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으로 팔려간 목판 세 점 환수
의병장 김도화, 유학자 송시열 등 문집 책판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존·관리 예정
1970년대 서울의 골동품 상점에서 외국인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려나갔던 우리 옛 책판들이 50여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다. 도난당하거나 분실된 뒤 헐값에 넘겨졌던 이 나무 판들은 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만큼 귀중한 '기록 문화'의 정수였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조선 후기 주요 인물 문집 책판 세 점을 기증받았다. '척암선생문집 책판(1917)'과 '송자대전 책판(1926)' '번암집 책판(1824)'이다.
척암선생문집 책판과 송자대전 책판은 1970년대 초 미국 연방 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 한국지부에서 근무했던 애런 고든이 골동품상에서 구매해 본국으로 가져간 것이다. 그가 사망한 뒤 부인과 여동생이 보관해 오다 이번에 기증했다. 번암집 책판은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근무한 미국인이 구입해 재미동포 김은혜씨 가족에게 선물했던 것으로, 김씨가 재단의 기증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반환이 성사됐다.
돌아온 책판들은 단순한 인쇄 도구가 아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 책판'과 맥을 같이하는 희귀 유물이다. 당시 유네스코는 "지식인 집단의 공론(公論)을 통해 제작되고, 500년 넘게 보존 전승된 '인륜 공동체'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척암선생문집 책판은 을미의병(1895) 당시 안동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척암 김도화(1825~1912)의 문집(권 11, 17~18장)을 새긴 것이다. 애초 1000여점이 판각됐으나 대부분 유실돼 유네스코 등재 당시 열아홉 점만 포함됐다. 2019년 독일 경매에 출품된 한 점을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으로 힘겹게 매입한 적이 있을 만큼 희소성이 높다.
함께 환수된 송자대전 책판에는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조선 후기 유학자 송시열(1607~1689)의 문집으로 1787년 처음 간행됐으나,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전량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이번에 돌아온 유물은 1926년 후손과 유림들이 다시 나무를 깎아 만든 판본이다. 망실의 위기 속에서도 학문을 잇고자 했던 선조들의 치열한 정신이 담겼다.
번암집 책판은 영조와 정조 시대를 이끈 재상인 번암 채제공(1720~1799)의 문집(권 26, 3~4장)이다. 본래 1159장이 있었으나 현재 30% 수준인 358점만 국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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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기존의 장판각 소장 자료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예정"이라며 "해외로 흩어진 기록 유산을 끝까지 추적해 우리 역사의 빈 페이지를 채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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