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파운드리 1위 TSMC와 애플의 동맹 역사
애플, 첫 아이폰에는 삼성 칩 사용
설계 독립 후에도 삼성 파운드리 이용
TSMC, 파운드리 종가 자존심 회복 위한 반격
애플 COO "멋진 관계"
애플 실리콘, 즉 애플 반도체는 이제 모바일 분야에서는 업계 최고라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다. 애플은 스마트폰용 모바일 시스템온칩(SoC)이라는 영역을 PC로 확대하며 단단한 성을 쌓아 가고 있다.
앞서 애플 쇼크웨이브에서 다뤘듯 애플 실리콘들은 삼성전자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팟용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대량 공급으로 시작된 삼성과 애플의 관계는 인텔이 거부한 아이폰용 칩을 삼성이 설계, 제작해 공급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손에서 첫선을 보인 아이폰에 삼성이 절대적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애플은 당시 시장을 주도하던 인텔의 엑스케일(Xcale),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오맵(Omap)이 아닌 삼성 칩을 선택했다.
삼성이 2005년부터 시스템LSI 사업의 일환으로 파운드리 사업에 손을 댄 게 2005년이다. 파운드리는 당시 기준으로 삼성반도체 내에서는 소규모 조직이었다. 그런데도 삼성반도체가 아이폰의 칩을 공급했다는 것은 스마트폰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중요한 역사다.
애플이 처음 자체 설계한 'A4' 칩은 삼성 엑시노스 칩 개발을 지원한 인트린시티(intrinsity)를 애플이 인수한 후 등장했다. 애플은 앞서 인수한 PA세미(PAsemi)와 인트린시티까지 품에 안으며 칩 설계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애플이 칩을 자체 설계했더라도 제조사를 바꾸는 것은 모험이다. 애플이 설계한 A4도 삼성 파운드리를 사용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에 대한 애플과 삼성의 관계는 양사의 특허 분쟁소송과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파운드리 업계 1위를 차지하고서도 애플과 거래가 없던 TSMC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애플과 삼성의 사이에 끼어든 대만 TSMC는 대어를 낚았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대신 애플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급에 주력해 지금껏 독점 공급업체로 남았다면 지금 반도체 업계의 지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삼성이 애플의 독점 공급업체 자리를 유지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삼성과 애플의 갈등이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에게는 행운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TSMC의 주가와 기업가치를 보면 왜 행운이라 했는지 이해하기 쉽다.
2007년 삼성이 아이폰의 첫 칩을 공급한 당시 TSMC의 시가총액은 약 500억달러 정도였다. 삼성의 시가총액은 700억달러대였다. 2014년 TSMC가 아이폰6용 칩을 애플에 공급했다. 당시 시가총액은 약 1000억달러. 2016년 TSMC가 아이폰용 단독 칩 공급업체가 되면서 시가총액 12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거침없는 질주가 이어졌다.
특히 2017년 아이폰 10주년 모델 아이폰X의 등장과 애플 실리콘의 성능이 급격히 향상된 시점이 TSMC 주가 상승 흐름과 거의 일치한다. 아이폰X 출시 후인 2018년 TSMC 시가총액은 2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반도체 공급난이 부각되고 TSMC의 위상이 급상승하며 주가도 덩달아 치솟는다. 2022년 최고 시가총액 기록은 7290억달러였다.
2017년 TSMC가 약 2000억달러로 인텔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당시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3000억달러 정도였다. 양사의 격차는 50%였다.
현재 상황은 정반대다. 2023년 8월 18일 기준 TSMC가 4350억달러, 삼성은 3360억달러다. TSMC는 엔비디아가 AI 반도체로 그야말로 '떡상'하기 전인 2021년 초반에는 반도체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는 TSMC의 성장에 애플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애플과 협력한 지 약 10여년 만에 TSMC는 예전과는 급이 다른 회사가 됐다. 지난해 기준 애플은 TSMC 매출의 약 23%를 차지한다. 최대 고객이다. 애플과 엔비디아의 관계가 1993년경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애플과 TSMC의 관계는 이제 겨우 청소년이 된 수준이지만 양사 관계는 동맹 수준이다.
연간 2억5000만대나 팔리는 아이폰 칩을 모두 제조하는 기회는 쉽게 잡을 수 없다. 애당초 TSMC는 그 기회를 놓쳤다.
파운드리 사업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 TSMC로서는 애플과 삼성의 협력관계가 부담스러웠을 수밖에 없다. 아이폰 출시 초기 TSMC에는 엔비디아, 퀄컴, AMD라는 걸출한 고객이 있었지만, 애플은 무조건 확보해야 할 고객이었다. 특히 타도 삼성을 공공연하게 말하던 모리스 창(Morris Chang) TSMC 창업자에게 애플 칩 수주는 숙명의 과제였다.
아이폰이 등장하던 당시는 모리스 창이 경영에서 물러나 있던 때다. 50대에 미국에서 대만으로 돌아온 창은 2005년 70대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창이 경영에서 물러나 있던 순간, 애플은 삼성의 손을 잡았다. 자체 설계 능력이 없던 애플이 삼성의 손을 잡는 것도 당연했다. TSMC 입장에서도 설계 능력이 없는 만큼 삼성의 애플 수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어 불거진 2008년 금융위기. 위기는 투자 위축을 부른다. 창이 없는 TSMC는 투자 축소와 인원 감축을 선택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재직 당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자들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처음 선보이며 시장을 장악했던 창은 용납할 수 없었다.
창은 2010년 경영에 복귀했고 기회를 노렸다. 창은 애플의 칩을 수주하기 위한 틈을 호시탐탐 노렸다. 기회는 멀지 않아 찾아왔다.
2010년 어느 날, 애플의 현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가 모리스 창, 소피 창 부부가 함께 식사했다. 2010년은 애플과 삼성의 특허 분쟁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삼성 '갤럭시S'가 아이폰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때다.
윌리엄스가 2017년 TSMC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서 한 발언은 TSMC와 애플이 혈맹 수준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함께 내기를 걸고 도약하기로 결정했고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의 모든 AP를 TSMC에서 제조하기로 했다. TSMC는 11개월 만에 90억달러를 투자했고 6000명의 직원이 24시간 내내 일했다. 우리는 그 짧은 기간 동안 5억 개 이상의 칩을 함께 배송했다. 지구상에 자본금이 90억달러인 회사도 거의 없다. 대단한 투자였다. 닥터 창과 TSMC의 모든 분께 감사한다. 멋진 파트너십이다."
애플, 삼성, TSMC의 관계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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