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서 중요한 것은 '선점'
모바일 넘어 AI 비서가 사람의 말 이해하고 물건 주문·가전 작동
AI 스피커, IoT 만나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상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이제 '플랫폼'이라는 표현 없이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플랫폼의 사전적 의미는 '구획된 땅의 형태'다. PC의 '윈도'나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제와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기술 융합이 이뤄지고 산업 곳곳에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되면서 플랫폼은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로 확대됐다. 지금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기술ㆍ서비스마다 플랫폼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엿새 남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7)에서도 이런 변화를 분명하게 감지할 전망이다.
플랫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선점'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구글과 애플이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도 스마트폰 운영체제라는 플랫폼을 선점한 덕분이다. 이들이 구축한 플랫폼 안에서 제조사와 개발자들은 기기와 앱, 콘텐츠를 쏟아냈고 덕분에 전 세계가 '모바일'로 묶일 수 있었다.
모바일 시대가 정점에 다다르자 기술 패러다임이 AI로 옮겨가고 있다. AI는 그간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기계학습) 알고리즘', 강력한 컴퓨팅 기술과 만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AI는 생산성을 높여줄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인간이 해야만 했던 단순한 업무를 대신하고 인간의 실수까지 보완해줄 기술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본 구글, 애플, 아마존, IBM 등이 앞다퉈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는 하드웨어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넘어 차량, 가전, 공장 등 산업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어 AI 격전지로 부상한 분야는 바로 'AI 스피커'다. 터치가 필수였던 스마트폰 대신 '음성'으로 제어하는 AI 스피커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AI 스피커에 날씨나 일정을 물어보고, 물건을 주문하고, 가전을 작동시키는 일까지 가능해졌다. 스피커에 탑재된 AI 비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명령을 수행해준다.
국내에서 AI 스피커를 출시했거나 준비 중인 업체는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와 네이버 등이 있다. 지난해 9월 출시된 SKT의 '누구'는 독자 개발한 자연어 처리 엔진을 기반으로 만든 국내 최초 AI 스피커다. 멜론, T맵과 연동돼 음악감상이나 길 안내를 받을 수 있고 피자(도미노)나 치킨(BBQ) 주문도 할 수 있다. 상반기 중 자체 결제 기능도 추가된다.
KT는 지난달 AI 스피커 '기가지니'를 출시했다. 기가지니는 인터넷TV(IPTV)의 셋톱박스 형태로 TV와 연동되는 것이 강점이다. 홈 IoT 기기 제어도 가능하다. TV 채널을 전환하거나 음악감상, 일정관리, 교통안내, 영상통화(카메라 추가 시), 카카오택시를 호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네이버(NAVER)도 상반기 중 AI 스피커를 공개할 계획이다. 네이버는 생활환경 지능을 콘셉트로 한 '아미카'를 개발 중이다. 스마트홈, 커넥티드카, 웨어러블 기기까지 포괄하는 AI 기반 음성대화 시스템이다. 네이버는 라인과 협업해 한국 외에도 라인의 주요 서비스 지역까지 겨냥한 AI 스피커를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등을 연구하면서 PC와 모바일을 넘어 다양한 하드웨어에 '아미카'를 접목시킨다는 계획이다.
업체들은 AI 스피커가 IoT의 허브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 스피커가 IoT에 접목돼 '스마트 홈'의 중심이 되려면 다양한 사업자들과의 제휴가 필수다. AI 비서가 대중화되면 결국 모바일 플랫폼 영향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AI 플랫폼 생태계를 선점할수록 지배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수익 모델을 창출해낼 수 있다. 역으로 보면 시장 진입이 지연되면 파트너 확보가 어려워지고 선점한 플랫폼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송지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홈 어시스턴트시장은 스마트 홈뿐만 아니라 스마트 빌딩, 스마트 시티, 커넥티드 카, 웨어러블 기기 등 전반적인 IoT시장까지 활성화시킬 것"이라며 "국내의 경우 한국어 자연어 처리 기술의 우위를 앞세우고 국내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해외 업체와의 경쟁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AI 플랫폼은 IoT와 직결된다. 스마트홈,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가 대표적인 서비스다. 이동통신사들은 앞다퉈 IoT 통신망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로라'를 구축했고 KT와 LGU+는 'NB-IoT' 구축을 상반기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IoT 기능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초소형 IoT 모듈 '아틱'을 선보이기도 했다.
모든 기기와 통신이 가능해지면 디바이스가 곧 플랫폼이 되는 시대가 된다. 이에 가전업체나 이동통신사, 자동차제조사 등 다양한 업체들의 플랫폼 선점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기가 곧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며 이런 변화에 대비하는 업체들의 합종연횡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구글이 크라이슬러와 함께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것을 말한다. 네이버 역시 르노와 자율주행차를 공동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클라우드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은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대기업도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성공할 수 있으며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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