 이해한다면 국민에겐 더 없는 선물이겠지만, 한쪽만 열독하는 독자들에겐 판단의 외눈을 달아줄 수 밖에 없다. 분단사회에서 신문을 치밀하고 비교분석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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