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른바 '노란봉투법' 개정을 놓고 노동계의 기대와 정부의 정책 현실 사이에서 이해관계 조율이라는 중책을 떠안게 됐다. '노동존중'을 내건 이재명 정부의 상징 과제인 노란봉투법이 당초 예상과 달리 시행 유예안과 핵심 조항 축소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노동계의 반발이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다.
28일 관계 부처 및 정치권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여당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과 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당정 간담회를 통해 노란봉투법 재개정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 심사를 앞두고 당정이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은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제기된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를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법원이 파업에 참여한 노조에 4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판결하자 시민사회는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노조에 전달하며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노동계는 사용자 범위 확대, 쟁의행위 인정 범위 확장, 파업 노동자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노란봉투법의 핵심 사항으로 주장하고 있다.
법안은 지난해 8월 제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됐지만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이재명 정부는 노조 출신 김영훈 장관을 고용노동부 수장으로 임명하며 법안 재추진 의지를 표명했지만 최근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전달한 수정안의 내용이 알려지며 상황은 급변했다.
고용부가 제시한 정부안에는 시행 1년 유예 조항이 포함됐고, 쟁점이 되는 '사용자 범위 확대' 등의 핵심 내용이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귀책 사유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차등화 조항 역시 제외되면서 사실상 법안의 골격이 약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노동계는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23일 전국 민주당사를 점거하는 농성을 시작으로 25일부터 국회 앞에서 본격적인 농성에 돌입했다. 산하 금속노조 역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실을 항의 방문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고, 한국노총은 이날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법안의 후퇴 저지 및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다.
김 장관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그는 지난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당정 협의가 공식적으로 열리면 그동안 수렴한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시아경제 통화에서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현재 7건 제출된 의원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고 있고, 정부안을 제출한 적은 없다"며 "여당에서도 중재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는 만큼 충분히 법안 조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불신은 쉽게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2.9%로 확정하며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 첫해 기준으로 가장 낮은 인상률을 기록하자 정부의 '노동존중' 기조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다. 노동계는 앞서 최저임금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 수용과정에서도 정부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지금 뜨는 뉴스
야당인 국민의힘을 설득하는 것 역시 과제다. 야당은 노란봉투법이 기업 활동과 국가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줄곧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야 간 정치적 합의 없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까지 무난히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장관은 이날 "모든 국민은 근로 권리를 가지고 근로 조건은 인간 존엄성에 기초해 노사가 사회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헌법적 가치와 현실의 불일치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소송과 극한투쟁이라고 하는 사업 현장의 어려움을 지속해왔다"며 "국회에서 논의되는 노조법 2·3조 개정은 이런 불일치를 조속히 해소해서 산업 현장에 새로운 참여와 협력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