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건설허가 후 착공 예정
주민 협조 속 부지 매입절차도 순조
신한울 2호기는 5일부터 정상 운전
지난 11일 경북 울진군 북면 덕천리 부근에 있는 신한울 3·4호기 공사 현장. 원전이 들어설 자리에 쌓여있는 수십만 톤의 토사물들을 실어 나르는 부지 정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중앙에는 154m 간격을 두고 붉은색과 파란색 깃발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각각 신한울 3호기, 4호기의 원자로가 들어설 지점이다. 지질 및 시추 조사를 통해 지진에서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암반층을 골랐다. 원전은 단단한 암반을 굴착해 촘촘하게 철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식으로 건설한다.
신한울 3·4호기는 2008년 12월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되면서 공사가 추진됐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 기조와 맞물려 계획이 취소됐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3년 발표된 제10차 전기본에 다시 계획이 반영되면서 5년 만에 공사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신한울 원전이 들어서 있는 울진군 북면 일대에는 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핵 단체들의 플래 카드(현수막)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의 손봉순 대외협력처장은 "주민들이 오히려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를 원했다"며 "반핵 단체들의 주장은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신규 원전에 적극적인 이유는 2022년부터 가동 중인 신한울 1·2호기를 비롯해 울진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존 원전에 대한 경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원전이 들어선 이후 고용이 늘어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모습을 실감하고 있다. 신한울 1·2호기는 약 10조원의 건설비가 투입됐으며 3·4호기는 11조70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지역에 법정 지원금 2조원 제공…부지 매입 작업 순조
신한울 1·2호기는 지금까지 531만8000명의 누적 고용 효과를 창출했다. 시공 인력의 지역 주민 채용 비율은 26%, 지역 장비 사용 비율은 63%에 이른다.
이뿐 아니라 60년의 신한울 1·2호기 운영 기간중에 한수원은 특별지원사업비·기본지원사업비·사업자지원사업비·지역자원시설세 등 총 2조645억원의 법정 지원금을 지역에 제공할 계획이다. 건설 기간에만 5445억원이 지역 지원 사업에 쓰였다.
이는 앞으로 들어설 신한울 3·4호기도 마찬가지다. 신한울 3·4호기는 722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2조1204억원의 법정 지원금을 제공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적 지원과 함께 안전을 걱정하는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노력도 병행했다. 한울원자력본부는 수시로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 원전이 안전하게 가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오해를 풀도록 했다.
신한울 1·2호기 원전의 격납 건물 외벽 두께는 122㎝다. 주증기배관 등 추가 보강이 필요한 곳은 두께가 197㎝에 달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실제 미국에서 27t의 팬텀기를 시속 800㎞의 속도로 원전 외벽과 같은 조건의 콘크리트 벽에 충돌시킨 실험에서 비행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지만 콘크리트 외벽은 약 5㎝ 정도만 손상됐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위한 부지 매입 작업도 주민들의 협조 속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전체 필요 부지 136만1250㎥(약 41만평) 중 92만4361㎥(약 28만평)를 확보했다. 한수원은 원전 제한구역 확보를 위해 인근 농지(내평들)와 고목리 마을 토지를 매입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한울 3·4호기는 지난해 11월 현대건설·두산에너빌리티·포스코이앤씨 컨소시엄과 주설비공사 계약을 체결했으나 아직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건설 허가를 받지 못해 착공하지 못한 상태다. 올해 상반기에는 건설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일 상업 운전 신한울 2호기…출력 100% 가동중
신한울 3·4호기는 바로 옆에서 가동중인 1·2호기와 마찬가지로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든 APR1400 원자로가 사용될 예정이다. 신한울 2호기는 그동안 시험 운전을 마치고 지난 5일부터 상업 운전에 들어갔다.
이날 신한울 2호기 보조 건물에 있는 게스트룸에서 유리창 너머로 주제어실(MCR)을 볼 수 있었다. 원전에서 두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주제어실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됐다. 원자력발전소는 '가급' 국가보안시설로 철저히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쳤지만 주제어실은 입장 불가였다.
주제어실로 들어가는 문은 두께 6.7㎝, 무게는 346㎏에 달한다고 한다.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서도 원전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방탄·방화문으로 제작됐다. 278.7㎡(약 84.3평) 크기의 주제어실 안에서는 한수원 직원 5명이 원자로와 원전 설비 운영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주제어실 정면에 있는 대형정보표시반(large display panel)에 현재 1498메가와트(MW)로 출력이 되고 있다는 숫자가 보였다. 발전 용량 1400MW인 APR1400이 완벽하게 가동중임을 나타냈다. 그 옆에는 디지털 방식의 대형정보표시반이 고장이 났을 때 백업할 수 있는 아날로그 방식의 안전제어반도 눈에 띄었다.
주제어실에서 나와 안전모와 각반, 안전화를 착용하고 터빈과 발전기가 있는 공간인 TGB(Turbine Generator Building)를 찾았다. 이곳은 원자로에서 나온 고온·고압의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실제 전기를 만드는 장소다.
1분당 1800회의 속도(1800rpm)로 돌아가는 터빈의 소음으로 바로 옆 사람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은 정도였다. 터빈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실내는 후끈거렸다. 온도계는 섭씨 32도를 가리켰다. 고압 터빈과 저압 터빈, 발전기가 직렬로 연결된 이 시설 길이는 100m에 달했다.
발전기에서 생산한 2만4000볼트(24kV)의 전기는 건물 외부에 있는 주변압기에서 765kV로 승압돼 신태백변전소, 신가평변전소를 거쳐 수도권으로 공급된다. 신한울 1·2호기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경상북도 전체 연간 소모량의 47%, 국내 연간 전력 소요량의 4%를 담당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바닷물을 냉각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바닷가에 있어 태풍이 불어오면 외부에 노출된 고압 변전기가 염해를 입을 수 있다. 소금기를 먹은 물이 변전기에 튀어 섬락(flash over)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이 불어닥쳤을 때 고리3호기가 피해를 보았다. 그 이후 국내 원전의 변전기는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에 노출된 도체 부분을 밀폐 처리하고 있다.
한울 원전 습식저장고 2031년이면 포화…고준위 특별법 통과 과제
이날 사용후 연료 저장실(Spent Fuel Pool)을 관람할 수 있는 방에 들어가니 다 쓰고 난 연료봉들을 대형 수조에 담아 열을 식히는 습식저장시설이 내려다보였다. 연료봉 1개에는 팰릿(우라늄 원료) 387개가 빼곡히 들어 있다. 이러한 연료봉 236개를 묶은 것을 집합체라고 한다. 집합체 한 다발은 약 4m 크기에 무게만 640㎏에 달한다.
한울원자력본부 전체 습식 저장 시설은 2031년에는 완전히 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곳들도 2030년(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습식저장고에서 열을 식힌 사용후핵연료는 부지 내 임시 건식저장고에서 보관한 후 다시 부지 밖의 영구 처분시설로 옮겨야 한다. 임시 건식 저장고나 영구 처분장이 없으면 사용후 핵연료를 더이상 보관할 수 없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이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절차 및 주민 지원방안 등을 담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논의됐으나 여아 의견이 엇갈리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원전 업계에서는 오는 5월29일 21대 국회 임기 종료 이전에 고준위 특별법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