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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위상수학'…첨단 소재 산업·의료 혁신 숨은 설계자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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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절연체 등 '위상 물질'과 데이터에
'모양' 입힌 TDA로 신세계 열어

당신이 수시로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오늘 아침 마신 커피 한 잔에도 알게 모르게 '수학적 구조'가 숨어 있다. 특히 형태가 변해도 그 본질적인 특성은 유지된다는 '위상수학(Topology)'의 원리가 최근 첨단 소재와 바이오 기술 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성을 탐구하는 이 난해한 학문이 어떻게 꿈의 신소재를 탄생시키고, 질병 진단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숨은 설계자'가 될 수 있었을까?

난해한 '위상수학'…첨단 소재 산업·의료 혁신 숨은 설계자로 부상 컵(손잡이의 구멍)과 도넛이 구멍이 1개라는 같은 숫자를 공유하는 것처럼 형태가 달라도 본질적인 속성이 같으면 같은 위상으로 묶인다는 것이 위상수학적 관점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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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수학, '위상 물질'이라는 신세계를 열다

위상수학은 모양을 아무리 구겨도 달라지지 않는 숫자를 찾아내는 '위상적 불변량'을 연구한다. 컵과 도넛이 구멍이 1개라는 같은 숫자를 공유하듯, 형태가 달라도 본질적인 속성이 같으면 같은 위상으로 묶인다. 이런 위상수학적 관점을 고체 결정에 적용했을 때 과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격자를 약간 뒤틀어도 같은 위상을 지닌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가 유지되는 물질, 즉 경계에서 고유한 전자 상태를 견고하게 지키는 물질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위상물질(Topological Materials)'이라 부른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이 바로 이 위상물질 연구자들에게 수여되며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대표적인 위상물질이 '위상절연체(Topological Insulator)'다. 내부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완벽한 절연체지만, 물질의 가장자리나 표면에서는 거의 저항 없는 전류가 흐른다. 이처럼 외부 환경의 변화나 불순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경계 전류 덕분에 위상절연체는 차세대 저전력·고내성 소자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난해한 '위상수학'…첨단 소재 산업·의료 혁신 숨은 설계자로 부상
위상절연체가 보여주는 전기의 새로운 길

위상절연체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특수한 물질이다. 마치 건물 안쪽은 벽으로 꽉 막혀 있어 들어갈 수 없지만, 외벽 바로 안쪽에는 끊김이 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복도(표면·가장자리)가 있는 것과 같다. 위상절연체의 전자는 이 복도를 따라 이동하며, 내부 결함이나 외부 충격이 있어도 흐름이 잘 끊기지 않는다.


이 특별한 통로에서 전자는 '스핀'이라는 고유한 성질을 지닌 채 움직인다. 위상절연체는 전자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스핀 방향이 자동으로 고정되는 '스핀-운동량 잠금' 현상을 보인다.


마치 고속도로의 전용 차선처럼, 특정 스핀 방향을 가진 전자는 뒤로 산란하거나 엉키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흐른다. 스핀이 고정되어 되튀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전류는 매우 안정적이고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어 '전자의 고속도로'를 형성하는 것이다.


외부 충격에도 안정적인 '전자의 고속도로'

위상절연체는 저전력·고효율 소자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 반도체 칩은 전자가 전하를 실어 나르며 데이터를 쓰고 지우는 과정에서 충돌과 마찰로 열을 내고 전력을 소모한다.


하지만 위상절연체 표면의 '전자의 고속도로'는 전자가 거의 튕기지 않고 막힘없이 신호를 전달한다. 이는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발열을 줄여 냉각 장치 부담을 작게 한다. 스마트폰처럼 배터리와 열 관리가 중요한 기기나, 대형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AI) 가속기에서 특히 가치가 크다.

난해한 '위상수학'…첨단 소재 산업·의료 혁신 숨은 설계자로 부상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시대도 열었다. 위상절연체의 스핀-운동량 잠금 특성은 전하 전류를 효율적인 스핀 전류로 변환시키는 데 유리하다. 스핀트로닉스 소자는 전자가 자리를 크게 옮기지 않고도 스핀 방향을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 정보 상태를 전환할 수 있다.


이동 거리가 짧고 필요 전류가 적으니 열이 줄고, 전원을 꺼도 스핀 방향이 그대로 남아 빠르고 저전력이며 '꺼져도 잊지 않는' 차세대 메모리(MRAM)와 로직을 설계할 수 있게 한다.


양자컴퓨터의 든든한 배경도 제공하고 있다. 양자비트(큐비트)는 외부 잡음에 쉽게 흔들려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그러나 위상절연체 표면은 잡음을 잘 흡수하지 않는 특유의 안정적인 양자 상태를 제공한다.


여기에 초전도체를 겹치면 전자쌍이 서로 꼬여 '마요라나 페르미온(Majorana Fermion)'이라는 특수한 양자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이 상태는 위상적으로 보호되어 형태가 살짝 비틀어져도 성질이 바뀌지 않아 잡음에 강한 위상 기반 양자비트를 구현할 씨앗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위상수학, TDA로 '똑똑한 AI' 만든다

위상수학은 보이지 않는 구조를 다룬다. 전자가 흐르는 물질 내부에서든, 데이터가 흘러가는 추상 공간에서든 마찬가지다. 물질은 위상적 성질로 전류의 흐름을 바꾸고, 데이터는 위상적 구조로 패턴을 드러낸다.


위상수학의 힘은 전자를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형태가 같으면 성질도 같다'는 원리가 숫자로 빼곡한 데이터에서도 숨어 있는 구조를 찾는 열쇠가 된다. 이 관점을 실제 분석 기법으로 발전시킨 것이 위상 데이터 분석(Topological Data Analysis·TDA)이다.


점 구름(point cloud) 형태로 흩어진 데이터를 이어 붙여 모양을 만들고 구멍·고리 같은 위상적 특징을 계산해 본질적인 패턴을 끌어낸다. 한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전체적인 형상'을 잡아내는 셈이다.


특히 AI 학습 과정에서 TDA는 부분적인 통계가 놓치는 전역 구조를 보완해 준다. 모델이 데이터의 큰 틀까지 이해하면 과적합 가능성이 줄고, 새로운 상황에서도 예측력이 높아진다. 그래서 바이오·금융·이미지 처리 등 여러 분야에서 TDA를 접목한 AI의 빠른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난해한 '위상수학'…첨단 소재 산업·의료 혁신 숨은 설계자로 부상 최수영 아주대학교 수학과 교수.

"어렵더라도 꾸준히 위상수학적 관점 접목 시도해야"

최수영 아주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TDA는 기존 데이터 처리 방법으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기 때문에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어떤 데이터든지 적절한 위상적 구조를 준다면 데이터마이닝 성능은 무조건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TDA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환자의 유전체 정보, 의료 영상, 임상 기록 등 방대한 양의 의료 데이터를 TDA로 분석한다면 질병의 조기 진단과 환자 맞춤형 치료법 개발은 물론, 신약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다만 이처럼 혁신적인 위상수학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상수학자와 산업계의 실질적인 협업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 교수는 "데이터를 다루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위상수학적 관점의 접근이 잠재력을 가진다"면서도 "현장에서 위상수학을 적용할 때 이해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어렵더라도 꾸준히 위상수학적 관점의 접목을 시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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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난해한 수학'으로만 여겨졌던 위상수학은 이제 물질의 한계를 뛰어넘어 '꿈의 신소재'를 만들고, 데이터 속에서 숨겨진 통찰을 찾아내 '똑똑한 AI'를 구현하며 인류의 삶을 바꾸는 '숨은 설계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이 펼쳐낼 미래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인류의 삶과 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혁신으로 다가올 것이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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