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발효해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는 '한국의 장(醬) 담그기 문화'(Knowledge, beliefs and practices related to jang-making in the Republic of Korea)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선 23번째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 협약 정부간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장류를 밥과 김치와 함께 한국 식단의 핵심으로 봤다. 장 담그기 문화는 장이라는 음식뿐만 아니라 이를 관리 이용 전승하는 전 과정의 기술과 신념을 포함한다. 위원회는 "장 담그기라는 공동의 행위는 관련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
장은 음식의 간을 맞추는 기본 조미료로서 한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조미료가 없었던 시절, 간장과 된장 등의 장류는 한 집안의 1년 동안의 식생활을 책임져 줄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발효나 숙성 방식에 따라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형태가 있다.
한국의 장 문화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콩을 삶은 뒤 으깨어 일정한 크기로 뭉쳐 메주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하고 건조하는 데만 최소 3개월 이상 걸린다. 메주를 활용해 간장과 된장 두 종류의 장을 만들고, 직전 해에 쓰고 남은 씨 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의 독창적인 문화로 여겨진다.
장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장에 대한 기록은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서 나온다. 신문왕이 일길찬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면서 폐백 음식류로 장이 등장한다. 고려 시대에는 현종과 문종 때 굶주리는 백성을 위한 구황식품으로 장을 배급했다.
조선 시대에는 장 담그는 방법이 전수되고 지역마다 레시피와 방법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장이 등장했다. 구황섭요 등 여러 문헌에 된장 제조법이 기록돼 있다. 특히 장 담그기 행위가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적 행위로 자리 잡았다. 장을 만들기 위해 길일을 택하고 장에 숯이나 고추를 띄워 나쁜 기운을 막고 장독에도 금줄을 치거나 버선본을 거꾸로 붙여 부정을 방지하는 것을 문화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장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서는 장독이 더러우면 맛이 좋지 않으므로, 하루에 두 번씩 행주로 깨끗이 장독을 닦아주라고 했다. 장을 담고서도 21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초상난 집에 가는 것을 삼가고, 낯선 잡인을 가까이 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는 장독대를 조성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장독대 근처에는 과실 나무를 심지 말며, 담장이 무너져 독이 깨질까 염려해 담장 가까이 장독대를 두지 말라고 했다.
장의 산업화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876년 강화도조약, 1884년 갑신정변 이후부터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부산·인천·경성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이 1886년 부산 신창동에 소규모 장류 공장을 설립해 간장 및 된장을 생산한 것이 효시다. 광복된 후에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공장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수해 생산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전통장류를 비롯한 우리나라 소스류 수출액은 3억8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 실적이다. 고추장 수출액은 2020년 처음으로 5000만 달러를 넘어선 이후 지난해 전년 대비 17.8% 증가한 6192만 달러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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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네스코는 문화 다양성의 원천인 무형유산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적·국제적 협력과 지원을 도모하기 위해 인류무형문화유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아리랑, 제주해녀문화, 연등회, 한산모시짜기, 김치와 김장 문화, 한국의 탈춤 등 23건이다. 2026년에는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 등재에 도전한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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