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세대, 계층하락 저항 일상화된 첫 세대
노동 대체하는 로봇·AI…세대 고민 될 것
전주 청년/중년보다 광주/대구 청년 고민 비슷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가 산업화·민주화를 넘어선 30년의 어젠다(agenda)를 제시하지 못한 지 오래 됐습니다. 양대 정당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죠. 산업화의 영광을 근간으로 하는 국민의힘에서 산업화와 무관한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화의 영광을 근간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민주화와 무관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이 이런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38)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양당이 (산업화·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어젠다를 찾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실패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985년생인 이 전 대표는 정치권에서 ‘밀레니얼 세대(M세대·1980~1996년생)’의 대표주자다. 스물 여섯 살이던 2011년 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돼 정치에 입문했고, 불과 10년 만인 2021년엔 서른여섯의 나이에 4선·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 전 의원 등을 꺾고 제1야당 대표에 당선되며 30년 주기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쐈다.
헌정 사상 최연소 원내 제1야당 대표란 타이틀을 거머쥔 그를 두고 일각선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40대 기수론’을 연상하기도 한다. 1920년대생이던 양김(兩金)은 야당 중진들의 투쟁 끝에 야권 주류로 부상, 1990년대까지 약 30년간 한국 정치를 주도했다.
이 전 대표 역시 지난 대선 당시 국내 최대 인구집단이자 야권 지지층인 1960~1970년대생들을 노년층과 청년층의 연합으로 극복하자는 이른바 ‘세대포위론’을 제시해 윤 대통령 당선의 일익을 담당했다. 뒤이은 지방선거까지 전국선거 2연패를 달성한 이 전 대표는 그러나 윤 대통령과 소위 ‘윤핵관‘ 그룹 등 당내 1960년대생들과의 헤게모니 싸움 끝에 당권을 내려놓고 호남 지역을 주유하며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부모 세대보다 나을 것이란 기대가 없는 첫 세대”
이 전 대표는 M세대를 ‘계층 하락을 막기 위한 저항이 일상화 된 세대’로 규정했다. 이전 세대들은 타인보다 빠르게 계층 상승을 하기 위해 갈등을 벌였다면, M세대와 이후 세대들은 계층 하락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M세대는)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나을 것이란 기대가 없는 첫 세대다. 아버지 세대(86세대)만 해도 대부분이 성장의 과실을 누렸다”면서 “누군가는 빨랐고 누군가는 느렸겠지만 대부분이 집을 10평, 20평, 30평으로 넓혔고 자가용을 아반떼(준중형), 쏘나타(중형), 그랜저(대형)로 늘리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대표는 “반면 우리 세대의 경우 누군가는 20대부터 수입차를 타고 누군가는 40대가 돼도 자가용을 마련하지 못한다”면서 “우리 사회를 계단으로 보면 M세대는 내가 계단 가운데 어느 위치로 오를 것이냐가 아니라 (내가) 내려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저항하는 첫 세대”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한국사회 주류인 86세대가 급속하게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있는 주된 원인으로 ‘집단적 정체성’을 들었다. 민주화 과정이 특정인 또는 세대의 전유물이 아닌데도 일부의 투쟁과정과 이에 따른 도덕적 우월감을 한 세대의 기억이자 성과로 치환하면서 현실과 어긋난 모순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 사회는 어떤 세대를 평가함에 있어 개개인이 가진 특성 대신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고정된 관념)을 적용하는 관성이 있다“면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이도 있지만, 그리 (성과가) 대단치 않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들이 이에 편승하려고 집단 대 집단의 대결로 (갈등을) 치환하려다보니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자신과 다른 집단을 타자화하고 배격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됐다. 이를테면 보수정당을 ‘수구꼴통’으로 비난하던 야권이 ‘기득권 정당’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과거 새누리당을 ‘성(性)누리당’이라고 비난했던 민주당이 이젠 ‘더불어만진당’이란 공격을 받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타자를) 싸잡은 대로 싸잡힘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집단과 개인은 구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면에선 보수정당도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평가다. 이 전 대표는 “1990년대 초부터 보수가 경제·안보·교육 분야에서 만큼은 진보보다 낫다는 신화가 깨졌다”며 “‘DJ를 찍으면 적화통일 된다’고 했지만 통일에 대한 관점은 다를지언정 적화통일은 되지 않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득세하면 교육이 폭망한다’고 했지만 진보교육감들은 계속 당선되고 있다. 공포마케팅도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산업화·민주화 이후의 어젠다를 위한 단초는 ‘세대’에 있다는 것이 이 전 대표의 생각이다. 상징적인 것이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지역 득표율이다. 지금까지 보수정당의 호남지역 선거 득표율은 전북, 전남, 광주 순이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이라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득표 순이 전북, 광주, 전남으로 바뀌었다. 광주와 전남의 가장 큰 차이는 인구 구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광주의 고령인구 비중은 15.9%로 전남(25.5%)과 10%포인트 가까운 차이가 발생한다. 이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가 많은 광주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어젠다가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세대 측면에서 보면 광주, 대구, 전주, 포항 청년들이 가진 고민은 비슷하다. 오히려 전주의 20대와 50대 간 간극이 클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미 영남은 민주당 지지율이 30~40%선에 이르고 있어 종래의 선악구도를 벗어나고 있고, 호남도 앞선 사례처럼 점차 벗어나는 추세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정치권이 세대 어젠다로 뭉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어젠다 발굴 못하는 정치권…그사이 인간 위협하는 로봇·AI 기술 발전
아직까지 우리 정치권은 산업화-민주화를 묶고 나아갈 미래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1960년대 후반(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미래 먹거리로 중화학공업을 꼽아 육성했고, 30년 뒤인 김대중 정부 시절엔 ICT 인프라와 문화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현재까지 왔다”면서 “(마지막 어젠다 제시가) 벌써 20년 전의 일인데, 윤석열 정부만 해도 미래에 대한민국이 무엇을 팔아먹을 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이란 주제 또한 관성적이라는 지적도 내놨다. 이 전 대표는 “이젠 삼성이 정부가 지원해 키워낼 수 있는 기업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 삼성이 자금 조달이 어렵겠나”라면서 “미국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이 한국에 등장하는 것이 가능하느냐고 했을 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해답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MZ노조’라 불리는 대기업·사무직 노조와의 접촉하면서 노동개혁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지만 이들에겐 대표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MZ노조라고는 하나 대기업, 조직노동이란 우리 사회의 매우 일부를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면서 “사실 강성노조란 프레임 역시 1%의 정치엘리트와 1%의 노동엘리트 간 대립인 측면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 일자리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등 (노동권 보장이) 취약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복수노조가 어쩌느니 하는 것은 달나라 얘기”라면서 “이런 (윤석열 정부의) 제한적인 어젠다론 이 세대의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로봇·인공지능(AI)이 인간이 가진 하드·소프트웨어적 생산성을 뛰어넘고 있다면서 전통적인 노동관 자체가 급격히 변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전 대표는 “앞으론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차이를 넘어 노동·이전소득으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라면서 “다시 말해 로봇과 AI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도태될 수 있단 것이다. 산업혁명 시절 러다이트 운동이 특정 직군에 국한된 문제였다면, 앞으론 세대의 문제로 확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전망이 다소 먼 얘기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급증했던 플랫폼 노동에서 최근 고용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배달 애플리케이션 이용률이 20% 가량 줄면서 배달 업종에 상당한 고용위기가 오고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 했다.
또 그는 무인으로 운행하고 있으면서도 정시율은 가장 높고 사고율이 가장 낮은 신분당선을 예로 들면서 “1~4호선은 2인, 5~8호선은 1인 승무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인력이 가장 먼저 대체될 수 있다”면서 “지금은 안전을 이유로 이런 흐름에 ‘저항’ 하는 것일 뿐, 자연적으론 (기술발전에 따라) 인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이것이 정치권이 당면한 문제”라고 밝혔다.
“저출산이 재앙일까 반문해봐야…교육 개편 시급”
이 전 대표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폈다. 로봇·AI로 인간의 생산성이 하락하는 가운데 출산율 확대가 가져올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저출산 극복 정책을 통해) 더 태어날 인구들의 생산성이 로봇과 AI 등에 미치지 못하면 이들은 오히려 복지정책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근 격화하는 젠더갈등에 대해서도 통념 대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군(軍) 복무기간 등을 감안하면 남녀 간 사회진출·혼인 연령에 차이가 발생하는 만큼 한정된 파이를 둔 대립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단 것이다.
이 전 대표는 “통상 초혼 기준으로 남성 연령대가 2.9세 정도 많은 편인데, 2000년생 남성인구는 33만명, 2003년생 여성인구는 23만명 정도로 약 3대 2의 성비불균형이 발생한다”면서 “2000년생 남성의 경우 (산술적으로) 3분의 1은 결혼 상대가 없는 셈이고, 비혼 기조 등을 감안하면 실제론 절반 수준일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사회진출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군 복무기간을 감안하면 2~3년의 사회진출 시점의 차이가 있고 3대 2의 성비가 그대로 적용되는 만큼 남녀동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채용 등의 비율을) 1대1로 적용하면 갈등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면서 “벌써 1990년대생 남성들의 경우 본인이 약자는 아니지만 (여성보다) 더 심한 경쟁에 노출된 상태로 본다”고 짚었다.
이런 로봇·AI의 역습, 젠더갈등 등 중첩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 전 대표는 공교육 제도의 전면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란 12년제 공교육 시스템은 산업혁명 시기 근로자가 공장에서 최소한의 생산성을 발휘하도록 구성된 체계”라면서 “연구실에서 만든, 2~3년 주기로 개편되는 교육과정은 실제 산업현장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공교육의 축소를 거론하면서 “일례로 예전엔 방송계 진출을 위해선 지상파 방송국이란 관문을 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잘 봐서 명문대를 졸업해야 했다. 주객전도였다”면서 “(지역구인) 상계동에서 이준석과 함께 유명한 양대 인물이 노원구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 출신 크리에이터 쯔양인데, 그가 하는 일을 보면 과연 12년의 공교육 시스템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수능을 잘 보라고 하기보다 웹캠을 손에 쥐어주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공교육 시스템 개편이 출산율 문제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 전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평균적인 생애주기를 고려해 한 여성이 26~27세에 취직해 관리자가 될 때쯤엔 가임기, 결혼, 출산이란 장벽을 겪게 되고, 커리어 유지를 위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사회진출 연령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초기 설익은 정책을 내보내 논의가 사장됐으나 (공교육을) 1년 먼저 시작하고 1년 단축하는 개혁, 사회진출을 2년 앞당기는 개혁을 단행하면 변화의 폭이 상당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20대 시절 자아탐구 시기를 2년 더 갖게 된다는 건 상당한 변화이자 결혼·출산 문제의 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또 저출산의 해법으로 제기되는 ‘현금지원’ 등의 저출산 대책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단 해석도 내놨다. 이 전 대표는 “출산하는 이들에게 1억원을 준다고 하면, 이미 출산할 의향이 있는 이들에게 1억원을 더 주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라면서 “출산 등을 포기한 3포세대는 끝까지 출산을 결심하지 못해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어차피 출산할 사람들이 1억원을 받으면 정책 목표와 달리 빈부격차도 심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담=정재형 경제금융부장 jjh@asiae.co.kr
정리=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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