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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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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부장]
충북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는 ‘고드미’ 마을로 통한다. ‘고드미’의 유래는 조선 광해군 때 신요라는 선비로부터 비롯됐다. 신요는 광해군에게 곧은(바른) 말로 상소를 했다가 귀양살이를 한 후 귀래리에 정착했다. 인조반정 후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러 들였지만 그는 끝까지 벼슬을 마다했다. 그 연유로 마을 이름을 고드미로 부르게 된 것이다.


고드미 마을은 민족사학의 태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의 사당을 모신 곳이기도 하다. 단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8살 때 할아버지와 함께 이곳으로 이주했다. 고드미 마을은 고령 신씨의 집성촌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폐위된 폭군으로만 알려진 광해군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시작한 인물이 단재였다는 점이다. 단재는 광해군의 핵심 측근인 내암 정인홍을 특히 높게 평가했다. 우리 역사의 3대 위인에 을지문덕, 이순신과 함께 정인홍을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직접 일으킨 정인홍은 남명 조식의 수제자다. 조식은 이황의 성리학을 비판하며 ‘실천’을 중시하는 독자적 학풍을 형성했다. 그 영향을 받은 정인홍은 국방, 토목, 건축, 의학 등을 중시하고 부국강병에 역점을 뒀다.


광해군의 재평가는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 고스란히 녹아들고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화정’, ‘대립군’은 모두 광해군이 주인공이다. 한마디로 대세가 광해군인 셈이다.

임진왜란 이후 복구사업을 진두지휘하고 대동법 등 세제개혁을 통해 조선 근대화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광해군. 특히 쇠락한 명과 신흥강국 후금 사이에서 철저히 실리외교를 펼쳐 조선을 전란의 위기로부터 지켜냈다는 점이 각광을 받고 있다.


당시 명은 조선에 후금을 정벌하기 위한 파병을 요구했다. 조정에서도 출병만이 명의 은혜를 갚는 대의(大義)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민을 거듭한 광해군은 비장의 묘수를 발휘한다. 외교와 중국어에 능통한 강홍립을 출병군의 도원수로 임명해 밀명을 내린 것이다.


밀명의 내용은 간단했다. 관형향배(觀形向背). 형세를 보아 판단하라는 말이다. 그 이면에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후금과의 전투를 피하라는 의도가 담겼다. 강홍립은 명이 후금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자 후금에 투항했다. 투항 후 광해군의 입장을 전달하는 임무에도 충실했다.


후금은 광해군이 재위하는 동안 조선을 공격하지 않았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친명반금’ 정책으로 돌아선 이후 결국 조선은 두 차례 호란을 겪어야 했다.


실리외교는 내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파고들어 필요한 것을 최대한 얻어내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3월 새로 취임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회담 결과는 최악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급한 마음에 ‘햇볕정책’을 밀어붙이려다 엇박자가 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두 번째 한미정상회담에서 전략을 달리했다. 부시의 구미에 맞는 9.11테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북한과 관련된 주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대화 분위기에 만족한 부시는 김 전 대통령에게 북한의 김정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의견을 묻게 된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틀 후면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한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등살에 대북 문제까지 겹쳐 첩첩산중의 과제가 놓여 있다.


미국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도 문제지만 하고 싶은 말만 앞세워 명분에 집착하는 일도 피할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명분도 얻고 성과도 얻는 광해군식 실리외교의 지혜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완주 정치부장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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