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트럼프 외교·안보 정책 기조는
관세 무기화로 실리 챙기는 겁박 외교
방위비 압박으로 안보 '무임승차' 배제
'스트롱맨'들과 밀착, 직접 담판외교 나설 듯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슬로건이자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이 보여줄 외교·안보 기조를 한 마디로 나타냈다. 더 강력해져서 돌아온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를 압박해 불법 이민 등의 현안에서 실리를 쟁취하고자 한다. 여기에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편입 야욕마저 드러내며 미국의 고립주의와 팽창주의 외교의 결합을 예고하고 있다.
관세 위협과 협상 기술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부터 적대국과 우방국을 가리지 않는 '관세 폭탄' 공약을 쏟아내며 무역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대선 유세 기간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관세,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 부과를 공언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해 11월엔 인접국인 멕시코와 캐나다까지 콕 찍어 25%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가 약세인 점을 이용해 무역 흑자를 누렸던 나라들과 더는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위협의 목적은 단순히 무역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것에만 있지 않다. 불법 이민, 마약 범죄 등 자신의 외교·안보 현안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일례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위협이 임박하자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마약류 반입 및 불법 이민자 단속을 위한 국경 강화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달 초엔 중국을 겨냥한 소량 수입품 규정 강화, 모조품 불법행위 단속 방안 등을 잇달아 발표하기도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엄포에 부랴부랴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날아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로버트 로런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수석 연구원은 "지금 당장은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수사적(rhetoric)으로 효과적"이라며 "특히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는 유럽연합(EU) 구성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마크 블라이스 브라운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는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때도 관세를 '지렛대(leverage)'로 사용했다"며 "그가 자신이 한 말 중 어떤 것을 실제로 이행할지는 그가 1월20일 백악관에 들어서기 전까지 추측만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사라진 美 방위 우산…"무임승차 금지" 압박
트럼프 당선인의 '겁박 외교'는 전통의 우방국들을 향한 방위비 분담 압박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부담을 현행 가이드라인인 2%에서 5%로 올릴 것을 주문하며 미국 안보 우산의 '무임승차 금지'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들이 미국의 '세계 경찰' 노릇에 대한 공정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를 집어삼킨 러시아가 유럽의 심장부로 진격하더라도 지켜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 책사'로 발탁된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내정자는 지난해 11월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라는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내세운 보편관세는 미국의 안보 우산 제공에 대한 대가일 수 있다"며 한국, 일본, 나토 등 미국의 동맹국이 관세 부과에 반발해 보복관세로 대응할 경우 미국이 공동 방위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빌미와 명분을 제공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피아를 식별하지 않는 초강경 정책 예고가 취임 전 미국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해두기 위한 외교적 '판 흔들기'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독트린'의 영토 확장 야욕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도 적으로 돌리는 트럼프 2기의 고립주의에는 최근 '트럼프식 팽창주의'까지 가미되고 있다. 파나마 운하 반환을 압박하고 그린란드 매입에 눈독을 들여온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무력을 통한 편입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면서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표면적으로는 유럽과 북미지역을 연결하는 요충지인 그린란드를 러시아와 중국 등 적성 국가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그린란드에 매장돼 있는 10조달러(약 1경4500조원) 상당의 희토류를 차지하려는 속셈도 엿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 위협 항의차 마러라고를 방문한 트뤼도 총리에게도 '미국의 51번째 주(州) 편입'을 제안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범하는 데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인다. 캐나다를 미국에 편입하기 위해 강압적 경제적 수단을 쓸 수 있다며 압박 강도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안 그래도 지지율 하락으로 정치적 기반이 위태로웠던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이 선사한 '외교적 굴욕'이 결정타가 돼 결국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이 드러내고 있는 영토 확장 야욕 역시 실질적 위협이라기보다는 협상 전략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댄 해밀턴 브루킹스 연구소의 외교 정책 전문가는 "트럼프 발언의 상당수는 허세이자 검증된 전략"이라며 "협상 파트너를 혼란에 빠뜨리고 한발 물러서게 만들어 자신의 진짜 목표를 위해 더 나은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과거 소련을 상대로 핵전쟁 위협을 가하며 베트남 전쟁 종식을 시도했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로잔 맥매너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정치학 조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약간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미치광이 이론을 사용하고 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있다"고 짚었다.
'세일즈맨' 트럼프, '스트롱맨'들과 밀착
트럼프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이른바 '스트롱맨'들과 브로맨스를 과시하고 있는 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외교적 행보에 대한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처럼 적성국 정상들과의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본인이 직접 담판 외교에 나서며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 승리 후 첫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은) 내 친구였고, 놀라운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가 하면 관례를 깨고 오는 20일 자신의 취임식에 시 주석을 초청하기도 했다. 또 집권 1기 시절 정상회담을 포함해 총 3차례 대면한 김 위원장에 대해선 "핵을 가진 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해 이목을 끌었다.
취임 직후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을 종식하겠다 호언장담해온 트럼프 당선인은 수주 내 푸틴 대통령과도 전화 통화를 가질 예정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외교 역량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지만 전쟁 당사자 간 입장차가 뚜렷해 '2개의 전쟁'을 조기 종식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트럼프 당선인은 당초 목표였던 '취임 후 24시간 내 종전'을 '6개월'로 늦춘 상태다.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국경 강화'
대외적으로 고립주의와 팽창주의를 적절히 섞은 외교 정책을 구사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내적으로는 불법 이민자를 대거 추방하며 '문단속'에 나선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 기간부터 줄곧 불법 이민자를 범죄, 실업, 집값 상승 등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취임 첫날부터 대규모 추방에 나설 것임을 예고해왔다. 돈이 얼마가 깨지든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공화당은 국정 동력이 살아있는 집권 초기 트럼프 당선인의 각종 감세 공약과 함께 국경 강화안을 단일 법안으로 묶어 의회 문턱을 넘으려고 계산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 같은 의지를 받드는 인물은 차기 '국경 차르'에 내정된 톰 호먼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이다. 호먼 내정자의 지휘 아래 미국은 먼저 범죄자, 추방 명령이 내려진 이민자들부터 국경 밖으로 내보낼 것으로 관측된다. 직장 불시 단속은 물론 유사시 군대 동원 가능성에도 문을 열어둔 상태다.
NBC방송은 "트럼프 캠프 인사들이 ICE와 불법 체류자 단속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며 "트럼프 취임에 맞춰 수도인 워싱턴D.C. 내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대규모 단속에 나서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내 영주권을 보유한 이민자는 약 1300만명이다. 또한 2022년 기준으로 불법체류자는 1130만명으로 추산된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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