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매력적인 도시가 없습니다."
이현군 이현군지리학연구소 대표는 서울을 매혹적인 공간으로 인식했다. 낮엔 바쁜 직장인들이 도로를 누비고 밤이 되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야경을 조성하는 빌딩들을 N서울타워에서 구경한다. 낮은 곳엔 고궁들이 있다.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고궁을 거쳐서 좁은 북촌 거리를 거닐며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고 있다. 단연코 서울만큼 다양성을 지닌 도시는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시선이다. 이 대표는 "외국인들이 서울을 관광하고 가장 놀라는 점은 과거와 현대가 함께 있다는 점이다"며 "서울이 개성 넘치는 도시라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에게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제적 여유를 줘야 한다"며 서울의 미래를 위해 젊은층의 거주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0일 아시아경제는 이현군지리학연구소 연구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매력적인 도시 '서울'…자연과 인문환경 조화로워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중첩된 역사가 녹아 있는 공간이다. 과거 조선시대의 흔적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의 모습들이 다 남아 있다. 과거 이 땅의 권력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살았었는지 궁금하면 북촌을 향하면 된다. 급속도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궁금하면 한강 이남인 강남을 가면 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넓은 한강과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까지, 경험할 수 있는 자연도 다양하다. 자연과 인문환경이 이만큼 조화로운 도시가 없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가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렇다. 서울의 역사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녹아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타고 다니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일제강점기 때 다니던 전차 노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인천에서 시작해 제물포, 노량진을 거쳐 청량리까지 가도록 노선을 짠 것은 인천 바다로 사람들과 물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였다.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사는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밖에 2호선은 강남의 발전과 함께 생겼고 3, 4호선 등은 경기도 지역의 개발로 인해 필요해졌다.
앞으로 있을 정책도 마찬가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도 제한을 풀 지역으로 도성 지역, 남산 일대, 여의도, 강남을 언급했다. 각각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현대사까지 역사를 향유하고 있는 곳들이다. 도성 지역은 조선시대, 남산 일대와 여의도는 일제강점기, 강남은 해방 이후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를 반영하고 있다. 중첩된 역사가 곧 이 땅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으며 개발 필요성도 보여주는 셈이다. 앞으로도 이 지역들은 새로운 역사들을 계속 쌓아가며 가치를 높여갈 것이다.
물리적으로 넓어지지 않지만…교통 발전과 함께 커지는 서울
-서울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어떤 역사와 함께 넓어지고 있는가?
▲원래 서울은 북악산과 인왕산, 낙산, 남산으로 감싸져 있었다. 풍수지리에 따라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려고 한 조선시대의 사상과 맞닿아있다. 이 정도 크기만 해도 한양은 수도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서울은 확장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전쟁이었다. 일본은 전쟁이 한창이었던 중국으로 한반도의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한 부지를 찾기 시작했고 여의도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영등포까지 서울이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1958년까지 여의도에 있었던 비행장은 지금 여의도 공원으로 쓰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발전하면서 서울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과거 한양의 크기로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선택한 공간은 한강 이남이었다. 강남 지역 발전을 위해 강북과 연결하는 다리를 놓고 격자형으로 강남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꼬불꼬불한 북촌과 달리 강남역 앞의 도로가 뻗어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촌 인근의 문화를 이식하는 작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종로구에 있던 학교들과 같은 '교육 자본'이다. 경기고등학교와 휘문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등이 각각 삼성동과 대치동, 서초동으로 이사했다. 지금 이 땅들은 '억'소리 날 정도로 비싼 곳이다. 북촌의 문화가 제대로 이식됐다고 볼 수 있다.
-역사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그렇다. 스토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경험을 주는 것을 넘어 받아들이는 사람이 새롭게 해석하고 정보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다채로움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단순히 타고 다니는 지하철이라도 이런 역사들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준다면 조금 더 다채로운 경험을 서울이란 도시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화는 한계가 없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관광상품이다. 한 공간에서 한양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 현대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중첩된 역사를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사는 사람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선사한다. 아침마다 조깅하는 길거리가 과거 임금이 행차하던 곳이었고 일제강점기 때 차고지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정부나 서울시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러한 스토리들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서울은 어디까지 커질 것이라고 보는가?
▲물리적 공간은 커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 서울의 시스템은 자리를 잡았다. 더 커지기 위해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과거에 비해 더욱 부담스러워졌다. 만약 서울이 포화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의 A지역을 서울 행정구역에 포함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경기도의 B지역, C지역, D지역도 포함해달라고 불만을 터트릴 것이다. 과거처럼 독재정권이었다면 이러한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시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이해관계를 반드시 조율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울은 더 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서울의 영역은 교통의 발전과 함께 확장되고 있다. 좁게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있다. GTX 부지를 고르는 과정에선 이해관계들이 첨예하게 다퉜고 공사가 확정되자 해당 지역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사람들이 행정구역 이름만 서울이 아닐 뿐, 사실상 서울에 포함된다고 해석한 것이다.
전국 단위로는 KTX가 있다. KTX가 인적 자원, 물적 자원 등을 더욱 서울로 집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과거 서울에 일하던 직장인이 부산으로 가면 1박2일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숙박도 해야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는 등 부산 지역에서 돈을 써야 했다. 여력이 되는 회사는 아예 부산에 사무실을 내고 그 지역 사람을 채용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하루면 부산에서 일을 보고 돌아올 수 있다. 아울러 서울에서도 부산 지역의 싱싱한 해산물들을 맛보는 게 가능하다. 발전한 기술들이 서울을 향한 욕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셈이다.
발전의 원동력이자 다양성 없애는 욕망…젊은이가 주인공 돼야
-욕망을 언급하셨다. 욕망은 서울에 어떤 존재인가?
▲욕망은 분명 서울의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해준다. 적절한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다양성을 불어넣기도 한다. 어차피 욕망을 이길 수도 없다. 욕망의 긍정적인 작용을 누르려고 해선 안 된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안 된다. 지나친 욕망은 다른 사람의 희망을 꺾어버린다. 이미 강남 3구의 주민들의 부는 세습되고 있다. 과거 북촌에서 양반들이 계급과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지금은 사람들이 단순히 부러워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이 계속된다면 사람들의 불만도 커질 것이다. 반발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서울이란 도시에서 사람들이 실망감만 안고 이탈할 수도 있다. 이렇듯 서울은 대한민국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욕망은 도시 개발을 통해 발현된다. 개인적으로 북촌을 비롯해 고궁 인근지역의 개발은 신중했으면 한다. 기준은 낙산이다. 낙산보다도 높은 건물이 들어온다면 고궁과의 균형이 무너진다. 고궁에서 관광하는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때 콘크리트 빌딩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답답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욕망으로 인해 서울의 가장 큰 장점인 과거와 현재의 조화가 없어질 수 있다.
-서울은 미래에 어떤 도시가 돼야 하는가?
▲다양성을 지닌 도시가 돼야 한다. 서울 자체는 발전하고 있고 아직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넘치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서울은 오래된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지녀왔다. 하지만 정작 주거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늙어갈 것이다. 서울에 살지 않고도 충분히 발전한 기술을 통해 서울의 자본들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원하는 것들은 한정돼 있고 빠르게 변하지도 않는다. 잘못하면 지금과 다르게 서울은 느리고 번뜩이지 않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도봉구에 위치한 도봉고등학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2024년 통폐합 절차를 밟게 됐다. 학교가 없으면 아이들이나 젊은 부부들은 그 지역에서 살아갈 수 없다.
공공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 청년들은 자신의 힘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서울에서 살아갈 수 없다. 자칫 욕망이란 동력이 꺼지고 발전이 멈추지 않으려면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 이 같은 욕망이 이어지려면 공공은 젊은 사람들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젊은 사람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제적 여유를 줘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등 젊은 사람들이 서울 내에서 집을 가질 수 있는 파격적인 수단들이 더욱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의 여유가 곧 서울의 미래다.
이현군 대표는 누구? 이현군 대표는 이현군지리학연구소를 통해 공간에 중첩되는 역사들을 다루는 역사지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의 지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에서 석사학위, '조선시대 한성부 도시구조'로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고지도연구학회 부회장과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이사도 맡고 있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서울, 성 밖을 나서다' ,'한강의 섬 마티' 등이 있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 '이현군 지리학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대중들에게 한국의 지리와 역사를 알리고 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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