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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달리기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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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전 세계 100만부가 판매되고, 영국 전역에 달리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벨라 매키의 에세이다. '가디언'의 기자로 차분히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안장애와 이혼은 일상을 무너뜨렸다. 그런 삶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선택한 것이 달리기. 단순하고 원초적인 움직임이 그의 삶을 구해내는 과정을 소개한다. 달리기가 불안장애를 완치시키거나, 결혼 생활을 회복시켜주지 못할지라도 인생을 자기만의 속도와 주법으로 달려보는 경험이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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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달리기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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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파국을 맞고 몇 주가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여파에 비실거렸다. 직장에서는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숨죽여 울었다. 집에 가면 바로 잠옷으로 갈아입고 TV를 틀어 멍하니 아무 방송이나 봤다. 외출하는 날은 술을 때려 붓고 또 울었다(이때는 소리 내서 울었고 친구들도 좋아했다). 하지만 달릴 때는 그 모든 것을 잊었다. 누군가의 안쓰럽다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됐고, 포옹을 하며 숨통을 조이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나를 보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나는 형광색 옷을 입고 나른하게 달리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도시에 녹아들었다. - 「1K_도망치는 게 아니라 달리는 중입니다」 중에서

불안과 걱정은 엄연히 다르다.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정신 질환을 흉으로 보는 분위기를 완화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단순히 '슬픈 느낌'을 의미하지 않고 산후 우울증이 단순히 '육아 스트레스'를 의미하지 않듯이 불안증도 초조한 것과 다르다. 그리고 굉장히 흔하게 볼 수 있다. - 「2K_우리는 조금 돌아가고 있을 뿐」 중에서

'딱 1분만 더!'가 나의 슬로건이 됐다. 1분만 더 달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매초가 지옥 같아도 1분은 버틸 수 있다. 내 경우에는 1분만 더 뛰자고 기를 쓰고 발을 떼다 보면 최소 5분은 더 뛰었다. 그리고 내가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낯선 곳에 가도 공황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요와 여유를 누렸다. 나의 불안한 마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정서였다. - 「6K_공황을 뚫고 달린다」 중에서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인생에 대한 발언권을 모두 잃은 기분이었다. 남편은 날 버렸고, 내 안에서 갈수록 커지는 불안감이 언젠가 나를 집어삼킬 것이 뻔한데도 방법이 없었다. 이런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이 갑자기 내게서 달아나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이 완전히 도망가 버리기 전에 고삐를 잡으려고 황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에는 그 고삐가 손에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 「7K_달리면서 소리 지르기」 중에서

달리기에 정석은 없다. 우리 동네의 어떤 할아버지는 매일 마트까지 달려간다. 낯 뜨거울 만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이마에는 1980년대 삼류 영화에 나왔을 법한 땀 흘림 방지 헤어밴드를 두른 채로. 할아버지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달리는 것을 보면 그게 할아버지에게 맞는 방식인 것 같다. 집 근처 광장만 빙빙 도는 아가씨를 보고는 왜 더 멀리 안 나갈까 궁금해하다가 나도 처음 몇 주 동안은 근처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한 게 떠올랐다. - 「8K_달리기에 정석은 없다」 중에서

가끔 가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흘긋 보면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머리는 산발이고 빨간 얼굴에 땀범벅인 여자가 보인다. 내가 목이 말라서 입을 헤 벌리고 터덜터덜 달리면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뒷걸음친다. 하지만 달리다 보면 사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들 휴대전화를 보느라 바쁘다. 그들을 피해서 달리는 게 일이다. 누가 자기에게 돌진해 오는 것쯤으로는 고개도 들지 않으니까. 내가 고양이 동영상보다도 못한 셈이다. - 「10K_우리는 끝까지 비틀거릴 거다」 중에서

달리기의 기쁨 | 벨라 매키 지음 | 김고명 옮김 | 갤리온 | 388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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