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기술인력 구인 증가율 9.5%…12대 산업 중 '톱'
與, '반도체공과대학교법안' 발의…인력난 해결 골자
윤석열 당선인도 '초격차' 공언…유례 없는 지원 약속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김진호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반도체 전문인력 이동은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반도체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방증입니다."
국내 반도체업계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심화되는 전문 인력 부족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해외 인력 유치도 쉽지 않아 이들 기업은 경쟁사 보다 높은 처우를 제공하기 위한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문 인재 양성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 업계 간 인력 이동을 막기 위한 쟁탈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5년 미만 경력자를 채용하는 ‘주니어탤런트’ 전형을 진행 중인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들이 상당수 SK하이닉스 면접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SK하이닉스의 채용 면접 일정을 앞두고 삼성전자 직원들의 SK하이닉스 근무환경, 출퇴근 방법, 처우·복지 수준을 확인하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인력이동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돼 버렸다"며 "특히 최근 SK하이닉스의 성과급과 복지수준이 이슈화되면서 MZ(밀레니얼+Z세대) 세대 중심으로 두 회사를 비교해 이직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도체산업을 놓고 주요국들의 패권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전문 인력풀이 부족하다 보니 기업 간 반도체 인력 이동이 활발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실제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는 17만9885명이다. 이 중 기업에서 연구개발, 기술, 생산 등을 맡고 있는 산업기술인력은 9만9285명으로 2019년 보다 4% 증가했다.
2018, 2019년 2년 연속 반도체 산업기술인력 증가율은 2%대를 기록하다가 2020년 4%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업계는 필요 인원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산업기술진흥원은 반도체업계의 산업기술인력 부족분을 약 1621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12대 주력산업의 산업기술인력 구인 상황도 반도체업계 증가율이 9.5%로 가장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 역시도 매우 보수적으로 추정한 수치"라며 "실제로 업계에서 체감하는 전문 인력 부족난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고질적인 인력난으로 우리나라 수출 1등 공신인 반도체 산업은 뿌리째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업계는 수년전부터 만성적인 인력 수급 부족을 호소하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호소했지만 각 부처의 안일한 대처에 반도체 산업 핵심인 인재 육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들이 잇따라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면서 ‘반도체 코리아’ 위상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와 정치권이 너나 할 것없이 지원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미래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인 반도체 산업을 더욱 활성화해 이른바 ‘반도체 초격차’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힘을 실어주면서 차기 정부에서는 관련 산업 육성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육성에 ‘與野’ 따로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명은 전날 ‘한국인공지능·반도체공과대학교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이른바 반도체공대를 설립해 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현 제도로는 향후 10년간 필요한 반도체 산업인력 3만6000명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법안 발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안 의원은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도적 국가로의 도약에 이바지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특수법인인 반도체공대를 설립해 안정적인 재정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산학연 협력체계를 구축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컨트럴타워 역할을 맡기도록 명시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직접 이를 지원 및 육성하고 업무를 조정 및 감독하도록 했다.
특히 관련 학교 설립에 대해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도 담았다. 해당 법 개정을 두고 각 부처와 지역사회 간 이견이 큰 상황을 감안해 새로운 학교 설립을 새로운 해결 방안을 제시한 셈이다. 때문에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도 잇따라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위한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다.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는 전날 ‘반도체 기술경쟁력 강화’를 국정과제로 중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연구개발 산·학·연 협력 플랫폼 조성 ▲반도체 공공팹(Fab) 기능 고도화 및 연계성 강화 ▲국가 반도체 핵심 연구실 지정 및 육성 추진 ▲반도체 인력의 양적·질적 확대 도모 등이다.
여야가 모두 반도체 산업 육성에 한목소리를 내고 나선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앞다퉈 전폭적 지원안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 우리도 더는 늦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대만 등은 최근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유례 없는 전폭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돈 쏟아붓는 기업들…인력 확보에 팔 걷어붙이다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임직원 급여와 복지를 개선하며 인재 영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올해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연봉인상률이 8%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해 예년의 2배 수준인 8%의 임직원 임금 인상률을 결정했다. 빠르면 다음달 임단협에 들어가 2022년도 임금협상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해 큰 폭으로 임금 인상률을 올려 결정한 터라 올해 추가로 더 높일 여력이 없는 상황이지만 반도체업계 인력 쟁탈전이 치열한 만큼 지난해 수준의 임금 인상률이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로 언급된다.
지난해 임직원 임금을 평균 7.5% 인상한 삼성전자도 현재 노사가 임금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인상률은 아직 확정짓지 못했다. 삼성전자 노사협의회 근로자 위원들은 올해 기본인상률을 역대 최고 수준인 15.72%로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 업체 DB하이텍은 반도체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신입사원 초임을 14.3% 인상하는 파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DB하이텍의 신입 초봉은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졌다.
직접 인력 양성에도 뛰어들었다. 이들 기업은 학과 졸업과 동시에 신입 인력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아예 대학과 손 잡고 반도체학과 설립에 직접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이달 한양대학교와 차세대 반도체 인재육성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반도체공학과 신설을 지원하기로 했다.
협약에 따라 한양대는 공과대학 내에 반도체공학과를 신설하고 연말께 정원 40명(수시 24명, 정시 16명) 규모로 첫 신입생을 선발한다. 선발된 학생들은 학비전액 및 학업 보조금을 지원받고, 졸업 후 SK하이닉스에 취업하게 된다. SK하이닉스는 앞서 고려대, 서강대와도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 개설 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도 현재 성균관대·연세대·카이스트·포스텍과 반도체학과 협력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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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의 경우 안보와도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새 정부가 들어온다고 해도 여야 할 것이 모두 육성에 힘을 보태야 한다"며 "세제지원부터 인프라 확충, 규제 철폐, 인력 양성 등에 초점을 맞춰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 드라이브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김진호 기자 rpl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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