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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먼톡]현대미술의 거목, 철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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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먼톡]현대미술의 거목, 철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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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어느 날 나는 베를린의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lerie)에서 전시 중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들을 관람했다. 전시는 리히터 화백이 기증한 100점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가 시도했던 다양한 형식의 그림들이 종류별로 전시돼 있어서 리히터의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회화라는 예술 형식을 근간으로 하지만 회화의 전통적 양식을 초월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구현되고 있었다. 그가 시도했던 사진 회화(프로젝터로 투영된 사진을 모사한 뒤 리터치한 회화)에서는 단순히 사진 같은 사실화라면 그냥 지나쳤을 개별적 이미지가, 리터치를 통해 추억을 소환하는 보편적 의미로 승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회화의 프레임 위에 거울을 입힌 작품은 관객 스스로가 그림을 보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도록 설정된 작품이다. 때로는 선명한 전신 거울의 모습으로, 때로는 핏빛으로, 때로는 독일 국기를 배경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구도다. 수천 가지 색상의 작은 정방형 사각형들이 모인 대형 그림은 그림에 대한 기존의 모든 관념을 부수어 버리는 추상 미술의 절정이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만들지 못할 것 같으면서도 먼 시각으로 보면 세련되고 화려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작품이었다.


나를 가장 압도한 작품은 홀로코스트에 관한 작품이다. 그 작품은 평화로운 풍경 속에 화장 중인 시체가 쌓여 있는 사진과 연계돼 전시됐는데, 사진에 이어 전개된 그의 작품은 엄청난 내면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말을 걸고, 그 작품은 어떤 이미지나 메시지를 던진다. 리히터의 홀로코스트 작품은, 온몸을 강타하는 강렬한 전율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홀로코스트에 이입된 작가의 감정 때문인지 영상도 아닌 회화에서 그렇듯 강렬한 공명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다소 기괴하기까지 했다. 고통을 내면 깊숙이 느끼는 위대한 예술혼에 시대적 사건이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보여주듯이 말이다.


한 명의 예술가에게 필터링되는 관점의 의미는 깊고 크다. 감수성 예민한 예술혼이 승화시키는 시대의 고뇌는 가장 섬세한 상처와 가장 고귀한 자존감을 대변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존재를 통해 구현되는 시대적 사건의 내면적 승화는 사회의식의 정화일 것이다.

리히터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의 예술작품 중에 시대적 고뇌를 치열하게 승화시킨 작품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그는 작품이 어떤 특정한 의미로 규정되거나 의도되는 것을 거부한다. 예술이라는 세계 속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도 끊임없는 불확정성 속에서 창조적 시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베를린의 대기는 자유로움으로 충만하다. 브란덴부르크 문에는 동서독을 가르던 이념의 장벽을 부수고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었던 자긍심이 숨 쉬고 있었다. 거리에는 경계를 무너뜨린 당당한 자유가 느껴졌다. 현대 미술의 중심인 베를린에는 우리의 존재와 관련된 어떠한 현상도 가볍게 취급되지 않는 진지함과 전 세계의 모든 실험 정신이 베를린이라는 광장에 모인 것 같은 해방감이 있었다. 베를린에서 예술가는 진리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구하는 사제와도 같고, 그 베를린의 예술 정신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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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희 지모비 대표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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