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2024년 업무보고
尹 대통령, 2주 만에 거래소 다시 찾아 '상생 금융' 강조
ISA 확대 및 상법 개정 약속하며 "규제, 과감히 혁파"
자본시장 이권 카르텔 언급… "부당한 지대 추구 막아야"
금융권 '경쟁 부재' 지적하며 "국민 이자 부담 경감"
금투세 폐지…거래세 인하는 계속 추진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허용 및 혜택 확대 등을 통해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와 자산형성 지원에 나선다. 고액자산가의 자본시장 세금 부담을 줄여 국내 주식 투자를 유도하고, 개인투자자의 자산형성 역할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네 번째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ISA의 가입 대상과 비과세 한도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에 편중된 국내 투자 시장을 주식과 채권 등으로 분산하고 고액자산가의 투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특히 윤 대통령은 금융 시장 이권 카르텔을 지적하며 상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지난 2일 증시개장식 참석 후 불과 2주 만에 한국거래소를 다시 찾은 윤 대통령은 "자본시장 도약을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경제 논리에 반하는 세제도 바로잡아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증시를 국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장'이자 국민의 자산 축적을 지원하는 '기회의 사다리'로 끌어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경쟁을 통해 금융 카르텔을 혁파하고 부당한 지대 추구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소액 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온라인 전자주주총회 제도화 등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상생'에 초점 맞춘 자본시장 활성화
ISA의 납입 한도와 비과세 한도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고 가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공개했다. 올 초 한국거래소를 찾을 당시에도 윤 대통령은 '국민의 자산 형성 지원 프로그램 대폭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ISA 육성안을 꺼낸 바 있다.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금융권을 향한 날 선 발언도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금융권 초과이익의 주요 원인은 독과점 울타리 속에서 벌어지는 경쟁 부재에 기인한 측면이 많이 있다"고 지적하며 "국민의 이자 부담 경감을 위해 취임 직후부터 추진해 온 '비대면 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을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대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서민들의 금융 부담 완화를 위한 지원책도 소개했다.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마련한 '2조원+α 상생 패키지'와 '제2금융권의 3000억원 규모 이자 경감 계획'을 지목하면서 "성실하게 빚을 갚으신 분의 재기를 지원하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연체 이력 정보를 삭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생'에 초점을 맞춘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통령의 의지는 연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2주 전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내년 도입 예정이던 금투세 폐지 추진을 약속한 바 있다.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증시의 장기적인 상생을 위한 선택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의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해당 소득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부과하는 것으로, 금융투자업계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다.
이에 맞춰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위한 정책 방안을 발표했다. 자본시장 도약을 통해 국민 자산형성을 돕고 민생 금융을 강화해 고금리 부담을 경감시키는 한편 상생 금융으로 취약계층의 재기를 지원하는 안이 골자다.
개인투자자, 핀플루언서('Finance'와 'Influencer'의 합성어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금융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 소상공인, 주담대 대출자, 청년 서민금융 이용자 등 다양한 금융소비자들의 의견도 이어졌다. 자본시장 투자자들은 세금 부담, 불법 공매도 피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투자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정부 측에서는 자본시장의 공정성 제고 방안과 투자자들의 권리 보호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참석자들은 고금리에 따른 부담을 토로하면서 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을 이용한 경험,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자 경감을 받은 경험, 서민금융과 고용 지원을 연계해 이용한 경험 등을 공유했다.
고액자산가 세제 혜택…주식시장으로 자금 이동 기대
금융위원회가 이날 윤 대통령과 참석자에게 밝힌 2024년 업무보고 내용은 ▲자본시장을 통한 국민 자산형성 지원 ▲민생금융으로 고금리 부담 경감 ▲상생금융으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올해 업무보고는 자본시장 정책이 눈에 띈다. 금융위의 정책 방향이 은행 중심이었으나 올해는 자본시장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업무보고 장소도 한국거래소다. 자본시장 정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요 정책은 금투세 폐지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ISA 가입 허용이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 매매로 5000만원이 넘는 양도차익(이익·손실 합산)을 거두면 그 초과분에 20%(3억원 초과분은 25%)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원래 금투세는 2025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윤 대통령이 증시 개장식에서 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금투세 폐지는 소득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는 늦어도 2월까지 관련 법안을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4월로 예정된 총선을 겨냥한 정책이라는 지적에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2월까지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며 "기획재정위원회가 열리면 필요성을 설명하고 상임위에서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투세 폐지 혜택은 15만명에 국한된다. 이는 전체 주식 투자자(1400만명)의 약 1% 수준이다. 금투세 논의 당시 기재부는 자본소득 과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금투세 폐지로 입장을 돌연 바꾼 것에 대해 정 실장은 "당시와 상황이 달라졌다"며 "과세 제도를 적절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핵심 정책은 ISA …고액자산가 코스피로 유도하고 투자자 자산 형성 기회 제
눈에 띄는 정책은 '국내투자형 ISA 도입'이다. 기존 ISA 계좌와 달리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게도 ISA 가입을 열어주기로 했다. 고액자산가의 투자금을 국내 증시로 끌어들이겠다는 포석이다. 따라서 국내투자형 ISA는 국내 주식과 국내 주식형펀드에 투자토록 설계될 예정이다.
ISA 계좌는 2016년 금융위가 처음 설계한 상품이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간판 정책인 '새로운 자본주의'를 추진하면서 ISA와 유사한 'NISA' 상품의 혜택을 대폭 확대했다. 예금 위주의 금융 자산을 ISA를 통해 투자 자산으로 유도하는 게 정책 목표다. 최근 일본 증시가 부활한 배경에 'NISA' 비과세 확대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는 기존 ISA 계좌 혜택도 확대했다. 고액자산가의 국내 투자를 유도하면서 일반 투자자의 자산형성도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ISA 계좌의 납입 한도가 연 2000만원(총 1억원)에서 4000만원(총 2억원)으로 늘어난다. 비과세 한도 역시 200만원(서민·농어민 형 400만원)에서 500만원(서민·농어민 형 1000만원)으로 확대된다.
특히 서민과 농어민은 ISA 계좌를 통해 얻은 이자·배당 소득 전액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납입 한도 4000만원을 채울 경우 이자배당수익률이 4%라 가정하면 연간 160만원의 이자배당 소득이 발생한다. 3년간 여섯 번의 이자배당 소득을 합산하면 총 960만원으로 전액 비과세 대상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투세 폐지, 국내주식형 ISA 도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자산형성을 돕겠다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면서 자본시장이 활성화되고 자산형성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는 글쎄…법무부, 상법 개정 미온적
다만 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상법 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 변경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란 상법 제382조의3에 명시된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말한다.
상법 개정은 지난해 초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총회에서 개인투자자와 함께 대주주에 유리한 안건을 부결시키면서 주목받았던 이슈다. 현행법상 이사회는 주주와 회사의 이해 상충이 발생 시 회사의 이익을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상법 개정은 재계(기업 경영)와 소액주주·금투업계(주주의 권익)가 팽팽히 맞서는 문제로 읽힌다.
앞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라는 내용으로 변경하는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국회 정무위에 "회사의 이익과 총주주의 이익이 일치한다"고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상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이 상법 개정 추진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 함께한 법무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봉진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주주의 이익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주주 보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대신 '상법 신설 규정인 제397조의2 '이사의 사업 기회 유용금지' 내용이 있다. 이를 보완하면 이사가 회사 운영에서 충실하게 (선관주의 의무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매도·자사주·배당 등 개선…'기업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작년과 마찬가지로 공매도, 자사주 제도개선 등도 추진한다. 공매도는 전산시스템 구축, 대차·대주 간 차별 해소 등 현재 논의 중인 사안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사주 제도의 경우 '소각 의무화'는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관련해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인적 분할 시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고, 상장심사와 공시 과정에서 자사주 활용 여부를 명확히 하겠다는 내용 정도가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또 '기업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기재토록 하는 내용이다. 이 연장선에서 주주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구성된 신규지수와 상장지수펀드(ETF)도 만들어진다.
이 밖에 배당절차 개선 내용이 분기·반기 배당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기존에는 배당권리자가 확정되면 배당금 규모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배당금 규모를 모른 채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앞으로 배당금 규모를 먼저 결정한 후 배당권리자를 확정하는 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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