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재보다 보존관리 중요성 더 커져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땐 박탈 위기
英 리버풀 항구 실제로 목록서 제외…부분 축소 등 해외 해법 살펴봐야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자격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김포 장릉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가 건설된다. 건설사 대광이엔씨(시공 대광건영)와 제이에스글로벌(시공 금성백조), 대방건설은 최근 문화재위원회 현상변경 허가 신청을 철회했다. 외벽 색상과 디자인 교체만으로는 허가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문화재위원회는 건물 높이 조정 없이는 김포 장릉의 가치가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조선왕릉은 2009년 세계유산 심사에서 자연 친화의 독특한 장묘 전통과 능원조영(陵園造營) 등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근래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보다 보존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매년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을 확대 개정할 정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도심 지역의 세계유산 주변에서 진행되는 개발 프로젝트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각국에 유산영향평가(HIA) 도입을 권고한다"고 했다. 개발행위가 세계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지표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데 쓰인다. 국내에선 공주 공산성, 서울 태릉, 고양 서오릉, 해남 대흥사, 공주 마곡사 등에 적용됐다. 하나같이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권고 결정을 받았다. 법적 강제성은 없으나 개발 계획 단계에서 세계유산의 완전성을 유지하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역사지구는 2019년 HIA를 실시해 유네스코와 건축물 높이 등을 협의하고 있다. 이 지역은 HIA 도입 전인 2005년에도 도시개발로 경관이 훼손될 수 있었다. 당시 시당국은 완충지역의 신축 건축물 높이를 100m에서 70m로 낮춰 세계유산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76m 높이의 호텔 등 새로운 개발사업이 추진돼 2017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독일 쾰른 대성당은 이 꼬리표를 2년 만에 뗐다. 시당국이 2004년 고층 빌딩의 건설사업을 중단시켰다. 시각영향평가에 따라 건축물 높이까지 제한해 세계유산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이 세계유산 자격 박탈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2012년 꼬리표가 붙은 영국 리버풀 항구가 대표적인 예. 축구장 건설 등 도시 재개발 계획 강행으로 역사적 가치와 기존 경관이 훼손됐다. 유네스코는 보편적 가치를 잃었다고 판단해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외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도 2009년 세계유산 지위를 상실했다. 새로 건설된 다리가 19세기 건축물과 강변의 조화로 이뤄낸 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장릉 등 왕릉 40기가 한데 묶인 조선왕릉도 비슷한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유네스코가 최근 조선왕릉 경관 훼손에 문제를 제기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주변 개발 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며 "김포 장릉의 보존관리 상태 정보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문화재위원회 심의 무산으로 자체 조정은 어려워졌다. 건설사들과 법정 다툼이 예고돼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건설사의 부담이나 입주 예정자의 불안을 이해한다"면서도 "세계유산 지위 유지가 달린 문제라서 소송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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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스파한 이맘광장은 부분철거로 세계유산 경관 보호에 힘을 실어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곳 인근에는 높이 48m의 자한 나마 타워 등 복합시설 단지가 건설됐다. 보호지구 내 규제 높이를 초과해 논란이 일자 이란 정부는 2005년 구체적 축소 방안을 결정하고 2014년까지 고층 부분을 철거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002~2014년 2년마다 세계유산위원회에 경과를 보고하고 권고 사항을 이행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항저우의 시후호 문화경관은 2011년 세계유산 등재 전 인근 건물 일부를 철거하기도 했다. 1961년 준공된 7층 높이의 샹그리아 호텔이다. 유네스코 권고에 따라 2019년 3월 상부 6~7층을 없애고 외관을 도색해 세계유산 가치 회복에 힘썼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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