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와 3.8조 규모 양극재 공급 계약
기술 경쟁력 입증…고객 다변화도 성공
3조8300억원. 엘앤에프가 지난달 28일 테슬라와 맺은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 규모다. 지난해 엘앤에프의 연간 매출 규모와 맞먹는 수치다. 엘앤에프는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핵심 협력사로 발돋움하면서 지난주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증권가의 호평도 쏟아지면서 주가 역시 단숨에 치솟았다. 이미 테슬라 공급 계약 기대감으로 슬금슬금 오르면서 올해 40%나 뛴 주가는 공급 계약 공시 이후 50%가량 치솟았다. 너무 많이 오른 것은 아닌지 투자자들이 우려하지만, 증권가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주가는 여전히 기업 가치(밸류에이션) 대비는 물론 경쟁 기업과 비교해도 저평가 상태라는 것이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엘앤에프 주가는 올해 주식 첫 개장일인 1월2일 18만5400원(종가 기준)에서 꾸준히 오르기 시작해 2월 중순경에는 25만원선을 돌파했다. 테슬라와 공급 계약 체결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호재를 미리 반영해 주가가 내내 올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28일 계약공시가 나왔다. 계약공시가 나온 날 장중 주가는 27만1500원까지 치솟았고, 26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후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주가가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25만원 후반대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지난해 1년치 매출 맞먹는 규모 공급 계약
엘앤에프는 테슬라에 내년 1월부터 2년간 약 29억1084만달러(약 3조8347억원)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했다. 이는 엘앤에프의 지난해 잠정 연간 매출액 3조8838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다만 계약 금액은 환율과 리튬 등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계약은 하이니켈 양극재 약 7만7000t 규모(연평균 약 4만t)로 전기차 배터리 78만3000대에 탑재할 수 있는 물량"이라며 "엘앤에프는 테슬라에 2년 동안 연평균 전기차 약 40만대 수준의 하이니켈 양극재를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계약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테슬라향 배터리 내재화 계획의 핵심 파트너이자 양극재 주요 벤더로서 진입, 후속 수주 기대감, 고객 다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00년 설립된 엘앤에프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양극재의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배터리의 용량은 커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엘앤에프는 2007년 세계 최초로 니켈 함량이 50% 안팎인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 양산에 성공했다. 이후 2020년에는 니켈 함량이 90%인 NCMA 양극재를 개발했다. 지난해에는 니켈 함량 92%인 NCMA 양극재를 개발해 양산에 성공했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양극재의 니켈 함량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꾸준히 투자해 2024년에는 니켈 함량 95%인 NCMA 양극재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라며 "지난 18년간 축적해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점을 높이 평가받아 테슬라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테슬라와 대규모 공급 계약이 갖는 함축된 의미는 바로 엘앤에프의 기술력을 세계 시장에서 입증받았다는 것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번 계약으로 엘엔에프의 NCMA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력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선도적인 니켈 함량 90% 중반대 이상의 하이니켈 양극재 제품 경쟁력은 물론 기존 배터리사 LG 에너지솔루션을 통한 안정적인 공급 이력까지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PER 17.1배 수준으로 경쟁 업체 대비 현저히 저평가
양극재 개발·양산에 성공한 이후 엘앤에프의 실적은 급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19년에는 3133억원의 매출액을 올렸지만 영업적자 77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부터 곧바로 흑자로 돌아섰다. 2020년 3561억원이었던 매출은 2021년 9708억원, 2022년 3조8838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15억원에서 443억원, 2662억원으로 불어났다.
엘엔에프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 상태로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다는 게 증권가의 판단이다.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공시 이후 상승한 주가에도 여전히 비교 기업 대비 밸류에이션 매력도가 높아 주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정재헌 DB금융투자 연구원 역시 "최근 2차전지 업종의 전반적인 주가 강세에도 엘앤에프의 2024년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17.1배 수준으로 경쟁 업체 대비 현저히 저평가된 상황"이라며 "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주요 양극재 공급사라는 점이 충분한 프리미엄(주가 상승)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LG에너지솔루션 쏠림 현상 극복
엘앤에프 주가의 발목을 잡았던 특정 고객사 쏠림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앤에프의 현재 고객사별 매출액 비중은 전기차용 양극재 내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80% 수준이어서 특정 전지업체 판매량과 고객사 내 점유율 변화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크다"며 "이는 엘앤에프가 다른 양극재 업체보다 저평가받는 근거가 됐다"고 짚었다.
고객사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 추가 고객 확보 가능성이 큰 것 역시 엘엔에프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요인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엘앤에프는 2025년 기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직접 계약 비중이 약 30%를 차지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2026년 약 40만t의 생산능력 가이던스 감안 때 10만t 이상이 OEM으로 직접 계약이 돼야 하므로 향후 테슬라와 추가, 또는 테슬라 이외 OEM과 추가적인 공급계약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서 "추가적인 수주 및 안정적인 양산, 기술력 입증 등으로 주가와 밸류에이션과의 갭을 좁혀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진수 신영증권 연구원도 "중장기 공급 고객사가 다변화된다는 점이 긍정적"이라면서 "이번 공급 계약 공시상 납품 일정이 2025년까지 이어져 있다는 점과 이전에 제시한 가이던스를 고려하면 2025년 테슬라 직납 물량에 대해 추가 공급 계약 체결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북미 공장 중심으로 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추진 중인 테슬라의 텍사스 공장 생산 규모가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 텍사스 공장의 예상 연간 전기차 생산량은 올해 30만대, 2024년 60만대, 2025년 100만대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24~2025년 기준 텍사스 공장 전기차 생산분의 30%가량에 자체 생산 배터리를 탑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텍사스 내 자체 배터리 생산 규모 또한 2025년 40GWh 수준에서 향후 100GWh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번 계약으로 2024~2025년 테슬라향 공급 레퍼런스를 확보한 엘앤에프가 2026년 이후에도 좀 더 많은 후속 수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정재헌 DB금융투자 연구원 역시 "현재 테슬라는 네바다 공장 배터리 생산능력의 가파른 증설(100GWh 목표)을 진행 중이며, 장기적으로 1000GWh의 배터리 생산능력 확보를 계획 중이기에 엘앤에프의 테슬라 직납 물량은 추후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에 따라 실적 증가 역시 기대됨에 따라 목표주가 상향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목표주가를 33만원에서 38만원으로, 다올투자증권은 30만원에서 38만원으로, 대신증권은 26만2000원에서 39만원으로 올렸다.
치열한 시장 경쟁…원재료 수급 전쟁
엘엔에프의 위협 요인으로는 치열한 시장 경쟁을 꼽을 수 있다. 양극재 생산 기업들이 단일 고객과 계약을 맺어왔지만 이제 이 흐름에 변화가 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에만 대부분 납품해온 포스코케미칼은 최근 삼성SDI와 10년간 40조원 규모 공급 계약을 했다. 앞서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가 SK이노베이션(현 배터리 법인 SK온)과 각각 대규모 양극재 공급 계약을 하기도 했다. 이제 경쟁사의 고객사에 공급하지 않았던 협력사 간 기존 관례가 깨지면서 양극재 업계 경쟁 구도가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양극재 업체 간 주요 고객사의 프로젝트 수주를 확대하기 위한 경쟁 구도가 심화하는 것은 기회가 되면서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짚었다.
원재료 수급 전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기차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배터리는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으로 구성된다. 이 중 양극재는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양극재는 리튬에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 금속 성분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데, 리튬 비중이 가장 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리튬 전체 수요 중 배터리 수요가 89%에 이른다. 2024년에는 2020년 대비 수요가 42배나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원활한 리튬 수급이 배터리 산업의 미래에 핵심 요인이 되며, 원재료의 안정적 수급이 배터리 소재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3월부터 이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원재료 거래가 중지되는 등 공급망 불안은 어느 때보다 크다. 업계는 니켈 수급의 주요 변수들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는 등 원재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원재료 시세에 따라 공급 계약 규모도 변동 가능성이 크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판매 단가는 최근 납품 단가를 적용했고 향후 리튬 가격 변동에 따라 증감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계약금액은 달러당 1317.4원을 기준으로 계산했으며 계약금액 총액은 원재료 시세와 환율 변동에 따라 가감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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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엘앤에프는 리튬 확보를 위해 두산에너빌리티와 배터리 소재 재활용 사업을 시작했다. 엘앤에프가 양극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파우더를 제공하면 두산에너빌리티가 탄산리튬을 추출하고, 엘앤에프가 이를 받아 전기차용 리튬으로 재가공해 제품 생산에 활용하는 식이다. 엘앤에프는 미국 배터리 재활용 기업 레드우드머티리얼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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