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소멸, 곧 생물종 소멸
생태계 영양분·먹이 공급
습지센터, 신규 30곳 발굴
우리나라 습지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단순한 자연경관의 변화가 아니라 수자원 관리, 탄소 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등 국가적 차원의 핵심 생태계 서비스가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국립생태원 습지센터는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국내 습지의 조사·보전·복원은 물론 국제협력까지 아우르며 전문기관으로써 국가 습지 보전정책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제4차 전국 내륙습지 모니터링(2016~2020년) 결과 2017년 기준 습지 인벤토리에 등록된 총 2499개 습지 가운데 176개가 이미 소실했다. 이는 전체 습지의 약 7%에 해당하는 수치다. 습지 소실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연이은 이상기후가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고 매립과 개발, 경작지 확대 등 인간 활동이 파괴 속도를 가중했다. 단순한 면적 축소가 아니라 인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구조적 변화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습지 소멸은 곧 생물 종의 소멸로 직결된다. 습지 생태계에 의존하는 종은 단순한 개체군을 넘어 먹이사슬 전체와 연결돼 있어, 하나의 서식지 파괴가 연쇄적 멸종 위험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를 "생태 기반 붕괴의 경고 신호"라고 지적한다.
국가적 생태계 서비스의 보고, 습지의 다층적 기능
습지는 홍수조절, 해안선 안정화, 수질정화, 탄소흡수 등 다차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 생태계다. 천연 저수지로 강우 시 빗물을 흡수·저장해 하류로 흘러가는 유량을 조절하고 홍수 피해를 줄인다. 연안습지는 자연 방파제 역할도 한다. 태풍이나 해일이 발생했을 때 파도의 에너지를 흡수·분산해 육지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생태계에 영양분과 먹이를 공급한다. 하구·범람원 습지는 퇴적된 영양분으로 생산성을 높여 미생물, 곤충, 어류, 조류 등 다양한 생물 종의 먹이사슬을 유지한다. 탄소 저장고 역할도 한다. 습지는 전 세계 지표면의 6%를 차지하지만, 지상 탄소의 40% 이상을 저장한다. 특히 이탄지·산지습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흡수에 결정적 역할을 해 기후 위기 대응 핵심 생태계로 꼽힌다.
습지 식물과 토양은 과잉 영양염류와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자연 정수기 기능도 담당한다. 미국 플로리다 삼나무 늪지는 유입 질소의 98%, 인의 97%를 걸러내는 것으로 보고됐다. 무엇보다 습지는 생물 종 다양성의 보고다. 전 세계 생물 종의 40% 이상, 포유류의 12% 이상이 습지에 의존한다. 약 10억 인구가 습지를 통한 어류 단백질에 의존한다.
우리나라 습지의 총면적은 3635.6㎢로 국토의 3.6%를 차지한다. 2016~2020년 내륙습지 조사에서는 1061곳에서 총 6786종의 야생생물이 확인됐다. 식물 2368종, 어류 199종, 조류 288종, 포유류 37종, 곤충 3623종 등이다. 특히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82종 가운데 116종(41%)이 습지에 의존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습지센터, 보전의 최전선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국립생태원 습지센터는 국내 습지 보전의 핵심 기관으로 기능한다. 2012년 환경부가 설립하고 2019년 국립생태원으로 이관했다. 약 1만㎡ 부지에서 전문인력 23명이 전국 습지를 대상으로 조사·연구·보전 활동을 수행한다. 주요 업무는 내륙습지 전수조사 및 정밀조사, 습지 인벤토리 구축, 복원 및 관리계획 수립 등이지만, 단순 조사에 그치지 않고 습지정보시스템 운영을 통해 국가 정책·학술연구의 기반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2016년부터 '습지기초지도'를 제작, 신규 습지 30곳을 발굴한 것 역시 주요 성과다.
습지센터는 국내 업무를 넘어 국제무대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습지 보전 국제협약인 '람사르협약' 이행을 위한 습지 등록, 습지도시 인증제 운영, 총회 의제 대응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2015년 제12차 당사국총회에서는 대한민국과 튀니지가 공동 발의한 '람사르습지 도시 인증제' 결의안을 채택하며 국제사회에서 선도적 입지를 확립했다.
복원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영양 장구메기 습지' 복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KT&G와 협력, 지난해 9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올해 3월 대규모 산불로 식생과 서식지가 큰 피해를 입어 대구지방환경청, 영양군과 협력해 중장기 복원계획을 수립해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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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아시아 습지보전 허브 역할을 목표로 한다. 국립생태원 습지센터는 지난 10여년간 축적한 데이터, 연구성과, 국제협력 경험을 기반으로 향후 아시아 지역 습지보전 거점기관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습지는 기후변화 시대의 전략적 자산이자 인류 공동의 생명 기반"이라며 "앞으로도 과학적 조사·복원, 시민참여 확대, 국제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보전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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