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서 목간 329점 출토
하위직까지 기록한 정교한 '관료제' 확인
종이 대신 나무 깎아 쓴 '삭설' 수북
치열했던 행정 현장 증언
백제가 냉철한 성과주의와 정교한 문서 행정으로 작동하는 고도의 '시스템 국가'였음이 드러났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사비기 왕궁 추정지)에서 발굴한 목간(木簡) 329점을 공개했다.
6세기 백제 행정의 치밀함을 보여주는 거대한 '블랙박스'다. 가장 학계의 눈길을 끄는 목간은 1500년 전의 '인사 발령장.' 끈으로 엮어 보관하던 편철 목간(31번)에서 '공사위소장군도족이(功四爲小將軍刀足二)'라는 문구가 확인된다.
오현덕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공적이 네 개 있는 '도족이'라는 인물을 소장군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인사 관련 문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막연한 평가가 아닌, 수치화된 성과를 바탕으로 관직을 부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목간에선 관등을 먼저 쓰고 이름을 적는 표기법이 확인됐다. '무독문사귀문(武督汶斯貴文)'이라는 기록에서 '무독'은 16관등 중 13등급인 하위직이다.
방국화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고대 문자자료 책임연구원은 "관등명을 앞에 쓰고 이름을 뒤에 적는 백제 목간의 서술 방식을 잘 보여준다"며 "중하위 관등의 실무자 이름까지 문서로 기록했다는 것은 이곳에서 실질적인 행정 실무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곳이 치열한 행정 현장이었음은 바닥에 널린 '삭설(削屑)'도 증언한다. 삭설은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기 위해 칼로 깎아낸 얇은 나무 부스러기다.
방 연구원은 "당시 종이는 매우 비쌌기 때문에 중하위 관리들은 주로 목간을 사용했다"며 "목간에 글자를 쓰고, 수정하거나 재사용하기 위해 표면을 칼로 깎아내는 과정에서 삭설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월 단위 기록이 적힌 삭설은 당시 관료들이 장부를 작성하고 수정하며 문서를 지속해서 관리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목간에 등장하는 '경신년(540년)'과 '계해년(543년)'은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538년)한 직후다. 오 실장은 "도성 내부를 상·전·중·하·후부의 5부(部)로 나누어 운영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5부 목간이 한 곳에서 모두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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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비 천도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준비된 기획 신도시로의 입주였음을 시사한다. 오 실장은 "웅진군 목간은 백제의 옛 도성인 웅진이 사비 천도 직후 '군(郡)' 단위로 편제됐음을 보여준다"며 "지방 행정 체계의 실제 운영 양상을 재검토해야 할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부여=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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