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금 술통 속의 맛있는 술은 천 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흥청망청 잔치판을 벌이는 변사또 무리를 향해 휘갈겨 내던진 이몽룡의 시는 탐관오리들에 대한 매서운 일갈이었지만 거기에는 또한 재산이라는 것에 대한 일말의 진실도 들어 있다. 즉 세상의 재화가 대체로 한정돼 있는 현실에서 결국 누군가가 가진 재산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유재산은 결국 도둑질한 것(프루동)'이라는 단언에까지는 동의하지 못할지라도 '한 집안의 부귀는 천가의 원(一家富貴千家怨)'이며 '가득 채우되 넘치지 않도록 하라(滿而不溢)'는 옛말이 들려주는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며칠 전 '35세까지도 가난하다면 그건 자기가 잘못한 탓'이라고 했다는 어느 중국인 억만장자의 말도 그와 같은 가르침을 생각하면 매우 어리석은 말이다. 실은 그의 말의 본뜻은 이게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그 같은 말이 담고 있는 인식에는 우리 사회의 부자들의 한 초상이 있었다. 이 억만장자의 말에 대한 사람들의 공분은 우리 사회 적잖은 부자들의 인식의 적나라한 현실이 그의 말에 대한 논란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재산에 대해 순전히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일군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퍼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지만 그지없이 빈곤한 정신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억만금의 재산으로도 서푼어치의 양식과 품성은 사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 가난한 영혼에 우리 사회가 보내야 할 것은 선망과 부러움이 아니라 동정과 연민일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으로 서울 강남의 땅을 산 어느 기업 회장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줬다. 그 땅을 산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세간의 추측을 비웃듯 "공기업에 주는 돈이니 사실상 국가에 헌납한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은 부자의 대범한 사회적 실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부가 결코 자신만의 몫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그 같은 실천을 앞으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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