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기자
김인호 인헌고 교사
'곱지 않은 시선'을 몇번 겪다 보니 처음에는 뜻을 같이하던 사람들도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됐다. 그래서 김 교사와 오 교사는 한 사람이 다른 학교로 떠나도 자주 만나 힘을 합하고 위로했다. 두 사람 다 지칠 때는 함께 관악산을 올랐다. 등산하면서 '직장이야기는 그만합시다'라고 서로 훈수하다가도 결국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 얘기로 돌아가 있었다. 오 교사는 "인헌고 후반 4년은 '학교 혁신'에 미쳐 살았던 시간"이라며 "꿈에서도 학생들과 동료교사들이 등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서로에게 토로한 열정이 혁신학교를 이뤄냈고, 책을 공동 집필하는 데 이르렀다. ◆잠자던 아이들이 깨어나다= 김 교사와 오 교사가 함께 근무한 인헌고는 과학고와 외고를 정점으로 자사고, 강남 8학군 일반고, 특성화고로 이어지는 서열 구조의 맨 아래에 있던 '비강남 일반고'였다. 비선호 학교로 낙인 찍힌 2010년 초까지만 해도 우수 학생 유치가 어려워 학력수준이 낮아지고, 교사들의 수업·생활지도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지 2년 만에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와 진학을 준비하는 학교로 탈바꿈하더니 2014학년도 입시에서는 졸업생 300명 중 175명을 4년제 대학에 진학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두 교사는 그러나 여기서 '학교 혁신' 성과의 선후관계를 올바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대학입시에 성공했기 때문에 학생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하다 보니 대학 입시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김 교사는 "인헌고는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하는 것으로 혁신을 시작했다"며 "학생의 다양한 소질과 체험을 중시하는 입학사정관제라는 '당근'으로 잠자던 아이들을 일으켜 교내 활동, 다시 말해 공교육을 정상화시켰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이 본질적으로 '무한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한, 일반고들이 모두 인헌고 식의 혁신학교 모델을 도입한다면 또 다른 형태로 '혁신학교끼리의 입시 경쟁'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오 교사는 "입학사정관제는 기본적으로 '형식이 없는' 입시 형태이므로 혁신학교끼리의 입시 경쟁은 보다 창의적인 교육, 살아 있는 교육을 향한 경쟁이 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줄 세우기' 경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교육을 찾는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오안근 자양고 교사
◆'부자'가 꿈인 아이들, 우리 교육의 아픈 현주소= 연이은 수능 출제 오류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오 교사는 수능의 EBS 연계 출제의 문제부터 지적했다. 그는 "지적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EBS교재가 한 나라의 교육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탐구과목을 2개 과목으로 제한하고 예체능과목을 무시하며 제2외국어는 경시하는 학교현장은 '나는 그 과목은 수능 안 볼 거니까 안 해도 돼요'라는 '자발적 학습부진아'를 낳는다"고 말했다. 다양한 수업을 통해 사고하는 능력이 형성되지 않으니 학생들의 장래 희망이 '돈 많이 버는 것'이고,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되는 사회가 돼버렸다며 두 교사는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인간의 지적 수준은 미래핵심역량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비록 '문제 풀이' 능력은 떨어지지만 다른 이에게 공감하는 능력이나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 능력 같은 다양한 능력을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왜 부자가 돼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회, 이는 우리 교육의 아픈 현주소이자 교사들의 책무 유기입니다. 오직 입시 위주의 수업을 하고, 오지선다형 문제를 푼 결과죠. 수능은 '학력'을 측정하는 현재의 제도에서 '미래핵심역량'을 측정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합니다."서울 자양고등학교 오안근 선생님과 학생들이 교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