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중대재해 公기업 기관장 해임 근거마련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기업 과징금
정부가 중대재해 사고 비중이 높은 영세사업장과 외국인·특수고용노동자·고령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내년까지 2조원 규모의 재원을 투입한다. 앞으로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은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간을 강화한다.
고용노동부는 15일 이런 내용이 담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공개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라며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은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안전 사각지대 해소다. 우선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 설비와 장비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정부는 2026년까지 총 2조723억원을 투입해 재정·인력·기술을 종합 지원한다. 1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 현장의 추락·끼임·부딪힘 사고 예방을 위해 433억원 규모의 신규 설비·품목 지원 사업을 신설했다.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 예산을 370억원으로 확대하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안전 관리에 도입한다. 소규모사업장이 밀집한 산업단지에는 공동안전관리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노사 협·단체와 협업하며, 자부담률을 낮춰 안전관리자 선임 부담도 완화한다. 중상해재해(요양기간 90일 초과)가 발생한 사업장 8000곳을 대상으로 선제적 컨설팅을 실시하고, 위험요인 개선을 위한 재정 지원과 연계키로 했다.
외국인 노동자 보호 조치도 강화된다. 외국인(E-9·H-2) 사망사고 발생 시 해당 사업주의 외국인 고용제한 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늘린다. 아울러 장기근속 외국인 노동자 200명을 '외국인 안전리더'로 지정해 동료 노동자에게 안전교육과 노하우를 전수하도록 한다. 퀵서비스 기사 등 특수고용 종사자에게는 유상운송보험 가입과 안전교육 의무화를 강화한다.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를 위해서는 작업환경 개선 비용 30억원을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산재 예방에 동참한다. 정부는 감독 대상 사업장을 2028년까지 61만 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노동부 감독 대상 사업장은 올해 2만4000곳에서 2028년 7만 곳으로 대폭 늘린다. 지자체 역시 30인 미만 사업장 3만곳을 점검하고, 지붕·벌목 등 지역별 위험요인에 맞는 예방 사업에 143억원을 투입한다.
영세사업장에 대해서는 '안전지킴이'를 활용한다. 역량과 경험이 있는 퇴직자를 1000명 채용·위촉해 18만개소를 순찰하고, 민간재해예방기관을 통해 33만개 사업장을 집중 지도·관리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모국어·쉬운 한국어 기반 기초 안전교육 온라인 과정도 개설된다. 최고경영자(CEO)·재직자 대상 사전교육과 직업계고 방문 안전교육도 포함된다.
원청의 예방 의무 강화
건설 현장에서 원청의 예방 의무는 강화된다. 도급 계약 시 적정 공사비와 충분한 공사 기간을 보장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한다. 발주자에게는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를 부여하고, 부당 특약에 대한 과징금 부과 수준을 상향한다. 또한 폭염 등 기상재해를 공사 기간 연장 사유로 인정해 노동자 안전을 확보한다.
공공기관도 선도적 역할을 맡는다. 중대재해 발생에 책임이 있는 기관장은 해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 산재 예방 배점을 현행 0.5점에서 대폭 상향한다. 지방공기업도 안전활동 수준 평가를 확대한다.
불법 하도급에 대한 단속은 정례화되고, 제재 수준이 강화된다. 산재 예방 능력을 갖춘 적격 수급인 선정·계약을 의무화해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한다.
노동자의 권리도 강화된다. 원·하청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확대해 자체 안전규범을 수립하고 이행 책임을 부여한다. 노동자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새로 부여받고, 그 요건도 완화된다.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사고 경위·원인 등을 담은 재해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500인 이상 사업장에는 안전보건공시제가 도입된다.
산업안전 인프라도 대폭 확대된다. 우선 산업안전감독관을 확충하고, 자치단체에 30인 미만 사업장 예방 감독 권한을 부여한다. 이를 위해 '근로감독관 직무 및 사무위임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고, 통일적 집행기준을 마련한다. 기술직군 채용을 확대하고, 산업안전보건 직무능력 공인인증제를 도입해 승진 시 가산점을 부여한다. 임용 후에는 도제식 훈련과 현장 중심 체험·실습 교육으로 전문성을 높인다.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헌법소원 기각 요구 및 엄정 집행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기업 과징금
안전·보건조치 위반에 대한 벌금이 미미했던 기존 제도와 달리, 앞으로는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과징금이 부과된다. 부과된 과징금은 산재 예방에 재투자된다. 건설사 영업정지 요건도 확대돼 '연간 다수 사망'을 포함하고, 사망자 수에 따라 영업정지 기간을 기존 2~5개월에서 늘린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은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간이 강화되고, 시설공사·물품·용역 등 공공조달 평가 시 중대재해 발생 여부가 반영된다. 금융권과 자본시장 평가에도 중대재해 리스크가 반영된다. 대출 금리·한도, 보험료 산정 기준이 달라지고, 상장사는 중대재해 발생 및 판결 사실을 지체 없이 공시해야 한다.
사고 조사·수사도 강화된다. 노동부 장관이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긴급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신설한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은 신속 수사·송치·기소 대상이 되며, 양형위원회와 협의해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을 상향하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도 새로 마련한다.
이번 대책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 부처가 협력하는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으로 마련됐다. 정부는 노사단체·전문가 간담회, 타운홀미팅, 장관급 회의 등을 거쳐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 이행 과제를 도출했다. 노동부가 중심이 돼 추진해온 기존 산재 감축 대책과 달리 이번 대책은 범부처 협업을 통해 사고의 근본적·구조적 원인 해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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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책 발표 이후에도 노사, 전문가, 관계 부처와 이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노동안전 문화가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김 장관은 "올해를 산재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열어 종합대책의 실천 방안을 논의하고, 공공기관이 안전관리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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