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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후폭풍]법원이 ‘유효’로 판단한 KT 임금피크제… 대법 사안과 어떻게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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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후폭풍]법원이 ‘유효’로 판단한 KT 임금피크제… 대법 사안과 어떻게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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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KT 전·현직 직원과 사망한 직원의 유족 등 13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삭감된 임금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이 16일 KT가 2015년부터 도입한 임금피크제를 유효하다고 판단, 원고 전부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대법원이 옛 전자부품연구원(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에 대해 “강행규정인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금지 조항에 반해 무효”라는 판단을 내놓은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소송이었던 만큼 관심이 집중됐다.


대법원 판결 사안과 이번 사안은 임금피크제의 유형은 달랐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번 1심 판결은 앞서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을 그대로 원용해 적용했다.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vs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앞서 대법원이 ‘무효’라고 판단했던 연구원의 임금피크제와 이번에 법원이 ‘유효’라고 판단한 KT의 임금피크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사안의 경우 정년 연장 없이 일정한 연령(55세)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이른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였던 반면, KT의 임금피크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해주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로 서로 유형이 달랐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밝힌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 중 ‘대상 조치’, 즉 임금 삭감을 보상해줄 수 있는 조치에 업무량이나 근로시간의 단축 외에 정년의 연장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유효성을 판단함에 있어 보다 완화된 기준이 적용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번 KT 판결을 통해 법원은 이 같은 점을 명확히 확인해줬다고 볼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판사 이기선)는 지난달 나온 대법원 판결을 원용하면서 “2017다292343 판결의 법리는 이른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사안에 관한 법리이나, 이 사건과 같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안에 관하여도 하나의 참고기준이 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대상(對償) 조치 없었던 대법 연구원 사례…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무효’

앞서 대법원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구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1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고 전제한 뒤 아래와 같은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즉 대법원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이른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 그 조치가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힌 것은 대법원 판결의 사안 외의 각 개별 사건에서의 구체적인 사정들도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함에 있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법원에서 무효로 판단한 연구원의 임금피크제의 경우 2008년 6월부터 노사합의에 따라 신인사제도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는데, 성과연급제를 도입하면서 명예퇴직제를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연구원은 2008년 6월 ‘성과연급제 운영요령’을 만들어 2009년 1월부터 시행하다가, 2013년 ‘임금피크제 운영요령’으로 대체했다.


임금피크제의 내용은 정년을 그대로 둔 채 만 55세 이상이 되면 직급별로 삭감 비율에는 차이가 있지만 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역량등급을 크게 떨어트려 매년 더 삭감된 임금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만 56세가 되는 해에 역량등급이 50등급이 한 번에 떨어져, 성과 평가 결과 최고 등급을 받으면 월 급여가 약 93만원 감소하고, 최하 등급을 받으면 경우 약 283만원까지 감소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처럼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라 근로자들이 실제 받게 되는 불이익이 컸던 반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근로자들의 업무 내용에는 변경이 없었다. 업무량의 감축이나 업무 강도의 저감, 부여된 목표 수준의 변화를 확인할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연구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오히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들을 바탕으로 대법원은 연구원의 임금피크제는 연령을 이유로 한 임금 분야에서의 차별이며,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과 관련 “이 사건 성과연급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실적 달성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 비하여 떨어진다는 것이어서, 위와 같은 목적을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대상 조치와 관련 “이 사건 성과연급제로 인해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고, 그 불이익에 대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았다”며 “피고가 대상조치라고 주장하는 명예퇴직제도는 근로자의 조기 퇴직을 장려하는 것으로서 근로를 계속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불이익을 보전하는 대상조치로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연구원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기 때문에 강행규정인 개정 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1항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구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모집·채용 등에서의 연령차별 금지) 1항은 ‘사업주는 다음 각 호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모집·채용(1호)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2호) ▲교육·훈련(3호) ▲배치·전보·승진(4호) ▲퇴직·해고(5호)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동안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주로 도입과정의 적법성이 문제됐다. 즉 임금피크제 내용을 담은 취업규칙이 ‘불이익 변경’인지, 또 ‘불이익 변경’이라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는 등 절차를 준수했는지 등이 재판에서 다퉈졌다.


지난달 나온 대법원 판결은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다.

정년 2년 연장 KT 임금피크제… 조합원 총회 없이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합의

이번 KT 사안의 임금피크제는 원래 만 58세였던 정원을 만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피크 기간 4년(만56~59세) 동안 순차적으로 임금을 삭감해 전체적으로는 연 임금총액의 100% 정도를 삭감하는 내용이었다.


만 56세가 되는 월의 기준급과 역량급의 합을 피크임금으로 해서 피크임금과 대비한 각 피크시급률을 56세(90%), 57세(80%), 58세(70%), 59세(60%)로 ‘기준급’과 ‘역량급’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임금 삭감률은 만 56세(-10%), 만 57세(-20%), 만 58세(-30%), 만 59세(-40%)였는데,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만 56세와 만 57세 때 각각 연 임금의 100%를 수령한 뒤 만 58세가 되면 정년에 이르러 전혀 임금을 받을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해 오히려 임금피크제 도입 후 근로자들이 지급받을 수 있는 ‘임금총액’은 늘어난다.(연 임금액의 200%에서 300%로)


물론 다른 직원들에게 해마다 적용되는 임금인상률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이긴 하지만(이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 쟁점으로 다퉈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KT 임금피크제의 경우 ‘기준급’과 ‘역량급’에 대해서만 적용됐고 ‘직책급’에는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삭감된 근로자들의 임금 액수는 연 임금총액의 100%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가령 1년 연봉이 1억원이었던 사람을 예로 들면, 원래는 만 56세와 만 57세 때 각각 1억원씩 총 2억원을 수령한 뒤 퇴직해야 했는데,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을 경우 만 56세 때는 9000만원, 만 57세 때는 8000만원을 받는 대신, 만 58세 때도 7000만원, 만 59세 때도 6000만원을 더 받고 일할 수 있어 2년 동안 더 일하면서 총 3억원을 수령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이 사건 임금피크제로 인해 ‘적극적인 손해’를 입게 됐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 중에서 두 번째 기준, 즉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와 관련 임금피크제 도입 전과 비교해 만 57세와 만 58세 때 받는 임금은 줄어들지만, 2년 더 근로기간이 연장돼 오히려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 총액은 증가해 불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KT와 KT노조는 2014년 4월 8일자 노사합의(사업합리화, 특별명예퇴직 실시, 복제제도 변경에 관한 노사합의)를 통해 ▲2014년 4월 30일자로 특별명예퇴직 시행 ▲2014년 5월 1일자로 정기명예퇴직제도 폐지 ▲2015년 1월 1일자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합의했다.


특별명예퇴직은 근속 15년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하며, 퇴직형과 재취업형 2가지 중 직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퇴직희망자가 재취업형을 선택할 경우, 직무연관성을 고려해 2년간의 그룹사 취업을 알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적용연령, 감액률 등 세부적인 기준은 추후 노사가 합의해 시행한다고 합의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22일 노조 홈페이지에 “내년부터 임금피크제 시행하는지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노조는 같은 날 “아시다시피 2015년 1월 1일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기로 노사합의가 됐고, 현재 노사 간 견해자가 큰 관계로 세부 실행방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실행방안이 확정되면 조합원 총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입니다”라는 답변을 게시했다.


그런데 노조는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는 등 조합원들의 의견에 대한 청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2015년 2월 24일자 노사합의를 통해 문제가 된 임금피크제 시행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정부시책에 따라 2016년 1월 1일부터 직원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2015년 3월 1일부터 정년 연장에 따른 충격 완화를 위해 60세 정년 연장이 적용되는 1958년생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임금피크제 시행과 관련 ▲임금피크제 적용대상 직원이 정년퇴직하는 경우 ‘정년퇴직 후 재고용제도(가칭 시니어 컨설턴트)를 도입, 그룹사에 재취업하도록 하고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일정 금액의 재원을 확보해 우수직원 동기부여 및 직원 가족사랑 프로그램 등 직원만족도 제고활동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회사는 이 같은 노사합의를 바탕으로 ‘인사규정’과 ‘보수규정’ 개정안을 마련한 뒤 노조의 동의를 받아 시행했다.


그런데 이 같은 임금피크제 시행에 대한 노사합의에 불만을 갖는 노조원 226명은 2014년 7월 4일 노조위원장과 노조위원장을 대리해 노사합의서에 서명한 사업지원실장을 상대로 노사합의의 무효 확인 및 근로조건의 저하와 조합원으로서 갖는 절차적 권리 침해 등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 노사합의의 무효 확인 청구 부분은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지만, 노조위원장이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고 노사합의를 체결한 것은 KT노조 규약을 위반해 조합원들의 절차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이 인정돼 노조위원장과 사업지원실장에 대한 위자료 청구는 일부 인용이 됐다. 그리고 이 같은 1심 판결은 2018년 7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표권 남용·불이익변경… “노사합의 임금피크제 무효” 주장

한편 이듬해 원고들은 임금피크제로 인해 받지 못한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면서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원고들이 무효를 주장한 근거는 ▲임금피크제 시행 등 내용이 포함된 회사와 노조 사이의 2014년 4월 8일자 노사합의에서 합의된 사항들은 노조 총회 의결사항임에도 조합원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고 ▲노조가 2014년 10월 22일 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임금피크제에 관해 “조합원 총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공지를 올리고도 조합원들의 신뢰를 배반하고 밀실 노사합의를 강행해 2015년 5월 24일자 노사합의를 체결했고 ▲회사가 근로자들의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한 것은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따른 당연한 의무 이행에 불과하고(2013년 근로자고용법 개정으로 제19조(정년) 규정이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에서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로 바뀌었다.)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업무량이나 업무강도 등의 저감 없이 임금피크 기간 4년 동안 순차적으로 연 임금액의 100%가 삭감되는데, 이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임금피크 대상 근로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위법·무효고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노사합의는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으로 현저히 합리성을 결한 데다가 단체협약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났고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조합원들에게는 손해가 되고 회사에는 이익이 되는 것으로 노조 위원장이 조합원들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대표권을 남용해 이 사건 노사합의를 체결한 것인데 회사도 노조위원장의 대표권 남용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각 노사합의는 무효(대표권 남용)라는 등 여러 가지였다.


대표권 남용은 이사 등 법인의 대표기관이 외형적·형식적으로는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대표행위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대표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은 대표권이 남용된 경우에도 일단은 법인의 행위로 유효하되, 상대방이 대표기관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법인에 대해 무효가 된다는 대리권 남용에 관한 ‘민법 제107조 1항 단서 유추적용설’에 따라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주류적인 입장이다.


즉 이번 사건에서는 노조위원장이 노조원들의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 측 이익을 위해 합의한다는 것을 회사 측도 알았거나 적어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노사합의는 무효라는 주장이다.


또 원고들은 ‘유리의 원칙’에 따라 회사와 노조가 체결한 노사합의로 회사와 각 근로자들 사이의 개별 근로계약에서 정한 연봉을 삭감할 수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원고들은 애초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의 반환을 청구했다가 회사 측이 임금채권의 단기소멸시효(3년)를 주장하자 “회사가 삭감된 임금 상당의 부당이득을 반환하거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했다.


근로기준법 제49조(임금의 시효)는 ‘이 법에 따른 임금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처럼 임금채권의 경우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때부터 거꾸로 계산해서 3년까지의 임금 차액만 청구가 가능하다. 반면 부당이득반환청구는 10년,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


부당이득반환청구는 위법·무효인 이 사건 임금피크제로 인해 회사가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들에 대한 임금 지급 의무를 면하는 이익을 얻고 원고들에게 같은 액수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이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회사 측의 고의나 과실로 인해 원고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노조가 이처럼 새로운 주장을 펼쳤지만 기존의 미지급 임금 청구를 철회한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며, “‘임금’ 청구와 ‘임금 상당액’ 청구를 선택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원고들이 무효인 임금피크제에 따라 미지급된 임금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미지급 임금 청구) 청구와 부당이득반환청구(주위적) 내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예비적)를 선택적으로 했다고 보고 세 가지를 함께 판단했다.

조합원 총회 안 거쳤지만 임금피크제 ‘노사합의’는 유효

먼저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노사합의가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은 채 체결됐고 노조위원장이 회사 측 이익을 위해 대표권을 남용해 무효라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노동조합 대표자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결집·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내부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해 만연히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 그 효력이 조합원들에게 미치게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호되는 조합원의 단결권 또는 노동조합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2016다205908)하지만, 단체협약 체결 전에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규약이 있더라도 위와 같은 규약상 대표권의 제한은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노동조합을 대표해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2003다27429)는 대법원 판결을 원용하며 “이 사건 각 노사합의는 단체협약으로서의 실질적·형식적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2014년 4월 8일자 노사합의 체결 직후 그에 따른 특별명예퇴직 실시나 임금피크제 도입 등 내용이 전 직원에게 공지됐는데, 그 이후 2014년 11월 19일 실시된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노사합의를 체결한 노조위원장이 71.47%의 득표율로 다시 위원장에 당선된 점(재판부는 득표율에 비춰 노조원들이 사실상 앞선 노사합의를 추인했다고 볼 여지가 크고, 이는 조합원들이 절차적 권리 침해를 이유로 노조나 노조위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회사와 노조는 2014년 12월 23일부터 2015년 2월 24일까지 6차례 ‘노사상생협의회’를 개최해 임금피크제의 적용연령과 감액률, 시행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해 오다 마지막 노사상생협의회 개최일인 2015년 2월 24일 노사합의에 이르렀다는 점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된 답변글에 회사나 노조를 구속하는 법적 효력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이 사건 노사합의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정년 연장·정부 지원금·재고용·추가 보상… 대상 조치 충분했던 KT 사안

재판부는 앞선 대법원의 연구원 사안과 마찬가지로 KT가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이 금지한 ‘연령을 이유로 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인지를 검토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을 이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대법원 판결을 원용하면서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이른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사안에 관한 법리이나, 이 사건과 같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안에 관하여도 하나의 참고기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기준과 관련, 2013년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돼 60세 정년이 의무화됐고, 당시 KT의 경영상태도 악화돼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강행법규인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단체협약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13년 5월 개정된 고령자고용법의 주요 골자는 근로능력이 있는 근로자의 일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사업주로 하여금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하되(제19조), 사업주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한 것(제19조의2)이다”라며 “정년 연장에 따라 사업주의 재정적 부담이 증가할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바, 기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신규 채용의 감축 등의 반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사업주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의무로도 규정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55세 이후부터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경우 2018년 12월 31일까지 일정한 지원금을 지원하도록 한 고용보험법 제23조와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8조의2를 언급하며 "관련 법령에서 정년 60세 연장에 대응해 일정 연령에 도달한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이미 예정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임금피크제를 담은 2014년 4월 8일자 노사합의 당시 KT에 근무하던 직원 3만2000여명 중 15년 이상 근무한 직원의 수가 2만3000여명에 이르렀고, 노사합의에 따라 실시된 특별명예퇴직으로 8356명이 퇴직했지만 2015년 2월 24일자 노사합의 무렵 KT에 근무하던 2만2908명 중 79.4%에 이르는 1만8185명이 40대 이상이었고, 50대 이상 근로자의 비중도 30.3%에 이르렀다.


그리고 KT의 영억이익(손실)은 2012년 1조67억원에서 2013년 3099억원, 2014년 -7194억원으로 급감했고, 당기순이익(손실) 역시 같은 2012년 7088억원에서 2013년 -3923억원, 2014년 -1조1419억원으로 금감했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피고 회사의 인력구조 및 경영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피고로서는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따른 정년 연장에 대응해 임금피크제 등을 실시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2015년 2월 24일자 노사합의 당시 피고 회사의 인력구조에 비춰볼 때 2014년도에 많은 근로자들이 명예퇴직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임금피크제 실시의 사유가 소멸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제시한 두 번째 기준인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와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오히려 근로자들이 실제 받는 임금총액이 증가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손해’를 입게 됐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봤다.


나아가 재판부는 “KT가 임금피크 대상 근로자들에 대한 급식통근비, 통신지원금, 의료비, 상조지원금, 복지포인트 등의 복리후생은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 세 번째 기준,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과 관련 재판부는 앞선 대법원 판결 사안과 다른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있어서의 중요한 차이점을 언급했다.


즉 재판부는 “원고들은 임금 삭감에도 불구하고 임금피크 기간 동안 업무량이나 업무강도 등이 저감되지 않았음을 들어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지만, 이 사건과 같이 정년 연장에 연계해 임금피크제가 실시된 사안에서는 정년 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이고, 연장된 근로기간에 대해 지급되는 임금이 감액된 인건비의 가장 중요한 사용처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업무량이나 업무강도 등에 관한 명시적인 저감조치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사업장에 대해 정부가 일정한 지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8조의2에 따라 원고들이 고용안정센터로부터 95억원이 넘는 지원금을 지급받은 점을 지적하면서 “이 지원금이 임금피크제 실시에 대해 지급된 돈임이 명백한 이상, 그 지급 주체가 회사가 아닌 정부라는 사정만으로는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對償) 조치로서의 성격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로부터 임금피크제 시행 때문에 지원받은 지원금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 중 하나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또 재판부는 2015년 2월 24일자 노사합의서에 ▲임금피크 대상 근로자들에 대해 지속적 동기부여를 위해 인사평가등급에 따른 성과보상금을 정액으로 지급하기로 했고 ▲정년퇴직한 근로자들 중 일부를 선발해 KT나 KT그룹 계열사에 재취업하도록 하는 ‘정년퇴직 후 재고용제도(시니어 컨설턴트’를 도입했고 ▲매년 일정금액의 재원을 확보해 ‘직원 가족사랑 프로그램(우리가족 孝사랑 휴가’을 시행하기로 하고 임금피크 대상 근로자들에게 별도의 TO를 배정하는 등 임금 삭감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 조치를 마련하기로 한 점도 대상 조치로 언급했다.

대표권 남용·유리의 원칙 위반도 부정… 부당이득 반환·불법행위 손배청구도 불성립

재판부는 노조위원장이 대표권을 남용해 노사합의를 체결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 “‘조합원들의 절차적 권리를 침해한 행위’와 ‘노동조합이 아닌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대표권을 남용한 행위’는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조치 의무는 사업주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의무이기도 한 점 ▲노사합의 당시 회사의 인력구조 및 경영사정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는 점은 객관적으로 명백한 점 ▲임금피크제 도입을 합의한 이후 노조위원장이 높은 득표율로 다시 위원장에 당선된 점 ▲노사협의가 체결되기 전까지 모두 6차례 노사상생협의회가 개최됐고, 협의회에 노조 간부 8명이 교섭위원으로서 참석한 점 ▲이 같은 협의 과정을 통해 임금삭감률이 당초 140%에서 100%로 감소하는 등 실제 성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노사합의 내용 중 성과보상금 정액 지급, 정년퇴직 후 재고용제도 도입, 직원 가족사랑 프로그램 시행 등도 포함된 점 등에 비춰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노조위원장이 노동조합이 아닌 오직 회사의 이익만을 도모할 목적으로 이 사건 각 노사합의를 체결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유리의 원칙’ 위반이라는 원고들의 주장도 배척했다.


근로기준법 제94조(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 1항은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원고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이라는 불리한 변경을 하면서 자신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재판부는 ‘유리의 원칙’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94조가 정하는 집단적 동의는 취업규칙의 유효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불과하므로,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근로기준법 제4조(근로조건의 결정)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는 조항이다.


또 대법원은 “따라서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며 “이 경우에도 근로계약의 내용은 유효하게 존속하고, 변경된 취업규칙의 기준에 의해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없으며,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우선해 적용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KT 사건 재판부는 “위와 같은 법리, 이른바 ‘유리의 원칙’은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이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하는 것인데,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 단체협약 내지 취업규칙과는 다른 내용의 개별 근로계약 내지 연봉계약이 체결돼 왔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원고들은 매년 ‘보수규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아 온 것으로 보일 뿐이다”라며 “따라서 ‘유리의 원칙’을 내세워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부정하는 원고들의 주장도 이유 없다”고 결론 내렸다.


원고들이 주장하는 ‘유리의 원칙’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무효라는 것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취업규칙보다 더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의 존재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번 사안에서는 그 같은 개별 근로계약이 없었기 때문에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이 사건 각 노사합의가 무효라는 원고들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고 밝힌 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들의 미지급 임금 청구 내지 그 상당액의 부당이득반환청구,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노사합의가 유효라면 회사가 부당하게 미지급한 임금액 상당의 이득을 얻고 임금피크 대상 근로자들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볼 수 없고, 고의나 과실로 손해를 끼쳤다고 볼 수도 없다는 취지다.


결론적으로 이번 KT 사안은 앞선 대법원 판결 사례와 비교해 유형이 다른 정년을 연장해주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유형의 임금피크제였는데, 재판부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사례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판단 기준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적정한 대상 조치가 있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있어서는 “정년의 연장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에 해당한다”는 점과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의 용처’라는 네 번째 기준과 관련 “임금피크 대상 근로자들의 연장된 근로기간에 대해 지급되는 임금을 감액된 인건비의 가장 중요한 사용처라고 봐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짚어줬다는 데 의의가 있어 보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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