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로 사모펀드 규제 목소리 높지만
대기업 구조조정·국부유출 방지 '순기능' 생각해야
![[초동시각]페라리를 누가 탈 것인가…사모펀드 규제 斷想](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41016125315192_1744269173.jpg)
인간의 이기심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멈춰선다.
하지만 이기심이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에 가득 찬 인간보다는 조금 더 이타적인 인간의 존재를 상정하고 '국부론'을 썼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돌아가니까.
한국형 사모펀드도 '탐욕의 부작용'을 막으려는 정부 의지에 따라 20년 전 탄생했다. 정확히는 '외국 자본의 탐욕'을 겨냥했다.
1997년 IMF외환위기 직후 외국 자본이 몰려와 한국 기업을 헐값에 사들였다. 뉴브리지캐피털, 칼라일, 론스타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가 이때 등장했다. 조 단위 구조조정 기업을 맡을 자본도, 실력도 국내엔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이들은 '식민지 점령군'처럼 인식됐다. 사모펀드를 비롯한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당시엔 이름도 생소한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 매일 밤 파티를 벌이는 모습이 여러 번 기사화되며 '탐욕의 화신'처럼 낙인찍히기도 했다.
당시 제조 대기업과 금융회사 구조조정이 외국 자본의 놀이터가 됐다는 비판이 잦았다. 국부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리고 2004년 말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개정됐다. 한국형 사모펀드를 만들어, 국부 유출을 막아보자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법에 따라 이듬해 한국에도 기업 경영권을 사고파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공식 등장했다. 칼라일에서 한미은행을 인수하며 경험을 쌓은 김병주 회장이 만든 MBK파트너스, 대기업 구조조정을 지휘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이재우 리먼브러더스 한국 대표와 설립한 보고펀드(현 VIG파트너스) 등이 이때 나타났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와 벤처캐피탈(VC) 등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IMM프라이빗에쿼티, 스틱인베스트먼트도 사모펀드로 변신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한국형 사모펀드는 맹활약한다. 두산, 한진, 현대, 웅진 등 재벌 계열사 매물을 잇달아 인수해 대부분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과거 정부와 국책은행이 담당했던 대기업 구조조정 역할을, 민간에서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막대한 혈세 투입 부담을 줄였다.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재산 증가에도 기여했다. 구조조정 역할을 맡은 사모펀드에 돈을 댄 출자자 상당수가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사학연금 등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덕분에 연기금, 공제회의 운용자금 수익률이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20년 전 정부가 의도했던 사모펀드 산업의 선순환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이기심이 지나쳐 탐욕이 된 사례도 일부 나타났다. 사모펀드의 수익 구조가 그 원인이다.
사모펀드 운용사는 펀드 전체 규모의 1~2%에 해당하는 관리보수를 해마다 받고, 펀드가 청산할 때 전체 수익의 15~20%에 해당하는 성과보수를 받는다. 당연히 운용사 입장에선 펀드 규모가 클수록, 펀드 수가 많을수록 더 큰 돈을 번다. 망해가는 재벌들이 반복한 '내실보다는 덩치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모펀드 경영 실패로 회자되는 대부분 사례가 이 같은 구조하에서 만들어졌다.
홈플러스 사태로 사모펀드에 대한 노골적인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 사모펀드에 규제를 강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어차피 시장에 대규모 기업 매물은 나올 수밖에 없다. 규제에 발목 잡힌 한국형 사모펀드는 쉽게 경영권 인수를 할 수 없게 된다. 빈자리를 블랙스톤, KKR 같은 외국 사모펀드가 치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지금도 3조원 이상 대형 매물은 외국계 놀이터인데 말이다. 이들은 국민연금 같은 국내 연기금 돈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연기금을 통한 간접 규제도 안 통한다. 결과적으로 한국형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가져갈 수익을 외국 사모펀드가 가져갈 수밖에 없다. 20년 전 '탐욕의 부작용'이 반복되는 것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누가 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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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규제, 후폭풍을 생각해야 한다.
조시영 기자 ibp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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