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산운용사 부사장 뉴스레터
'서학개미' 투자 패턴 지목해
"K주식 문화는 No"
변동성·고위험 투자 성향 지적
"한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 그 곳이 국장(국내 주식시장)이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서 즐겨 쓰이는 유행어다. 해외 주식시장이라도 한국인 투자자가 많으면 코스피·코스닥처럼 흐름이 바뀌어버린다는 얘기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일명 '서학개미'들의 과도한 위험 추구 성향을 비꼬는 뜻도 담겨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아카디안(Acadian)'은 미국 증시의 일부 종목이 한국화되고 있다며, 그 배후로 최근 유입된 서학개미들을 지목하기도 했다.
美 증시서 한국인들이 펼치는 '오징어 게임'
오웬 A. 라몬트 아카디안 수석 부사장은 이달 초 공식 홈페이지에 '오징어 게임 주식 시장' 제목의 뉴스레터를 게재했다. 라몬트 부사장은 오웨노믹스(Owenomics)라는 뉴스레터를 매월 발행하는데, 주로 투기 세력이 몰리는 과열 종목에 대한 분석을 다룬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그는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일부 서학개미를 '오징어 게임' 참가자에 빗댔다.
그는 "한국 개인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지난해 기준 1121억달러(약 162조원)로 미국 증시 전체 시총의 0.2%에 불과하다"면서도 특정 소규모 종목에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꼽은 대표적인 종목은 양자컴퓨터가 있다.
실제 한국예탁결제원이 관리하는 미국 주식 매수결제액(2~3월 기준)을 보면, 아이온큐(IONQ)가 10위, 리게티 컴퓨팅이 15위에 있다. 둘 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양자컴퓨터 스타트업으로, 특히 아이온큐는 초기 창업자 중 한 명이 한국 출신 연구원이라는 점에서 국내에서 주목받아 왔다.
라몬트 부사장은 특정 시점에 한국인 투자자들이 해당 양자컴퓨터 기업 전체 지분의 31%를 보유하고 있었다면서 "기괴하고 폭력적"이라고 표현했다. 또 "(서학개미는) 빠르게 부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한다"며 "곧 폭락할 증권만 골라 매수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아이온큐와 리게티 두 기업 모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최고가를 찍은 뒤 현재는 거의 반토막 난 상태다. 지난 1월8일(현지시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대해 부정적인 취지의 발언을 한 뒤 벌어진 패닉셀(공포에 의한 매도)의 여파다.
"미국도 '한국화'…원인은 시장 허무주의"

라몬트 부사장이 서학개미들의 투자 패턴에 주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발간한 뉴스레터에서도 그는 "미국 증시가 한국화되고 있다"며 우려한 바 있다. 그가 정의한 증시의 한국화란, '테마주'로 취급되는 인기 종목에 갑작스럽게 자금이 몰리는 현상,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등 고위험 상품에 집착하는 경향 등을 뜻한다.
당시 라몬트 부사장은 코스피, 코스닥 등 한국 유가증권시장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위험 선호 문화를 면밀히 분석하며 '자본시장의 한국화'가 왜 위험한 일인지 설명했다. 그는 한국 개인 투자자, 즉 개미의 가장 큰 특징으로 '시장 허무주의'를 꼽는다. 그는 개미에 대해 "시장 시스템이 애초에 개인에게 불리하게 조작됐다고 믿는 커뮤니티"라고 정의하며 "이 때문에 시장을 '빠르게 큰돈을 벌기 위한 투기 수단'으로 보게 되며, 높은 변동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일부 한국 투자자들이 공매도 제도에 강한 반대 의사를 보이는 것도 이런 허무주의에 기인한 시각이라고 봤다. 또 허무주의가 지배하는 시장은 기업 가치 대신 단기 수익을 위한 변동성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작과 사기가 만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라몬트 부사장은 "아직 미국 개인 투자자들은 한국만큼 허무주의가 강하진 않다"면서도 "나는 한국 음식, 음악, TV, 영화를 즐기지만 주식은 아니다. 제발 K주식 문화에는 '안돼(No)'라고 거부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서학개미들, 美 고성장 기술주 선호"
실제 미국 주식을 보유한 국내 투자자들은 높은 변동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 증시가 반등하는 과정에서 한국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당시 서학개미들이 선호했던 기업이 테슬라 같은 고성장 기술주였다"며 "이후로도 서학개미들은 안전한 자산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였다. 직전까지 3x 테슬라(테슬라 주가의 3배 레버리지 상품)나 SOXL(반도체 기업 지수의 3배 레버리지 상품)이 유행했던 현상도 그 연장선"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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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라몬트 부사장은 고위험 투자에 집착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과거에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공황 직전인 1929년 뉴욕에선 고레버리지 투자 열풍이 불었다. 1989년엔 일본 '사라리만(샐러리맨)'이 주요 투기 세력이었다. 2021년엔 미국 밈 주식 투자자들이었고, 지금은 한국인의 차례일 뿐"이라며 "내 조언은 당신이 개인 투자자라면, 지루한 자산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제안받았을 때는 참여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고 제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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