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사과, 이상기후 작황 부진과 재배농가 감소 탓
긴급 수입도 불가능, 가계 부담만 갈수록 늘어
'애플레이션(Applation·apple+inflation)'은 사과로 인한 물가상승 현상을 말한다. 사과의 'Apple'과 물가상승을 뜻하는 'Inflation'을 합쳐 만들어진 용어다. 사과값의 상승으로 시작돼 다른 과일 가격의 동반 상승을 불러와 'apple'이 접두어가 됐다.
1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전날 가락시장 사과 도매 경매낙찰(경락) 가격은 11만6171원(10㎏ 기준, 특)을 기록했다. 1년 전(6만3738원)의 거의 2배다. 한등급 낮은 상품(上品)의 도매 경락가격은 6만7477원으로, 역시 전년 가격(3만8453원)보다 75.5% 올랐다. 도매상이 소상인에게 넘기는 '중도매인 판매가격(도매가)'은 같은 날 기준 9만1040원(10㎏, 상)을 기록했다. 전년 가격(4만1028원)의 2배가 넘는다.
사과가 '금(金)사과'가 된 건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 탓이 크다. 이상기후로 사과나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하자 사과 공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고령화로 사과 재배 농가가 사라지면서 재배지도 감소했다.
실제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전년(56만6000t)보다 30% 감소한 39만4000t에 그쳤다. 이상기후로 인한 냉해·병충해 피해와 재배 면적이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3만3800헥타르(㏊)인 사과 재배면적이 2033년 3만900㏊로 8.6%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여의도(290㏊)의 10배에 달하는 면적이 사라지는 셈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봄철 냉해·병충해 피해, 집중 호우 등이 발생할 경우 생산량은 더 줄고 사과값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사과가 비싸니 다른 과일을 사먹으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대체 과일'로 꼽히는 과일들도 덩달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14일 배 도매가격은 15㎏당 10만2800원으로 전년보다 134% 급등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년 대비 귤 78.1%, 딸기 23.3% 등 거의 대부분의 과일 가격이 큰폭으로 올랐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113.77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1% 상승했는데, 체감하기 쉬운 생활물가 상승률은 3.7%로 더 높다. 과일 가격이 생활물가를 밀어 올린 것이다.
정부 비축분인 '정부 계약재배물량'도 모두 동이 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과는 쌀처럼 정부 비축 관리 대상 품목이 아니어서 수급 안정 차원에서 농가와 계약해 재배하고, 필요할 때 시장에 공급한다. 지난해 정부가 농가와 계약한 사과 물량은 4만9000t인데, 이 물량은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 시중에 공급돼 모두 소진됐다.
공급 불안 해소를 위해 사과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오렌지, 포도, 망고 등 30여개 과일의 수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사과는 외래 병해충 유입 문제 등을 이유로 수입을 막고 있다. 과일과 채소는 식물방역법에 따라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거쳐 병해충 안전성을 확보해야 수입할 수 있다.
8단계 절차는 수출희망국의 요청 접수 ⇒수입위험분석 절차 착수⇒예비위험평가⇒개별 병해충 위험평가⇒위험관리방안 작성⇒수입허용기준 초안 작성⇒수입허용기준 입안예고⇒수입허용기준 고시 및 발효 등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수입과일들이 이 같은 절차를 모두 통과하는 데 평균 8.1년 걸렸다. 법률에 명시된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간소화해 긴급 수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현재 한국에 사과를 수출하길 희망하는 나라는 일본, 뉴질랜드, 독일, 미국 등 4개국이다. 절차가 가장 많이 진행된 나라는 일본으로 5단계 위험관리방안 작성 단계를 진행 중이지만, 나머지 단계를 마칠 수 있을지조차 전망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 의지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사과 농가들을 고려해 수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정부는 사과 가격이 급등하자 수입하는 방안까지 열어두고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파르게 오른 물가가 좀처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가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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