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샘]휘영청 어머니

휘영청이라는 말 참 좋다/어머니 세상 뜨고 집 나간 말/누구 제삿날이나 되어 깨끗하게 소제한 하늘에어머니가 걸어놓던 휘영청/휘영청이라는 말/내가 촌구석이 싫다고 몰래 집 떠날 때/지붕위에 걸터앉아짐승처럼 내려다 보던 그 달/어머니가 글을 몰라 어디다 적어놓지는 않았지만/휘영청이란 말 여태 환하다/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리다/고개를 숙이고 돌아오는데/마음의 타관객지를 지나 떠오르는 저 휘영청/말 한마디 못하고 떠나보낸 계집애의 입 속처럼/아직도 붉디붉은 달/휘영청이라는 말  -이상국의 '휘영청이라는 말' 시인은 '휘영청'이라는 낱말 하나에 담긴, 생의 결정적 순간을 클로즈업해냈다. 돌아보니 '어머니'였던 그 말, 휘영청.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 말도 집을 나가버렸는데, 제삿날 어머니 마당 쓸듯 소제한 하늘에 걸려있는 낱말 휘영청. 내가 고향 떠날 때 내가 고향 그리울 때 어머니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말, 휘영청.  휘영청이라는 말은, '달'이 아니면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다. 아무리 가로등이 환해도 휘영청 밝을 수 없고 아무리 별빛이 쏟아져도 휘영청 밝을 순 없다. 대낮이 달밤처럼 고요해도 햇살 아래서 휘영청 밝을 수는 없고, 달이 아닌 그 무엇을 데려와 같은 방식으로 걸어놓아도 그건 휘영청 밝은 것이 아니다. '휘'는 휘이 하고 지나가는 보이지 않는 무엇 같은데 꼭 지나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환한 어둠 같은 것, 빛나는 그늘 같은 것, 그런 것들이 텅 빈 곳에서 있는 듯 없는 것이 '휘'한 무엇인듯하다. '영'은 휘를 받아 '휘영'인데, 휘의 기분을 잔뜩 돋워 늘어뜨리는 말이다. 하지만 소리에 비음을 타면서 음악적인 분위기가 나는 게 특징이다. 그래도 공허한 자리를 널찍하게 돌아보는 느낌이 있다. 여기에 '청'이 붙으면서, 물 수면을 뜬 수제비가 다시 튀어 한 바늘을 더 꿰듯 탁 쳐주는 맛을 만들어낸다. '휘영'한 줄 알았더니 그것을 받아서 제청하는 '청'이 긴장감과 파문을 늘려놓는다. 휘영청에는 달이란 말이 없지만, 달이 하늘에 태어나 세상에 해놓는 일 중에서 가장 환한 풍경을 모두 말해준다. 시인의 휘영청이 어머니와 결부된 것은, 그 낱말이 그의 세계에선 그렇게 아로새겨졌기 때문이다. 그 포맷된 휘영청이야 말로, 보편적 낱말이 그의 삶에 들어가 고유한 특별함이 된 것이리라. 휘영청이란 낱말은, 저 시인의 내면에서 저 시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반추해보면 내 삶의 어머니, 모든 삶의 어머니가 저 휘영청한 달빛을 방불하지 않았던가. 한 사람의 고유함이 모두의 보편에 내려와 앉을 때, 우린 그 깊고 넓은 공명에 한동안 전율하는 것이리라. 빈섬 이상국(편집부장, 시인)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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