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외국 기업 저승사자'로 통하는 중국 소비자의 날(3월15일)을 맞은 관영 방송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 기업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중국중앙TV(CCTV)가 15일 오후 8시부터 두 시간에 걸쳐 '인터넷 신뢰, 근심 없는 소비'를 주제로 방영한 '3·15 완후이(晩會)'에서 집중 고발한 외국계 상품은 미국 스포츠 용품 제조사 나이키의 운동화와 일본산 수입 식품이었다.
당초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롯데그룹 등 한국 기업을 겨냥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한국인 시청자에게 긴장을 불러일으킨 장면은 두 차례 정도 있었다. 완후이 시작을 알리는 첫 화면에서 2011년 금호타이어 사례가 등장했고 사회자가 생방송 진행 도중에 스마트폰의 각종 안전 문제를 거론할 땐 촉각이 곤두섰다.
나이키는 2부 시작과 함께 집중포화를 당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농구 금메달리스트인 코비 브라이언트를 기념하고자 한정판으로 출시한 '하이퍼덩크 08' 모델이 말썽을 일으켰다. 나이키는 특허 기술인 '줌 에어' 에어쿠션을 탑재했다고 광고해 판매했으나 CCTV는 중국 소비자들이 운동화를 절단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허위 광고를 입증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전달했다.
나이키가 제품 문제를 시인하고 전액 환불 조치에 나섰으나 CCTV는 중국 '소비자권익보호법'에 의해 판매 가격의 3배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품 설명상 문제일 뿐 허위 광고가 아니다"는 피터 장 나이키 고객관계관리 매니저의 해명도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CCTV가 나이키 고발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지만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일본 방사능 오염 가능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이 중국 전역에서 유통 중이라는 소식에 더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는 완후이 방영 이후 일본 생활용품 업체 무인양품(無印良品·MUJI)이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CCTV는 MUJI가 후쿠시마 원전 인접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을 판매하면서 일부는 원산지를 속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제과사 가루비(Calbee)와 대형 할인마트 업체 이온(AEON)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에 대해 "비판의 화살은 주로 중국 내 인터넷 쇼핑몰이나 수입상에 향했다"면서 "중국에서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보다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목적 같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올해 3·15 완후이에서는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활용한 불량 LED 감별법과 해킹 위험이 있는 스마트폰 안면 인식 시스템의 양면성을 시연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의 본성에는 욕망과 탐욕이 존재해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내용의 연극과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를 다룬 노래 등 볼거리도 다양했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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