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로미오와 줄리엣' 오버랩
풍자·유쾌한 결말 재미 더해
달빛 아래, 한 남성이 발코니에 선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여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더 달콤한 맹세를 들려달라 청한다.
영락없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남자의 이름은 로미오가 아닌 '윌 셰익스피어'이고 여자의 이름은 줄리엣이 아닌 '비올라'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실제 연애담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남자 주인공 윌은 '로미오와 줄리엣' 희곡을 쓰는 극작가, 여주인공 비올라는 연극을 좋아하는 부유한 상인의 딸이다. 윌과 비올라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 비올라에게 이미 집안에서 정한 정혼자가 있는 상황에서, 윌과 비올라는 무도회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한다.
기발한 설정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치와 참신함을 잃지 않는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 뿐 아니라 '베니스의 상인', '말광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등 셰익스피어 대표작들을 극 중 절묘하게 녹여내 감탄을 자아낸다. 대본을 쓴 작가들의 솜씨에 놀라워할 수 밖에 없는데, 실제로 이 작품의 원작 대본은 현존하는 최고 극작가 중 한 명이 집필했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귀네스 팰트로와 조지프 파인스가 주연한 1998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1999년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후보 및 최다 수상작으로,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대본 작업을 함께한 마크 노먼과 톰 스토파드도 각본상을 받았다. 노먼이 초안을 쓰고 스토파드가 이를 수정·보완하는 방식으로 함께 작업했다.
스토파드는 현 시대 최고의 극작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수상 이력만 놓고 보면 '현대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만하다. 스토파드는 50여년에 걸쳐 토니상 연극 부문 작품상만 5회 수상해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스토파드는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로 1967년 처음 토니상을 받았고 이어 '트래베스티스(1976)' '리얼 씽(1984)' '유토피아의 해안(2007)'으로, 2023년에는 '레오폴슈타트'로 토니상을 거머쥐었다.
영국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로렌스 올리비에상 작품상도 2회 수상해 공동 최다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 공연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브닝 스탠더드상도 6회나 받아 최다 수상자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2014년 연극으로 제작돼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세계 초연했다. 연극의 대본은 스토파드의 동의를 얻어 영국 극작가 리 홀이 썼다. 리 홀은 '빌리 엘리어트'의 영화와 뮤지컬 대본을 써 이름을 알린 극작가다.
절묘한 서사에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절대왕정을 풍자한 장면들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당시에는 여성의 무대 출연이 사회적·종교적으로 금기시됐다. 이에 무대에 서고자 하는 비올라는 콧수염을 붙이고 남장을 하고 연기에 도전한다. 결국 여러 갈등을 딛고 자신의 본모습 그대로 무대에 서며 통쾌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지금 뜨는 뉴스
16세기 런던의 극장들이 목재로 지어졌다는 점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원목만을 사용했다는 무대 세트는 고풍스러운 멋을 더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