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대응에 피해자만 떠나
"복무강령 위반 반복…
공공기관 모범 역할 실종"
"나는 성골이고 너 같은 인턴(사원)은 육두품."
"여기서 제일 (비속어) 같은 건 나일 거다. 욕도 제일 많이 하고. 그런데 제 성격 안 고쳐진다. 제가 싫으면 오지 마라"
한국도로공사가 직장 내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군대 문화라는 표현조차 부족하다(블라인드)'는 한탄이 공사 내부에서 나올 정도로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다. 내부 감사에서는 폭언·협박·인사 갑질 등을 확인했음에도, 경징계 처분만 반복하며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직원들의 정신적 피해 사례가 많아지는 만큼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1일 도로공사가 지난해 12월 공직기강 특별점검 후 지난달 내놓은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에 따르면 공사 감사처는 해외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기관장 A씨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했다며 감봉 처분하라고 인력처장에게 요구했다. 감사처는 2023년 4월부터 감사일 현재까지 해외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A씨를 상대로 지난해 12월 16~27일 내부감사 후 이같이 조치했다.
◆인턴사원에게 "말끝마다 '네'라고 대답해라"= 처분요구서에는 "체험형 인턴사원의 멘토이자 ㅇㅇ지사의 유일한 상급자라는 직급과 관계 우위를 이용해, 직책상 우위를 넘어 인격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며 "업무상 적정 범위를 초과한 행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주는 등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가 인턴사원에게 한 발언도 적시했다. A씨는 "상급자가 지시하면 하급자는 지시를 이행해야 하고, 만약 이행하지 않으면 상급자가 하급자를 괴롭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어 "나는 성골이고, 너 같은 인턴은 육두품이다"라고 하거나 "스타강사가 언제 짜증 나는지 아냐? 너처럼 리액션 안 해줄 때다. 앞으로 내가 하는 말끝마다 꼬박꼬박 '네'라고 대답해라. 가르칠 맛이 안 난다. 가라"고 말했다.
인턴사원이 A씨의 발언을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열어 녹음 파일 삭제 여부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본인과의 일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겠다'는 각서 작성을 강요했다. 인턴사원이 거부하자 "내가 무슨 짓을 못 할 것 같냐. 어떻게든 (너를) 흠집 내고, 취업하거나 도로공사 인턴 기록을 보고 누군가 수소문하면 사람들 입방에 오르내리고 그런 거지"라고 말했다. 이어 "징계받고 난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네게) 어떻게 피해를 줄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겠냐"고 압박했다. 이틀 뒤에는 인턴에게 '앞으로 녹음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다시 강요했다. 인턴은 도로공사 내부 직원에게 고충을 호소한 뒤 분리 조처돼 귀국한 후 본사에서 근무했으나 계약 만료 3주 전에 퇴직했다.
◆70세 기간제 직원에게 '욕설'= 도로공사 지역 지사 현장작업반장 B씨는 20년 넘게 많은 기간제 직원에게 폭언과 인사 협박을 하기도 했다. 관내 고속도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B씨는 제설기간제 도로관리원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업무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저는 일하다가 기분 틀리면 악쓰고 (비속어)할 거다"며 "내가 물차 임차해주지 말라고 했는데 해줬다. 안 해준 사람들만 (비속어) 되는 거다"고 말했다. B씨는 제설 임차운전자들 차량에 염수 호스를 연결해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전달해주면서 이런 발언을 했다. 당시 대기실에 있던 도로관리원 30명가량 중 87% 이상은 B씨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이상이었다. B씨는 또 "저한테 자꾸 이상한 소리 들리면 사직서 가져다드릴 테니까 사직서 써라"고 하기도 했다.
도로공사 감사처는 "제설기간제 도로관리원들을 대상으로 업무 지시 권한이 있는 현장작업반장으로서 업무 지시 과정에서 직급상 우위를 이용해 욕설을 수반한 폭언을 하고 본인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인사 협박을 해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결론을 냈다. 다만 감사처는 B씨에 대한 감사 후 해당 지역 지사장에게 B씨에 대해 견책 처분을 요구했다.
◆국회가 지적해도 요지부동 '갑질문화'= 도로공사의 갑질 문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국정감사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받은 바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도로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직장 내 괴롭힘 신고접수 후 정식 조사에 들어간 15건 가운데 상당수가 경징계인 견책, 감봉, 경고 처분에 그쳤다. 성적 언동과 폭언·욕설이 포함된 사례도 견책과 주의 처분으로 종결됐다. 집단따돌림, 인사 갑질 등 4건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현재 폭언 협박, 무리한 업무 요구 등 2건을 조사 중이다.
징계 수위가 낮아 문화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의 경우 정직 징계가 감봉으로 조정된 경우도 있었다. 도공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외부 노무사, 감사실, 노동조합, 사내 변호사 등이 참여하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사안을 검토한다. 괴롭힘이 인정될 경우 감사실이 신고인, 피신고인, 참고인 면담과 자료 검토를 진행한 후 외부 노무법인 조언을 받아 징계 수위를 자문한다. 이후 내부 위원회를 통해 징계 수준을 확정하고 인력처에 최종 심의를 맡긴다. 징계는 통상 경징계(견책·감봉)와 중징계(정직·강급·해임·파면)로 구분된다. 징계 수위는 감사실이 정하지만, 인사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고 무기명 투표를 통해 결정되기도 한다.
문 의원은 "국민께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 등 복무강령 위반 행위가 계속해 발생하고 있어 우려된다"면서 "예방이 가장 중요하나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가하는 경우에는 처벌을 강화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실질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다른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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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관계자는 "감사처 처분은 내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며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내부 제도를 지속해서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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