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허위 청구·가짜 사고…그 돈은 내 보험료였다]
<보험사기 1조원 시대, 왜 이렇게 커졌나>
①-⑴보험사기 형사판결 137건 전수조사
약식명령에 그쳤다 정식재판에 회부된 경우도
판결의 3분의 1 차지
자동차 보험 관련 보험사기 66%
단독범행보단 다수가 공모한 경우가 많아
"자동차보험사기 범행은 도로교통에 위험을 발생시키고 결국은 선량한 보험계약자들에게 손해를 전가하게 돼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은 반복해 범행했고, 피해가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다만 피고인이 가지고 있는 조현병이 이 사건 각 범행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범행 당시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었다."(2024년 1월11일 서울동부지법 판결, 피고인 벌금 150만원 선고)
"편취금액이 4400만여원에 이르고 대부분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 다만 2명의 공범이 범행을 주도하고 피고인은 이에 가담했던 것으로 피고인이 실제 취득한 수익은 편취금액 중 극히 일부다. 피고인은 약식명령 발령 후 피해보험사 중 한 곳에 피고인이 받은 보험금 77만여원을 변제해 해당 회사가 피고인의 선처를 요청하고 있다."(2023년 11월23일 서울동부지법 판결, 피고인 벌금 700만원 선고)
아시아경제는 한 달간 톰슨로이터 로앤비와 대한민국 법원 사법정보공개포털에서 '보험사기'를 중심 키워드로 2023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2년3개월간 나온 1·2심 확정판결문 137건을 전부 확보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우리나라 보험사기 형사사건 선고 결과는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양형이 관대했다. 약식명령에 그쳤다가 정식재판에 회부된 경우도 전체 판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보험사기 대부분은 자동차보험 가입을 통한 사기였고 단독 범행보단 다수가 공모해 범행을 저질렀다. 조직적 수법이나 브로커까지 동원된 지능형 범죄 등 사기의 양상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벌금형 및 집행유예 받은 피고인 73.5%…약식명령정식재판청구 3분의 1
이 기간 재판부가 심리한 전체 피고인은 총 246명이다. 분석 결과 피고인들이 받은 형량은 벌금형이 가장 많았다. 피고인 246명 중 99명(40.2%)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뒤이어 집행유예는 82명(33.3%)이다. 징역형에 처한 피고인은 51명(20.7%)이며 무죄의 경우 13명(5.4%)이 선고받았다.
무죄를 받은 피고인은 대부분 장기보험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7월4일 제주지법은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자기 아들을 피보험자로 하는 실손보험 등에 가입했다. 아들이 전동킥보드를 구입해 타다 넘어져 병원 치료를 받게 되자 보험설계사와 공모해 단순히 넘어져 다쳤다고 허위로 기재해 보험금을 청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륜자동차를 운전하는 중에 발생한 상해사고에 대해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특별약관을 이유로, 전동킥보드가 이륜차에 해당한다며 피고인이 보험사기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특별약관이 이륜차에 대한 사항만 정하고 있을 뿐이므로 전동킥보드도 이에 해당한다면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이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설명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범죄 정도가 비교적 경미한 범죄인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선고유예를 받은 피고인은 1명(0.4%)이다. 가장 강력한 처벌은 받은 사람은 무기징역으로, 2022년 일어난 가평계곡 살인사건 주범인 이은해가 받은 형량이다. 그는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내연관계였던 조현수와 남편의 살해를 계획한 혐의로 기소됐다.
약식명령에 그쳤다가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열린 경우도 전체 판결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 판결 137개 중 46개(33.6%)가 이에 해당한다. 서면심리를 통해 형량이 정해지는 절차가 약식명령인데, 용의자가 저지른 범죄가 징역이나 금고보다는 벌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을 경우 검찰이 약식기소하고 법원이 약식명령을 한다. 즉, 보험사기가 벌금형으로 그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형량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해 실제로 재판이 열리면 사건번호에 '고정'이 붙는다.
자동차 관련 보험사기가 3분의 2…가피공모부터 보험빵까지 수법 다양하고 조직적
보험사기의 대부분은 자동차보험금을 노린 경우가 많았다. 137개 판결문 중 90개(66%)가 이에 해당한다. 자동차보험금을 노리는 범죄자들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범죄를 저지른다. 다수의 사람과 공모해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눠 교통사고를 고의로 유발하는 '가피공모'와 신호위반이나 차선변경 등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일부러 사고를 일으켜 우연히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보험금을 타내는 '보험빵'이 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1월22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는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고액 알바'라는 글을 보고 연락해 공범들과 함께 가해자와 피해자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후 가피공모로 합의금 등을 보험사로부터 지급받아 나눠 가지기로 공모했다. 합의금부터 치료비, 수리비 등 명목으로 3622만4240원을 편취했다.
보험빵의 경우 조직폭력배만큼 조직적으로 움직인 사례가 있다. 2023년 1월27일 서울중앙지법은 범죄단체가입, 범죄단체활동, 보험사기특별법 위반 혐의로 10명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했다. 이들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무직자나 학생 등이 중심이 돼 운전자와 동승자로 구성된 차를 타고 신호위반하거나 차선변경, 후진차량 등을 대상으로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2020년 8월부터 사기 범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동종전과범 3명이 조직원을 모집하고 '사장-이사-총괄팀장-팀장-팀원' 직급에 따라 역할을 분담했다. 서울 강남의 한 건물을 임차해 합숙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고 보험금 분배를 위한 지폐계수기도 비치했다. 사장은 범행 전반을 총괄하고, 이사는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는 법을 교육하거나 사고 이후 보험사 직원과 통화하고 합의금 등을 지급받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조직은 수익배분 체계도 갖췄다. 보험금을 입금받으면 현금으로 인출해 사장이 이사에게 건당 200만~300만원을, 총괄팀장이나 팀장들에게 100만~150만원을, 팀원들에게 20만~3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사장이 가져가는 방식을 취했다.
가짜 입원 환자부터 브로커 이용한 허위 실손보험 청구 사례도 있어
137개 판결문 중 34개(25%)는 가짜 입원한 환자가 실손보험금을 타거나 의사가 환자 유치를 위해 허위 진단서를 꾸며 보험금을 청구한 장기보험 사례가 차지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중랑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 B씨는 하지정맥류 시술이 비급여항목에 해당해 자신이 자율적으로 비용을 책정할 수 있음을 이용했다. 이에 시술 비용이 630만원인 것처럼 진료비 계산서와 영수증을 환자에게 발행했다. 환자들은 이를 통해 보험사로부터 실손보험금을 지급받았고 그중 400만원을 B씨가 시술비 명목으로 지급받았다. 나머지 금액은 환자에게 귀속시키는 '페이백' 방식으로 보험금을 편취했다.
또 환자를 소개해 주는 대가로 알선수수료를 지급해준다며 '환자알선 브로커'도 3명 고용했다. 이들은 환자 한 명당 약 50만원씩 받았다. B씨는 이런 방법으로 891회에 걸쳐 보험금 합계 49억6627만682원을 편취했다. 해당 금액은 137개 판결문 중 가장 큰 피해액이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해 1월16일 B씨에 대해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브로커들은 징역 1년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보험사기 범행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피고인 개인의 행위도 중요하지만, 보험사와 의료기관의 책임도 있다는 판결도 있었다. 2023년 6월23일 서울동부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홀로 28건의 보험에 가입한 상태에서 2012년부터 8년 동안 2093일간 허위로 입원했다며 3억1446만7261원을 편취한 피고인 C씨에 대해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장기간 이 사건 범행을 반복할 수 있었던 것에는 별다른 심사 없이 보험을 모집하고 그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해왔던 보험사들과 정밀한 진단 없이 피고인의 진술에 의존한 임상적 추정만을 토대로 쉽게 입원을 허용한 일부 의료기관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수가 공모한 보험사기 방식 대부분…재범률은 22.7%
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2명 이상인 경우는 44개(32%)였다. 단독범행보단 다수가 공모해 보험사기를 저지른 경우도 많았다. 무죄 판결을 제외한 129개 판결 중 공모로 범행이 이뤄진 경우가 82개(63.5%)다. 가장 많은 피고인이 판결을 받은 경우는 21명으로 허위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보험빵' 사례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2023년 3월15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으로 피고인 21명에 대해 징역 3년6개월 등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지인들을 동원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25회에 걸쳐 1억2490만4409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보험사기 범죄를 똑같이 반복하는 경우는 전체 판결의 22.7%를 차지했다. 정식 판결을 통해 확정된 보험사기에 따른 피해액은 총 129억1708만52원이다. 판결 중 최대 피해액은 49억6627만682원, 최소는 12만9960원이다.
<판결문,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2023년 이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으로 검색된 확정 판결문 중 1심과 2심에서 확정판결이 난 판결문만 추렸습니다.
▲1·2심이 함께 게재된 경우 심리한 범행 규모와 피고인 수 등 합계에서 중복되지 않게 정리했습니다.
▲2심에서 기각돼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 경우 2023년 이전 선고사건의 경우 통계에서 제외하는 등 실질적인 판결을 받은 사건의 선고기일을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재범 여부는 동종범죄 및 사기죄를 다시 저질렀을 때 재범에 포함했습니다.
지금 뜨는 뉴스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된 공소사실의 범행 금액만 집계했습니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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