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0일 여름휴가를 떠난 가운데, 청와대는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 휴가 때는 도서 목록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였다.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정도로 늘 화제가 됐다. 대통령의 책은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정국 구상과 연계될 수 있어 관가와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통상 대통령의 도서 목록은 청와대 비서진의 합작품이다. 휴가철을 맞아 비서실별로 도서 목록 추천받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 국내외 신간 서적이 후보에 오르면 홍보수석실과 부속실이 협의해 도서 목록을 최종 결정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여름휴가 때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부교수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읽었다. 휴가 후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언급하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전까지 박근혜 정부는 다른 출판사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름 휴가 도서 목록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취임 첫해인 2013년에는 휴가 직전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해 ‘답성호원’, ‘일러스트 이방인’, ‘유럽의 교육’, ‘철학과 마음의 치유’,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등 5권을 직접 구입했다. 이 책들은 박 전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으로 거론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실용 독서파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은 휴가 때 전자책(e북)을 이용해 독서를 했다. MB정부는 휴가 도서 목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여름휴가 직전 청와대 직원들에게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를, 2009년엔 ‘넛지’를, 2010년엔 ‘퍼스트 무버’를 선물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휴가 도서 목록을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다독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유독 책 소개를 많이 했다. 공식석상에서 추천한 책만 50여 권이 넘었다. 또 책의 저자를 발탁하기도 해 ‘독서 정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를 쓴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을 쓴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여름휴가 때면 청와대 관저에 머물며 온종일 책을 읽었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03년 휴가 기간 동안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주5일 트렌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아인슈타인 사상’ 등 5권을 읽었다. 2004년 여름휴가 때는 ‘정치의 미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등을 봤다. 탄핵 당시 직무정지 기간 동안에는 ‘칼의 노래’, ‘마거릿 대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이제는 지역이다’ 등을 정독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만여권의 장서를 소장했던 독서광으로 꼽힌다.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여름휴가 당시 ‘지식자본주의 혁명’,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맹자’ 등을 챙겨 떠났다고 전해졌다. 2000년 여름휴가 때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해리포터’ 1,2,3권을 포함 10여권을 독파했다. 2011년에는 ‘비전 2010 한국경제’, ‘미래와의 대화’,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등을 휴가지에서 읽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최초로 여름휴가 도서 목록을 언급했다. 1996년 청와대는 김 전 대통령에게 휴가기간 중 읽도록 추천한 책 목록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정무수석실은 ‘21세기 예측’, ‘미래의 결단’, ‘동아시아의 전통과 변용’,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 ‘딸깍발이 선비의 인생’ 등 5권을 추천도서로 선정했다.
한편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이 화제가 된 것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다. 1961년 한 잡지에 케네디 대통령의 애독서 10권이 나오면서 해당 도서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후 미국에선 매년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이 공개된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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