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외환제도 개편방향’ 발표
규제 복잡한 외환법 24년만에 손질
쪼개기 꼼수송금 더 쉬워진다 우려
은행권은 "외환 수익타격 불가피"
정부가 10일 발표한 ‘외환제도 개편방향’은 크게 세가지 부문으로 이뤄져있다. 국민과 기업의 외환거래 불편을 해소하고, 외환서비스 경쟁기반을 마련하며, 위기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위기대응 역량강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치가 규제완화로 약 24년만의 큰 변화다.
정부가 외환규제를 대폭 푸는 배경에는 외국환거래법 자체가 현재 한국에 ‘맞지 않는 옷’ 이라는 문제인식이 있다. 한국은 1999년 대비 국내총생산(GDP)가 3배, 유학·여행 관련 자금 규모가 5배 이상 증가했고, 거주자 해외증권 투자규모는 70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럼에도 자본거래 규제가 복잡해 국민·기업·금융사의 불편이 크다는 설명이다. 현재 외환법에 남아있는 규제만도 350여개로 각종 예외와 예외의 예외 등으로 구성돼있다.
한국의 외환법이 유난히 까다로운 건 자금유출의 억제와 통제를 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외환규제가 시작된 건 1961년 12월 외국환관리법을 제정하면서다. 국내 자금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외환이 한 번에 대량으로 빠져나가면 국내 경기나 환율이 휘청거릴 위험이 커 법으로 보호해왔다. 규제·관리 위주였던 법은 1999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IMF의 권고로 개정하면서 현재 ‘외국환거래법’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대외부문이 건실해졌고 위기대응 역량을 고려할 때 ‘통제위주’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수십년 간 유지해온 외환제도를 바꿔야 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2단계로 나눠진행할 예정이다. 시행령을 고치거나 규정을 바꿔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추진한다. 자본거래 사전신고제 전면개편이나 업권별 업무규제 폐지처럼 입법이 필요한 사안은 경제상황을 고려해 진행한다.
이번 조치로 일명 ‘쪼개기 송금’ 방식을 이용한 불법거래가 용이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7월 기획재정부가 ‘신외환법 제정방향 세미나’를 열고 새 외환법을 제정한다고 밝혔을 때도 이같은 지적이 나왔다.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대체로 신외환법의 제정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변동성 확대나 역외탈세 가능성을 언급했다. 불법거래를 막던 규제가 폐지되거나 풀리는 만큼 부당한 외환송금이 더 용이해질 수 있으니 관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역외탈세 등 우려에…"금감원과 어떻게 할지 검토 중"
만약 입법을 통해 외환규제 방식을 ‘원칙자유·예외규제’로 바꾸면 관련 위험은 더욱 커진다. 정부는 외환법이 금지하는 내용을 뺀 나머지를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율을 준비 중이다. 자본거래와 송·수금 사전신고 제도를 사후보고로 바꾸는 등 대부분의 거래유형에서 서류 증빙 절차가 사라진다.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경제안보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해외적집투자 사전신고 부담을 대폭 축소한다.
실제 과거 환전영업자들이 외환당국 통보와 사전증빙서류 제출을 피하기 위해 여러 명의로 같은 수취인에게 소액분산 송금하는 방식을 사용해 덜미를 잡힌 일도 있었다.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2개 은행 3개 점포에서 110만5000달러를 증빙서류와 신고없이 외환으로 증여성 송금을 하는 등 총 피해규모만 714억원에 육박했다. 최근에는 환투기 불법리딩방이 성행하거나 외환규제를 우회해 이상송금을 시도하는 등 관련 사건·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심현우 기재부 외환제도과장은 “은행권의 이상 외환송금은 이 문제와 무관한 사항”이라면서도 “해외에 돈을 보낼 때 어떤 형태로 확인을 할지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별도로 금감원이 발표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환업무의 주요주체 중 하나인 은행권에서는 이번 조치로 외환시장 수익에 끼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증권사가 은행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외환영업을 펼칠 수 있게 되면서다. 현행법은 규율·외환차이를 따져 수행 가능한 외국환업무를 구분해놓고 있다. 증권사의 경우 일반환전은 기업을 대상으로만 4개사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증권사 대고객 일반환전이 허용되면,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환전영업도 가능해진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규제·역량·경험 등 어떤 면에서도 증권사는 은행보다 고객에게 유리한 환전율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투자로 증권사에 엮여있는 충성고객들이 많기 때문에 은행의 외환 고객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파이가 똑같은데 플레이어가 늘어났으니 관련 수익악화는 불가피하다”고 예측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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