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 인터뷰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향후 5년간 재택근무(WFH·Work From Home) 수준은 나이키 로고 형태인 '스우시(Swoosh)' 모양을 띨 겁니다. 경기 침체로 소폭 줄어들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진보에 따라 더 많이 증가할 거예요."
20년 가까이 재택근무를 연구해온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는 코로나19로 촉발된 재택근무 확산 움직임과 관련해 지난 10월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한 달 뒤인 지난달 14일 아시아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 등에서) 사무실 복귀 움직임은 있지만 완전한 복귀를 추진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면서 "주 5일 모두 사무실로 완전히 복귀하는 것과 주 3일 사무실 출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트위터, 테슬라처럼 완전한 복귀를 요구하는 기업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블룸 교수는 최근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섞어서 하는 근무 형태) 등 근무 형태의 변화를 가장 발 빠르게 파악하는 경제학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020년 5월 시카고대, 멕시코 자치공과대 경제학자들과 함께 연구 단체 'WFH리서치'를 만들고 매달 근무 형태 변화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4월에는 미국 내 역량이 뛰어난 학자와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구겐하임 펠로십을 받았다. 지난 10월에는 처음으로 '2022 재택근무 콘퍼런스'를 개최해 근무 형태와 관련한 논문과 자료 20여개를 발표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 "코로나가 관점·관행 완전히 바꿔"…미국인 30% 재택 中
블룸 교수가 이끄는 WFH리서치는 재택근무 확대로 인한 다양한 변화를 주요 이슈로 다룬다. 미국 내 재택근무 비율, 근무 형태가 퇴사에 미치는 영향 등 기본적인 변화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재택근무가 샤워하거나 양치질을 하는 비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 재미있는 연구도 진행한다. 참고로 약 4000명의 미국 직장인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할 경우 샤워를 하는 비율은 사무실 출근과 비교해 85.1%에서 73.4%로 줄고, 양치질하는 비율도 95.3%에서 91.8%로 감소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블룸 교수는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재택근무에 대한 관점, 그리고 기업과 개인의 관행을 영구적으로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WFH리서치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 미국에서는 재택근무하는 직원 비율이 5%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6배나 증가한 30%까지 확대됐다. 2020년 7월 60%를 넘어섰던 미국 내 재택근무자 비율은 같은 해 하반기 서서히 내려와 30%대로 접어들었고 이후 이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완전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블룸 교수는 기술의 진보가 근무 형태를 바꾼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미국인 중 절반 정도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현장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기술이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며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사와 배달 기사다. 그는 의사의 경우 기술의 발전으로 같은 처방전을 또다시 발급하는 등의 비교적 덜 중요한 의료 행위는 원격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또 배달 로봇이 개발되면서 배달 기사가 할 역할을 대신 수행해 한 사람이 배달 로봇 10대를 감독할 수 있게 되고, 이 작업을 재택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블룸 교수는 설명했다.
블룸 교수는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적절히 섞는 하이브리드 근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현시점에 가장 바람직하고 최상이라고 평가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시스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월요일과 금요일에 집에서 일하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이라면서 "(사무실로 출근했을 때는) 회의와 교육, 점심, 토론 등 대면 활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재택근무에서 한계로 지적되는 직원 교육도 사무실 출근 시간을 잘 활용하면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고용주-직원 '동상이몽'…격차는 줄어든다
WHF리서치가 발표한 보고서를 살피다 보면 고용주와 직원들의 견해차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일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자와 직원 등 총 16만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직원들이 희망하는 재택근무 일수는 주당 2.75일로, 고용주가 실제 계획하고 있는 재택근무 일수(2.34일)와 0.4일 정도 차이가 난다. 이 격차는 2020년 12월에만 해도 1.36일(직원 2.96일, 고용주 1.60일)이었으나 지난해부터 빠르게 줄고 있다. 고용주의 재택근무 채택 일수가 직원의 희망 일수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
블룸 교수는 인터뷰에서 "양측의 생각과 욕구의 차이가 확인되지만, 변화의 규모나 속도를 고려하면 그렇게 놀라울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하이브리드 근무에 대한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고용주와 직원들의 이러한 차이는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생산성을 향상하고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며 직장 내 다양성을 지원해 빠르게 표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이 방식이 안정을 찾게 되면 고용주와 직원들의 관점은 지금보다 더 격차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 교수는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가 사회를 여러 측면에서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통근을 하지 않게 돼 자녀나 장애인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나 파트타임 업무를 하는 학생들, 은퇴를 앞둔 고령의 직장인들이 업무를 하기 더 쉬워진다"면서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 공급을 늘리고 성장을 촉진하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매일 통근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심에서 교외 지역으로 직장인들이 이동하게 되고 이를 따라 소매업이나 레저 활동도 움직이게 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블룸 교수는 "재택근무를 하면 많은 활동 시간을 바꾸게 된다"면서 "미국에서는 현재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과 비교해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더 많은 사람이 골프를 치고 주말에는 살짝 줄어든 걸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골프나 다른 레저 활동을 주중에 하고 일을 주말로 일부 옮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 니콜라스 블룸 교수는
▲케임브리지대 학사, 옥스퍼드대 석사,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 박사 졸업 ▲매킨지 컨설턴트(2002~2003)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2005~) ▲전미경제연구소 생산성·혁신·기업가정신 공동 책임자(2011~) ▲미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2022) ▲국제 경제학상 슘페터상 수상(2019년)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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