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잇단 대형 산업재해 사고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와 국회가 연이어 강력한 처벌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포스코이앤씨, SPC 등 대기업 건설·제조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계속되자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다. 다만 경영계는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 단순한 처벌 강화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18일 정부 및 정치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기존 처벌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 단순 벌금 부과를 넘어 경영 활동 자체에 타격을 줄 만큼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사고 상황에서 근로자 개인에게까지 책임을 강화하는 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부는 구체적으로 사고 발생 시 기업의 영업정지 및 공공 입찰 참여 제한 요건을 개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할 경우 고용부가 국토교통부에 건설사에 대한 영업정지와 입찰 제한 요청을 할 수 있는데 고용부는 이를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산업 재해의 규모보다 발생 횟수 등을 강화하는 조치인 셈이다.
또 안전조치 위반에 따른 다수의 사망사고 발생 시 법인에 과징금을 물리는 방안도 검토한다. 과징금 규모는 정액으로 하는 방식과 매출액에 대해 일정 비율로 부과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매출에 대한 일정 비율로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산업재해로 인해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업정지 요청 이후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건설사는 등록말소 요청 규정을 산업안전보건법에 신설하는 방안도 힘을 얻고 있다. 건설업 외에도 사망사고로 인한 인허가 취소 등의 업종을 추가 발굴해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국회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도입하는 개정안 발의가 줄을 잇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에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18건 발의됐다. 근로기준법 개정안까지 포함하면 수십 건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반복적·고의적 법 위반 사업주에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근로자가 폭염이나 한파 등 기후 위험 상황에서도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임금 손실분을 정부가 보전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역시 폭염·혹한 등 기후변화로 인한 근로자 건강 예방을 위해 사업주의 냉난방 시설 설치 의무를 법에 추가하는 방안을 내놨다.
반면 산업계는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단순한 처벌 강화로는 산재 예방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022년 1월부터 시행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역시 논란이 크다는 것이다. 이 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법인에는 최대 5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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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재해 사망자는 지속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자 수는 10만8379명에서 지난해 14만2771명으로 증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사고는 2021년 248명에서 지난해 250명으로 늘었다. 산업계는 산업재해의 주요 요인으로 정부의 최저가 입찰제를 꼽았다. 저가 수주 경쟁이 치열하고, 발주받은 업체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 투자를 줄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계의 건의 등을 바탕으로 산업재해로 인한 인명피해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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