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삼성, 애플 칩 제조 놓고 최후 결전
애플, 아이폰6s서 TSMC-삼성 경쟁 붙여
삼성, TSMC 출신 량멍쑹 영입 후 전세 역전하기도
최종 승자는 TSMC‥애플 칩 생산 독점
삼성과 경쟁하는 TSMC의 모리스 창 창업자가 삼성에 뒤졌다고 인정한 적이 있다. TSMC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였다. 애플 칩을 수주하며 대약진의 발판을 마련한 TSMC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TSMC는 대만 기업이다. 당연히 대만인들에 의해 성장했고 도움을 준 이들도 대만인이다. 대표적인 예가 폭스콘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Terry Gou)이다. 폭스콘(Foxconn) 애플 아이폰, 아이패드를 조립하는 기업이다. 애플과 관계가 밀접할 수밖에 없다.
궈타이밍은 애플과 TSMC가 연결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의 부인 소피 창이 궈의 사촌 동생이라는 인연도 한몫했다고 한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애플과 TSMC 간에 사다리를 놓기에 최적의 인물인 셈이다.
TSMC 법률 고문을 지낸 리처드 서스턴에 따르면 궈 창업자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이 벌어지자 애플과 TSMC에 서로 힘을 합할 것을 권했다. 애플과 TSMC가 서로 필요한 관계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플은 삼성이 아이폰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여겼고, 삼성이 아이폰의 칩을 공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니 궈타이밍의 진단은 정확했다.
2010년 제프 윌리엄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와 모리스 창, 소피 창 부부가 식사하면서 시작된 애플과 TSMC의 관계는 이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까지 관여하며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궈 회장은 애플과 TSMC의 협상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애플과 TSMC는 대만 인맥을 통해 'C 레벨'급 교류를 하며 신뢰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애플이 원하는 것 이상의 보안을 준비하다
창은 애플을 놓칠 수 없었다. 창은 삼성이 애플 아이폰 칩을 설계해주고 생산까지 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삼성은 디지털이큅먼츠코퍼레이션(DEC)의 알파칩(Alpha Chip) 생산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으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개발을 해왔다. 자체 반도체 생산시설을 활용해 파운드리 사업에까지 손을 뻗었다. 파운드리라는 산업을 만든 창은 삼성이 급부상하는 것이 불편했다.
창은 애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애플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철저한 보호였다. 애플은 TSMC가 약속한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해 철저히 확인했다. TSMC에서 일하는 직원, 협력사, 고객은 모두 정보 비공개 협약을 맺어야 한다. 해킹을 통한 반도체 디자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TSMC의 모든 팹(Fab) 사이에는 강력한 파이어월(firewall)이 있다.
복사나 인쇄를 통해 반도체 디자인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프린터는 금속 성분을 포함한 용지를 사용했다. 인쇄한 정보를 외부로 반출하면 금속탐지기가 적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스턴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애플이 요구하지 않은 수준까지 보안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TSMC는 수많은 고객이 의뢰한 반도체 설계를 칩으로 구현한다. 서로 다른 기업의 반도체 디자인을 다루는 만큼 보안이 필수다. TSMC는 애플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애플이 원하는 수준 이상의 보안과 파이어월을 가동했다.
3년여에 걸친 검증과 시제품 생산을 통해 애플과 TSMC는 서로를 확인했다. 그리고 2013년, 애플은 TSMC에 아이폰용 A시리즈 칩 생산 주문을 했다. A8 칩은 TSMC가 만든 첫 애플 실리콘이라는 의미가 있다. A8은 2014년 등장한 아이폰6의 힘의 원천이 됐다.
A8은 20나노 공정에서 제조됐다. TSMC가 등장하며 애플 칩 수주를 위한 삼성과의 미세공정 경쟁도 본격화했다.
삼성과 TSMC, 최후의 대결된 아이폰6s
2015년, 애플은 아이폰6s에 삼성과 TSMC의 칩을 모두 사용하는 특이한 시도를 했다. 두 회사의 공정을 저울질해보는 것이라는 추측까지 등장할 만큼 특이한 시도였다. 어찌 보면 애플이 TSMC를 선택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다. 삼성과 TSMC가 정면으로 대결한 'OK 목장의 결투'였다.
결투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TSMC가 수세였다. TSMC에 2015년은 위기였다. 삼성이라는 '먹구름'이 TSMC에 드리웠다. 삼성이 TSMC보다 앞서 14나노 공정을 시작한 것이다.
2015년 1월 TSMC는 미세공정 경쟁에서 삼성에 뒤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실적 발표회에서 애널리스트들이 집요하게 창을 물고 늘어졌다. 창은 "우리가 약간이지만 뒤졌다"고 말했다. TSMC가 삼성에 추월당했다고 밝히자 반도체 업계는 물론 투자업계도 소동이 벌어졌다. 창의 고백 이후 투자 은행들은 TSMC 목표주가를 낮추고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크레디 스위스는 5년 이상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TSMC에 대해 처음 비관론을 제시했다.
TSMC와 대만 언론들은 삼성의 약진이 변절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이 지목한 변절자는 량멍쑹(梁孟松)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양몽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TSMC에서 삼성으로 이적해 부사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TSMC 내부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량멍쑹은 아내의 나라 기업인 삼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특기인 3D 핀펫(FinFET) 기술로 제대로 TSMC에 타격을 입혔다. 삼성은 28나노 공정 이후 발목을 잡아 온 정체에서 벗어나 14나노 공정까지 단숨에 질주했다.
TSMC는 량멍쑹이 약속을 어기고 삼성에서 맹활약하자 대만에서 취업금지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TSMC는 삼성을 상대로는 소송을 하지 않았다. TSMC는 앞서 중국 SMIC가 자사의 기술을 그대로 베낀 것을 확인한 후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해 2억달러의 배상금과 10%의 지분을 챙긴 바 있다. 이후 SMIC는 TSMC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TSMC는 삼성을 상대로 한 소송은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SMIC와 비교해 삼성은 반도체 업계의 거물이었다. 함부로 소송에 나섰다가 상황이 더욱 꼬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TSMC의 법률고문이었던 실비아 팡은 "항상 준비하더라도 성급하게 행동에 나설 수는 없다"고 에둘러 말했다.
아이폰6s에 삼성과 TSMC사에서 만든 칩이 무작위로 사용됐다는 사실은 제품 출시 이후에야 알려졌다. 삼성은 14나노, TSMC는 16나노 공정에서 칩을 제조했다. 소비자들은 칩의 성능 비교 결과에 주목했다. 애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TSMC 칩이 삼성 칩과 대등하거나 소폭이나마 우위에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정이 더 미세한 삼성의 칩이 더 좋은 결과를 받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결과였다. 삼성 칩이 TSMC 칩을 성능에서 앞설 것이라는 당초의 전망은 사라졌다.
A9은 삼성이 제조한 마지막 애플 반도체다. TSMC는 이후 애플의 반도체를 전량 생산한다. 애플이 모든 물량을 TSMC에 몰아줬다. 칩의 범위도 늘어난다. 아이폰, 아이패드는 물론 에어팟, 맥북 등 애플이 자체적으로 설계한 모든 반도체의 설계도가 TSMC로 향했다. 협력 초기 TSMC 매출에서 약 8% 선이던 애플의 비중은 어느덧 23%로 치솟았다.
TSMC 최대 고객 애플 때문에 엔비디아의 생성형 인공지능(AI) 학습용 칩도 당분간 최신 3나노 공정에서 생산이 불가능하다. TSMC와 엔비디아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함께 성장해온 관계지만 애플과 TSMC의 관계에 비교하면 열등한 관계인 셈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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