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본부·지역의사회 현장조사
의협은 근로자단체 아닌 사업자단체
회원에 '강요 여부'가 위법성 판가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총파업에 경쟁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의협은 동네병원 등 개원의 중심의 파업 추진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참여를 강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근로자단체가 아닌 사업자단체 의협이 구성 회원들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등을 할 수 있다. 위법성 판단의 쟁점이 '강요 여부'에 달린 가운데 조사 결과가 이르면 내달 중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 서울 용산구 이촌로 의협 본부 사무실에 조사팀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파업 참여율이 높았던 대전지역 의사회 사무실도 현장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공정위 조사관들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51조 1항 위반 여부 조사'라고 적힌 공문을 들고 사무실에서 총궐기대회 관련 자료와 의협이 지역 의사회에 보낸 공문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의 현장조사는 보건복지부가 의협의 집단행동이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한다며 신고서를 제출한 지 이틀 만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2월 빅5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사직 때와는 진행양상이 다르다. 당시는 병원에서 수련받는 교육생이자 고용된 근로자인 전공의들이 파업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이뤄졌지만, 이번엔 의협 주도로 개원의들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법률적 지위는 근로자지만, 동네병원 등 개원의 중심의 의협은 사업자단체로 분류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개별 의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파업 참여와 휴진 여부를 의협이 영향력을 행사해 강제했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의협의 총파업 결정과 실행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었는지를 주시하고 있다. 위법성 판단의 쟁점은 사업자단체인 의협 지도부가 회원 의사들에게 파업을 강요했는지에 달렸다. 의협이 개원의들의 파업 참여를 부추겼거나,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의 불이익을 고지했다는 등의 근거자료가 확보되면 공정거래법 51조항을 적용해 제재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51조 1항 3호는 '사업자단체는 구성사업자의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판례에 비춰보면 사업자성이 있는 단체가 조직적으로 집단휴업을 강제하는 경우는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면서 "다만 개원의들의 휴진 결정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입증하는 게 핵심이 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14년 원격진료 도입 반대 집단행동 등 유사 사건 당시 공정위는 이 법 조항을 적용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등의 처분을 내린 전례가 있다.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휴진율이 80%에 달했던 2000년 의약분업 때는 일부 휴진에 불참한 의사들이 다른 의사들로부터 협박과 폭언을 당했다는 점 등이 강제성 입증에 고려됐다. 김재정 당시 의협 회장은 공정거래법, 의료법 등의 위반 혐의가 인정돼 의사면허가 취소되기도 했다. 2014년 파업 때는 의협이 검은 리본 달기, 외부간판 소등 등 세부적인 파업 행동 지침까지 전 회원들에게 통지하는 등 휴진 참여를 압박한 정황을 공정위가 확보했지만 법원에서 강제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죄판결을 받았다.
공정위가 이번 파업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결론 내릴 경우 의협에 10억원 이내의 과징금, 의협 지도부 등 관련자들에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업자단체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사건 처리 기간이 통상 1~2개월로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달 중에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측은 "국민들에게 미치는 파급 영향 등 사안의 시급성 등을 감안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결론 내겠다"고 밝혔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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