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지를 버린 바퀴 하나가 달 피트·용암동굴 탐사의 한계를 넘었다
달 탐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공간은 표면이 아니라 지하다.
지하 공동 붕괴로 형성된 '달 피트(Pit)'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용암동굴(Lava Tube)은 극심한 온도 변화와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천연 은신처로, 장기 달 거주지 후보이자 태양계 초기 지질 기록을 간직한 장소로 꼽힌다. 그러나 급경사와 암반, 낙하 위험이 겹친 이 지형은 지금까지 어떤 국가도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문제는 늘 같았다. 어떻게 내려갈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올라올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해 한국 연구진이 '바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이동 수단으로, 그러나 가장 비범한 방식으로 답을 내놓았다.
이대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우주연구원·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무인탐사연구소,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양대학교와 함께 달 피트와 용암동굴 탐사용 로버에 적용 가능한 '전개형 에어리스 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로봇 전문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 12월 호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달 용암동굴 무결 탐사를 위한 소프트 전개형 에어리스 휠(Soft Deployable Airless Wheel for Lunar Lava Tube In-tact Exploration)"이다.
복잡한 기계를 버리고, 구조로 답하다
기존 달 탐사 전략은 대형 로버에서 소형 로버를 사출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그러나 소형 로버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급경사와 장애물에 취약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안된 가변형 휠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냉간 용접, 불균일 열팽창, 연마성이 강한 달 먼지 등 달 특유의 극한 환경에서 힌지와 기계 구동부 자체가 취약점이 된 것이다.
연구팀의 접근은 정반대였다. "움직이는 부품을 없애자."
다빈치 다리와 비교한 전개 가변형 휠 설계 원리. 접착제 없이 건설이 가능한 다빈치 다리와 같이 교차 얽힘 구조를 이용하여 힌지 및 접착 없이도 전개 변형과 형상 유지 모두가 가능하다. KAIST 제공
그 출발점이 된 것이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고안한 '다빈치 다리'다. 다빈치 다리는 못이나 접착제 없이도 나무 부재들이 서로 교차하며 얽히는 구조만으로 하중을 지탱한다. 맞물림 자체가 구조 강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KAIST 연구팀은 이 교차 얽힘(interlocking) 구조를 전개형 바퀴 설계에 적용했다. 힌지나 기어 없이도 접히고 펴질 수 있도록, 구조 그 자체가 변형과 형상 유지를 동시에 담당하게 만든 것이다. 즉, 기계로 해결하던 문제를 구조로 해결한 바퀴다.
이를 위해 종이접기(오리가미) 원리와 소프트 로봇 기술을 결합하고, 우주 환경에서도 반복 변형이 가능한 탄성 금속판을 적용했다. 접힌 상태에서는 작은 부피로 수납되고, 전개되면 자연스럽게 큰 원형 구조를 형성한다.
23㎝에서 50㎝로…'소형 로버의 한계'를 넘다
이 전개형 에어리스 휠은 접었을 때 지름이 23㎝에 불과하지만, 전개 시 최대 50㎝까지 확장된다. 덕분에 소형 로버에 장착해도 대형 바퀴를 단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며, 급경사와 큰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공기를 넣지 않는 에어리스 구조여서 파손 위험도 낮다.
실험 결과는 설계를 뒷받침했다. 인공 월면토 환경에서 안정적인 주행 성능이 확인됐고, 달 중력 기준 약 100m 높이에서 자유 낙하시켜도 구조와 기능이 유지될 만큼 높은 충격 내구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달의 낮과 밤을 오가는 극한 열 환경을 반영한 정밀 열 해석을 통해 구조적 안정성도 검증했다.
이대영 KAIST 교수는 "이번 전개형 바퀴는 그동안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달 피트와 용암동굴 진입 문제에 세계 최초로 해답을 제시한 기술"이라며 "이동성이라는 가장 큰 기술적 장벽을 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연구진 사진. 위 왼쪽부터 이성빈 KAIST 박사과정, 조남석 무인탐사연구소 대표, 이건호 연구원, 이승주 연구원, 김준서 KAIST 석사과정, 심규진 항우연 연구원, 장종태 항우연 책임연구원, 김세권 KAIST 교수, 서태원 한양대 교수, 심채경 천문연 센터장, 이대영 KAIST 교수. KAIST 제공
달 탐사의 질문이 달라진다
이 연구의 의미는 단순히 새로운 바퀴 하나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동안 달 탐사의 질문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였다면, 이제는 "어디로 들어갈 수 있는가"로 바뀐다. 표면을 도는 탐사에서, 지하 공간을 전제로 한 탐사 시나리오가 현실적인 선택지로 올라온 것이다.
심채경 천문연 센터장은 "달 피트와 용암동굴은 과학적·탐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라며 "이번 성과는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기술적 장벽을 실질적으로 낮췄다"고 평가했다. 장종태 항우연 책임연구원도 "낮과 밤의 온도 차가 300도에 이르는 달 환경을 고려해 정교하게 설계된 기술"이라며 향후 실제 달 환경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급경사와 낙하 위험을 견디는 이동 기술은 달을 넘어 화성, 소행성, 얼음 위성 등 차세대 심우주 탐사 환경으로 확장 가능성을 갖는다. 다른 우주 선진국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구조 기반 원천 기술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우주 탐사 경쟁 속에서 한국이 기술적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금 뜨는 뉴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혁신연구센터사업(IRC), 이공분야기초연구사업, 우주항공청 탐색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달의 동굴로 들어가는 첫 바퀴는, 그렇게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과학을읽다]달의 동굴로 들어가는 바퀴](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121811045261216_176602349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