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소비시장 인도 주목
인도는 애플 칩 생산 희망
쿡-인도 총리 백악관서 연이어 만나
폭스콘, 인도 반도체 투자 발표 후 취소
인도 정부 돌연 컴퓨터 수입 규제 규정 신설은 '몽니?'
"디자인은 캘리포니아에서 애플이, 생산은 중국에서"(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애플 제품에 새겨져 있었거나 여전히 쓰여 있는 문구다.
애플은 사업 초기인 80년대 미국에서 PC를 생산했지만 이후 미국에서는 디자인, 생산은 해외라는 공식을 이어왔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후 절치부심 끝에 선보인 아이맥을 LG전자에서 구미 공장에서 생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애플 제품은 주로 중국, 베트남, 인도에서 조립되고 있지만, 부품도 대부분 미국 외 국가에서 생산되고 있다. 특히나 아이폰, 아이패드, 맥 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애플이 설계하고 아시아, 즉 대만 TSMC에서 생산된다. 최근 애플이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과 미국 내에서 생산한 칩을 구매하는 계약을 한 것이 큰 화제가 됐을 정도다.
애플이 아이폰 발표 후 사용하는 핵심 반도체인 A, M 시리즈를 미국으로 되돌려 오기 위해 미국 정부가 추진한 것이 반도체법(Chips Act)이다. 이에 따라 대만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이 미국에 파운드리(Foundry) 라인을 세우고 있다.
아이폰 생산했으니 다음 목표는 칩 생산...한국, 대만에 도전 나선 인도
지금까지 아이폰용 A 칩을 생산한 국가는 한국(삼성전자)과 대만(TSMC)뿐이다. 그 외의 국가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세계 1위와 2위 파운드리 업체만이 애플의 칩을 공급했거나 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도 못 해본 일이다.
첫 경험은 삼성의 차지였다. 심지어 애플은 삼성이 개발한 칩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사용했다. 삼성과의 특허 분쟁 이후 점차 애플은 TSMC로 공급선을 전환했고 아이폰7 이후 모든 A 시리즈 칩은 TSMC에서만 생산한다.
대만과 TSMC만이 애플 칩을 생산하는 상황은 이미 변화가 예고돼 있다. 인력 확보 문제로 다시 지연될 것으로 보이지만 TSMC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은 애플용 칩 생산이 확실시된다. 팀 쿡도 메이드인 아메리카 칩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했다. TSMC가 미국에 이어 일본에도 공장을 건설 중인 만큼 일본 역시 애플용 칩 생산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대만, 미국, 일본에 각각 위치한 TSMC 공장 중 어느 곳에서 어떤 공정으로 애플용 칩을 생산하느냐는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다. TSMC는 이미 자신들의 뿌리는 대만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최첨단 공정에서 생산되는 최신 칩은 대만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애플은 구매력을 앞세워 지금껏 TSMC의 최신 공정을 우선적으로 활용했다. 미국 내 생산 칩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칩 구매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나선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을 꿈꾸는 국가가 있다. 인도다. 중국과 맞서며 경제 강국을 추구하는 인도에 반도체는 새로운 목표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애플이 집중하고 있는 시장이 인도다. 애플의 향후 실적을 좌우할 시장으로 꼽힌다. 팀 쿡 최고경영자가 인도 내 애플 스토어 개설 행사에 직접 참석해 공을 들일 정도다.
인도 내부의 시선은 다르다. 아이폰 소비 시장이 아닌 생산을 꿈꾼다. 심지어 아이폰 조립이 아닌 반도체 생산이라는 목표까지 세웠다. 목표는 국가 지도자가 주도한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다.
백악관으로 향한 쿡, 연이틀 인도 총리 만나
팀 쿡은 지난 6월 22일 저녁, 모처럼 턱시도를 입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쿡의 백악관행은 제품이나 정책 발표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만찬 참석이 목적이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첫 미국 국빈 방문 만찬장이었다. 인도계인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도 만찬에 참석했다.
쿡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빈 만찬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왜 그가 국빈만찬에 초대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목적이 뚜렷하다.
애플은 인도를 중국 다음의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인도는 애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지난 4월에는 인도 수도 뭄바이에 첫 애플 스토어도 개장했다. 쿡은 직접 개장 행사에 참석하면서 인도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확연했다. 애플의 실적에서도 인도내 판매는 늘어난 것이 확인됐다. 쿡은 1분기 실적발표시에는 인도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고 2분기 실적발표에서는 인도에서 실적 신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점유율이 적어 큰 기화기 있다고 말했다.
쿡은 만찬 다음날에도 백악관에서 또 모디 총리와 만났다. 인도의 요청도 있었겠지만 쿡도 연이틀 일정을 할애할 만큼 모디 총리와의 만남이 중요했을 것이다.
백악관에 모인 미국의 기술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모디 총리와 인도와의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소프트웨어 기업이었다. 상당수 미국 기술 기업에서 인도인들이 경영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반도체 분야의 상황은 다르다. 핵심 반도체 기업 중 스타급 인도인 경영자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산자이 메호트라(Sanjay Mehrotra) CEO 정도다.
모리스 창(Morris Chang), 젠슨 황(Jensen Huang), 리자 수(Lisa Su) 등 대만계 미국인들이 주도하는 반도체 분야의 상황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모디 총리의 목표는 확연하다. 인도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이다. 그는 한국, 대만과 같은 반도체 생산 거점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집권 이후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주도했다. 인도가 중국과 경쟁하려면 제조업 생산능력을 키워야 하는 사실을 인식한 때문이다.
모디 총리도 애초부터 반도체를 주목한 건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유발한 반도체 공급망 위기는 모디 총리를 자극했다. 인도 정부는 2021년 반도체산업에 대한 10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내놓았다. 현재 230억달러 규모인 반도체 산업을 오는 2028년까지 800억달러 규모로 늘린다는 목표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에는 자신의 고향 구자라트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행사 '세미콘인디아2023'에 참석했다.
모디 총리는 마이크론, 케이던스, 어플라이드 머트리얼즈, AMD 등 미국계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경영진들의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기업들은 인도 투자 약속으로 화답했다. AMD는 4억달러를 투자해 AI 연구 조직을 인도에 설치하기로 했다. 마이크론은 약 8억달러를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조립과 테스트 시설을 세우기로 했다.
아지트 마노차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회장은 이날 연설에서 "인도가 역사상 처음으로 지정학적 요인, 국내 정책, 민간 역량이 합쳐지며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고지를 확보했다"고 평했다.
이처럼 성과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인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반도체 생산 라인을 설치하겠다는 해외 기업 유치 계획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국제반도체 컨소시엄 ISMC가 이스라엘의 파운드리 업체 타워 세미컨덕터와 협력해 추진하던 팹 건설 계획은 답보상태다. 타워가 인텔에 인수되면서 표류하고 있다.
애플 칩 생산 희망 준 폭스콘 반도체 공장 설립 계획 무산
대만 폭스콘이 인도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장을 설립하려던 계획이 난항에 빠진 것은 치명적이다. 폭스콘은 지난달 초 인도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 설립하는 계획을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폭스콘은 애플의 제조 협력사다. 애플은 공급망 위기 해소와 탈 중국을 위해 지난해부터 인도에서 아이폰 생산을 시작했다. 폭스콘은 인도 재벌인 베단타(Vedanta)와 협력해 195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었다. 투자 규모부터 남달랐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폭스콘이 발을 빼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반도체 제조 기술을 제공하려던 유럽계 ST마이크로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닐 아가르왈 베단타 그룹 회장은 반도체 분야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밝혔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폭스콘의 발표가 모디 총리에게 타격을 입혔다고 전했다.
반도체 설계를 하는 팹리스(Fabless)와 팹(Fab)은 다른 영역이다. 팹리스 업체는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한 지역에 자리 잡은 반도체 생산 업체인 팹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인도가 유치하고 싶은 것도 팹리스보다는 팹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팹이 아니라 조립, 테스트 쪽에 관심을 보인다.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인도에는 아직 팹보다는 과거 60~70년대 한국, 홍콩, 말레이시아에서 이뤄졌던 반도체 패키징 사업이 유리하다는 판단인 셈이다. 인도 정부의 정책 일관성은 물론 높은 수입 관세도 반도체 설비 도입의 장벽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당연히 팹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인도 정부는 3일 전격적으로 자국 내 컴퓨터와 서버 수입 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은 PC를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었다. 인도 정부의 설명은 없었지만 자국 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과 삼성전자, 델, 에이수스 등 PC 제조사들이 불똥을 맞게 됐다. 반도체 생산이 쉽지 않으니 PC나 서버의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일 것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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