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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감추고 늦춘다고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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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숫자를 어떻게 볼지는 사람 마음이다. 각종 경제 지표도 마찬가지다. 같은 숫자라도 좋은 것만 보이기도 하고 나쁜 것만 눈에 띄기도 한다.


지난 12일 통계청이 내놓은 5월 고용동향을 보자. 정부는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25만9000명 늘었다는 점, 15세 이상 고용률과 15~64세 고용률이 동반 상승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전반적으로 최근 고용 흐름이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언론은 제조업과 40대 취업자 수가 각각 17개월째, 43개월째 감소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주당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38만명 줄어든 반면 17시간 미만 초단기 근무 취업자 수가 35만명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과연 한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정책 수립자라면 어떤 점에 더 주목해야 할까. 정부 입장에서 정책 효과를 홍보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아픈 곳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경제는 심리'라며 부정적인 지표가 공개될 경우 오히려 국민의 소비 심리만 위축될 수 있다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정부의 지나친 정책 홍보는 올바른 처방을 내리는 데 방해만 되고 상처를 더욱 곪아 터지게 만들 뿐이다. 최고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려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언행이기도 하다.


고용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제조업의 붕괴다. 이로 인해 한참 일해야 할 30~40대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내수 침체, 수출 둔화 등 한국 경제 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해법도 제조업을 살리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처방은 단기적이다.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 세금을 퍼부어 만든 노인 일자리는 고용 지표상 숫자를 높일 수는 있으나 과연 한국 경제 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현재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경제 살리기보다는 차라리 복지 정책에 가깝다. 올해 초까지 주춤했던 취업자 수가 최근 4개월 연속 정부의 당초 목표(15만명)를 웃돌았으나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단지 고용 상황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경제 지표가 한국의 경제 둔화를 나타내주고 있다. 수출은 6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저조한 상태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을 애써 부인하던 청와대와 정부는 최근에서야 경기 하강 국면을 인정했다. 야당의 국회 복귀를 압박하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통과, 내년도 확장적 재정 투입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무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했으나 뒤늦게나마 제대로 현실을 인식한 점은 다행이다.


한 가지 걱정은 청와대와 여당, 정부가 '재정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나같이 내년도 확장적 재정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경제가 둔화 국면일 때에는 재정을 푸는 것이 교과서적인 해법이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 돈을 푸는 것은 쉽다. 국민의 인기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산업 구조조정과 혁신, 유연한 노동시장 등 뼈아픈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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